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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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dongpo.org/soneus/essay/view.cgi?32
여러번 산행을 갔었지만 산은 내게 만만하지 않은 존재다. 산을 오르는데 체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산을 알겠다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내생각) 일상이 바쁘다고 하여 항상 산행할 기회를 지나치지만, 산에 오르면 땅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과 아울러 하늘을 보면서 내 속에 있는 답답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산에 가자고 요청하거나 부추길때마다 나는 내심 산을 본다는 설레임에 기뻐한다. 있는 일정 없애버리고 무리해서라도 산에 가고자 한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둔 덕에 2002년 11월 2일 명지산을 가게 되었다.
명지산은 경기도 가평에 있는 산이다. 동쪽으로는 화악산이 있고 멀리서 보면 평평한거 같은데 의외로 산세가 험하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아침 7시 20분경 출발하여 가평에 도착한 것이 8시 30분 경이다. 토요일 오전 일찍 바깥에서 배회한다. 느낌이 새롭다. 장기 휴가를 나온 기분이다. 다시 명지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아침 햇살이 산과 들을 비출때 아지랭이처럼 가을이 올라왔다.
산입구에서 요기를 했다. 동네사람에게 물어보니 정상까지 왔다가는데 6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한다. 산입구에 도착한 것이 9시 30분이니 6시간이면 점심 먹을 시간도 없고 산에서 점심먹을 장소도 없을 것이다. 산입구에서 손두부에 밥을 먹었다. 모자라면 밥 더 준다는 아줌마의 말이 냄비 그득하게 담긴 따뜻한 손두부에 담긴 듯했다.
산속으로 발을 옮겼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난 길부터는 울퉁불퉁 자갈길이다. 개울을 왼쪽으로 끼고 골짜기를 따라 계속 걸었다. 이름하며 명지계곡이다. 승천사라는 절을 하나 지나고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능선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어느 길로 가야 제대로된 능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산 위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있으면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바.
이윽고 나타난 오솔길, 가장 느린 친구를 앞에 세워 오르기를 시작하였다. 원래 어디든지 Dead Point 라는 놈이 있어서 그 놈과 싸워 이기기 전까지는 숨이 턱위를 올라오고 땀은 온 몸을 휘젓고 다닌다. 첫 오르막길에서 산등성이까지 오르는 길이 바로 그러했다. 금방 나타날 것 같은 산마루가 어디에 있는지 연신 "조금만 더"라는 말을 해도 Dead Point를 오락가락하는 사람에게는 격려가 아니라 짜증에 가깝다. 산 입구에서 지팡이를 만들어 하나씩 들게 했지만 정작 산비탈의 경사는 오르기보다 내려가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헉헉대며 산마루를 향한지 30분이 좀 넘어 드디어 산마루에 도착을 했다.
일단 산마루에 도착을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산 능선을 따라서 걷기만 하면 된다. 아니 적어도 우리 일행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산행으로 미루어 그랬다. 명지산 역시 크게 다른 바는 없으나 그 능선이 좀 험했다. 더구나 11월 초인데도 불구하고 해가 있는쪽은 따뜻했으나 해가 없는 북쪽은 눈이 간간이 쌓여 있고 바람이 심하고 무척 추웠다. 더구나 유독 능선의 북쪽은 산세도 험하고 이상하게 바위도 많았다.
능선에 올라서 추위와 따스함을 두시간 정도 느꼈을때 정상 비슷한 곳에 도착했다. 표지판이나 표식이 없어 어디가 정상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우리 일행의 눈에는 정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산 너머 산이다. 앞쪽에서 중년의 부부가 오더니 아직 정상까지 멀었고 우리가 도착한 것은 중간 봉우리도 안된다고 전했다.
중년 부부를 보내고 일행은 잠시 고민을 했다. 전진이냐 아니면 후퇴냐. 이미 3시간을 올라왔기 때문에 앞으로 더 나아가자면 3시간은 족히 넘을 것이고 내려가자면 3시간은 안 걸리겠지만 이미 올라온 시간이 우리에게는 소중했다. 결단의 순간. 긴히 고민할 바는 아니었다. 산에서 쓰러질 지언정 우리에게는 전진뿐이었다.
결정적인 고비가 나타났다. 중년부부가 말한 길을 알 수 없는 봉우리가 나타났다. 북측 능선으로 넘어가려는 찰라에 일행 중 누군가가 길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히 결정적인 고비였다. 일단 내가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아, 길이 보였다. 따뜻한 11월초의 햇살에 뽀사시한 길이 내 눈 앞에 살짝 펼쳐져 있었다. 일행을 불렀다.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4봉"이라고 했다.)
이제부터는 일사천리, 순풍에 돛을 달았다. 제 1봉 정상까지 뛰거니 날아가거니 하여 산마루길을 휘저었다. 이른바 탄력을 받았다는 느낌으로 우리 일행은 지친 기색없이 허공답보, 초상비를 하였다. 명지산 정상 제 1봉 바로 아래에서 약간 주춥하였으나 이미 기세를 탄 일행은 정상까지 한달음이었다.
정상에 서서 발아래에 세상을 둔다. 그것이 바로 등산에서 얻는 조그만 기쁨이다. 사진, 그리고 친구가 꺼낸 사과 한 조각. 오르면 내려가야지.
정상에서의 20여 분 가까운 짜릿함을 뒤로하고 전혀 가본적 없는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4봉을 거쳐 왔으니 2봉과 3봉을 거쳐서 상판리쪽으로 길을 잡았다. 다행히 정상부터는 표지판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거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세를 탄 일행은 이제 산에서 뛰기 시작했다. 걷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탄력을 받았다는 것은 발걸음 하나를 옮길때 다음 발걸음이 저절로 나올 기세가 있다는 뜻이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이 1봉에서 한시간 걸린다는 2봉을 무려 40분도 안되게 도착한 것이 바로 일행의 탄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2봉에서 초코바로 배를 채운 일행, 이제 3봉에 서 있는 기지국을 향해서 달렸다.
3봉에서 휴식도 잠시, 어느덧 해는 뉘엇뉘엇, 서울에 약속 있는 친구도 있었기에 4시 30분이라는 시간을 극복하고자 상판리를 향해서 또다시 달렸다. 그러나 의외로 하산 길은 길었다. 우리가 애초에 올라온 길보다 더 경사가 심했고 더 길었다.
산에서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 는 거짓말이라고 했던가. 정상에서 등산객이 3봉 지나 1시간이면 마을이라고 한 것 역시 거짓말이었다. 3봉 이후로 우리는 두시간 가까이 내려가야 했다.
상판리에서 차를 타고 현리로 이동했다. 늦은 시각. 중국집으로 향했다. 탕수육과 고량주. 산행으로 들뜬 몸을 재우기 충분했다. 주거니 받거니 어느덧 고량주의 기운으로 몸은 후끈했고 마음은 이미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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