사이버 세상 `여성 상위시대`
 한겨레신문 [미래-여성사이트]
   
 



주부 이문실(43·경북 김천시 신음동 현대아파트)씨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옷도 갈아입기 전에 컴퓨터부터 켠다. 집을 비운 사이에 전자우편이 오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집에 있을 때도 컴퓨터를 늘 켜놓고 있고, 하루 평균 한시간 이상 컴퓨터통신을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 밤새 온 전자우편을 확인한다. 아침과 저녁 설거지를 끝낸 뒤에는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씨는 마흔 가까이 돼 이용하기 시작한 인터넷을 통해 학창시절 가졌던 `문학소녀'의 꿈도 이뤘다.
인터넷에 `맑은 햇살 한자락'(http://www.shinbiro.com/@mrsoz/)이란 문학동호회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같은 꿈을 가졌던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아 작품을 발표하고 토론도 벌인다.

이씨는 “이제 컴퓨터통신은 생활의 일부”라며 “저녁 때 남편이 늦게 오는 것은 인터넷을 이용하며 참을 수 있어도, 컴퓨터통신을 안하고는 못배긴다”고 말했다.

여성 컴퓨터통신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30~40대 주부 이용자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 천리안 가입자 가운데 여성은 93년 12%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33%에 이른다. 95년 17%이던 나우누리의 여성 가입자도 32%로 늘었다. 유니텔 여성 가입자는 96년 19%에서 지난해 26.4%로 늘었고, 지금은 27.7%에 이른다. 유니텔 여성 가입자 가운데 21%는 30대 이상의 주부이다.

미국과 일본의 여성 컴퓨터통신 이용자 증가세는 더 뚜렷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통신서비스 사업자 아메리카온라인(aol)의 여성 가입자는 5월말 현재 53%에 이른다. 또 미국의 `인터넷 중독자' 가운데 60% 이상이 30~40대 주부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의 여성 인터넷 이용자 비율은 97년 9%에서 지난해말 25%로 급증했다.

유니텔 여성 담당자 오종희씨는 “신규 가입자의 성비를 분석한 결과 25세 이상에서는 여성이 많고, 25세 미만에서는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머지않아 사이버사회 인구의 남녀 비율이 현실사회와 같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이용자의 사이버사회 참여도와 활동 폭도 커지고 있다. 지금도 여성 컴퓨터통신 이용자 가운데 상당수는 게시판을 훑어보고,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것에 그치고 있다. 채팅을 할 정도면 `마니아'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다. 동호회와 이벤트 행사를 찾는 여성 이용자들이 늘고 컴퓨터통신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 세상을 경험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만 모이는 동호회가 잇따라 설립되고, 여성이 일반 동호회의 운영자(시삽)로 뽑히는 경우도 늘고 있다. 컴퓨터통신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와 토론란 참여도에서도 남성에 버금간다.

나우누리 윤설아 대리는 “2월14일 발렌타인데이 때 `사랑이란' 주제로 이벤트를 벌였는데 전체 참가자 가운데 40% 이상이 여성이었다”며 “많을 때는 60%를 넘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전자상거래 시장에서는 이미 여성 구매액이 남성 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인터파크'의 경우 전체 방문자 가운데 여성은 20%에 지나지 않으나, 여성 구매액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아메리카온라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도 매출액의 80% 이상이 53%의 여성 가입자에게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 컴퓨터통신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 전자상거래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자, 컴퓨터통신 사업자와 인터넷쇼핑몰 운영자들이 여성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성을 `대접'하는 난과 서비스를 앞다퉈 마련하고 여성 취향에 맞는 이벤트도 잇따라 연다.

유니텔은 최근 `생활/가정'난 이름을 `생활/여성'으로 바꾸고, `여성 사랑방' `여성 공짜방' `여성 품앗이' 같은 여성 전용난도 만들었다. 월간지 <여성중앙21>과 함께 여성 컴퓨터통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여성문학상'도 준비중이다.

천리안도 `여성클럽'이란 난을 만들어,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모아주고 있다. 여성 전용 채팅과 동호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성 대상 컴퓨터통신 이용법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중인데, 7월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컴퓨터통신 사업자들은 여성 중에서도 주부를 가입자로 유치할 경우 자녀들까지 고객으로 딸려온다는 점까지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컴퓨터통신 사업자들의 여성 가입자 유치 경쟁에 따라 여성 이용자들의 증가세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특히 주부 이용자 증가에 따라 청소년들의 음란 데이터베이스 접속 같은 인터넷 역기능은 줄고, 전자상거래 등 순기능은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신문/ 1999.06.14 (월)/김재섭 기자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