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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해프닝



	토요일 밤 새벽 한시가 넘어선 늦은 시간. 심야의 정적을 가른 비명소리가 그러잖아도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집사람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고 말았다. 불암산 시민공원에서 찢어지는 여인은 비명은 이어지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제치고 공원에서 들려오는 새벽의 괴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집사람이 컴퓨터에 매달려 정신없는 내게 달려와 어깨를 흔든다. 밖에 지금 난리가 났단다. “여보,여보. 지금 공원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남자가 여자를 막 때리고 있는데 남자가 미친놈이거나 아니면 술을 먹고 그러는 지 큰일 났어요!! 사람 잡겠어, 저걸 어쩌지?” 이어서 “빨리 나가봐요.” 예긴 즉슨 어두운 공원의 원두막같이 생긴 시설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은데 그 중 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다는 것이고 어쩐 일 인지 다른 사람들은 미를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사람이 맞고 있는데 말리지 않는다니... 그것도 연약한 여자가 동네가 떠나가라고 지르는 비명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하다니...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다가서니 집사람은 귀를 쫑긋 세우고 밖의 상황에 약간은 흥분한 채 사람들의 무관심을 성토하고 있었다. 밖은 말 그대로 칠흑같이 어두웠고 직선거리로 이백여 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만 들릴 뿐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공원엔 군데 군데 가로등이 있었지만 이들이 있는 곳은 인적만 아른거릴 뿐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남자들이 여자를 집단으로..?’ 집사람은 흥분해서 내 등을 떠민다. “어떻게 좀 해야지, 저거 그냥 둘 수 없쟎아요? 나가 보세요.” ‘나가 보라고?? 이 밤중에?’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저 무지막지한 인간들 한테 다가갔다가 봉변이라도 당한다면... 이 밤 중에 무슨 난데없는 홍두깨란 말인가. 그러나 어쩌랴! 주섬주섬 셔츠와 점퍼를 걸치고 현관을 나서는 나의 허리춤을 잡아채며 “아니야, 아냐. 지금 이 시간에 그런 곳에 가면 위험해요.” 그러면서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을...” 전화통을 잡은 손이 바르르 떨리고, 112를 급히 눌러 경찰을 부른다. “여보세요. 경찰이지요? 여기 상계동 불암현대아파튼데요. 여기 공원에 여자가 맞고 있어요. 여러 사람이 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부부싸움인 줄 알았는데 상황이 안 좋아요.그러니까 빨리 가 보세요. 예.. 예.. 현대뒤에... 공원 있잖아요... 경수산가 무슨 절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말예요... 예. ”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면 속이 많이 타는 모양이다. 소파에서 창문으로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하면서 상황을 리얼타임으로 전해 준다. 사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 아닌가. 어제 오즈 홈에서 오늘 새로 만든 홈페이지 공개한다는데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회의가 길어지더니 정오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나고, 오래 전에 약속한 라운딩 시간은 다가오고 있어서, 결국 컴퓨터는 열어 보지도 못한 채 안타까움을 마음에 담고 서둘러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차를 급하게 몰아 경기도 포천에 당도하니 오후 2시가 넘고 있었고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그린에 오르니 푸른 초원이 눈 아래 펼처져 있었다. 날씨가 좋고 경치가 좋고 또 오랜만에 만난 동료 또한 좋으니 나쁜 것은 하나 없다.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위치 탓인가 이곳은 연산홍이 이제야 한창이다. 산을 깎은 언덕에는 꽃잔디가 핑크 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지천으로 깔려있고 이름 모르는 봄 꽃이 반가이 맞는다. 신록에 싸인 골자기에는 인공으로 만든 호수에 솟아오르는 분수가 높다랗게 떠올라 부서진다. 서쪽으로 약간 기우는 햇살을 받아 물보라는 이내 무지개를 만들고, 못 가의 습지에는 영양을 풍부하게 받아 튼실하게 자란 갈대의 어린 새 순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파랗게 개인 하늘에는 솜털 같은 구름 몇점 떠서 노닐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하얀 공을 향해 환호한다. 두칠씨가 이 글 보시면 무신 미친 짓이냐고, 산 중턱에서 끄적거리지 말고 산 정상에 올라 보아야 맛을 알 것이라 하시겠지만, 어차피 올라갔다 내려올 바에야 적당히 쉽게 가고 또 재밌게 놀다가 슬슬 내려오면 오히려 경제적이라 말씀 드려야지..... 저녁 먹고 집에 오니 열한시가 지난지 오래다. 큰 녀석한테 물으니 엄만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단다. 아침에 나갈 때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간단히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이 고물 컴푸터 왜 이리 굼벵인지 인터넷 접속하는 데 5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내 다음달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부터 바꿔야지,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니 파스텔 톤의 마법의 성이 나타난다. 아~~ 핑크 디자인이 너무너무 이쁘다. 그런데 왠 단추가 요렇게 많단가. 이것 저것 살살 문지르니 새로 생긴 것도 많고... 퀴즈를 보고 있는데, 딩동 딩동….. 이 아줌마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들어서는 홍조 띈 얼굴에 오랜 만에 생기가 돈다. 이양반 요즘 나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잔소리도 할 수 없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빙긋이 맞는다. “늦었네.”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으며 하는 말 “다른 집 남편들은 다들 왔는데... 당신은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눈꼬리가 심상찮다. “오늘 뭐 ‘밀씨축제’인가 행사는 잘 되었는가?”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구나’ 라고 믿었는 지 이내 표정이 밝아진다. “오늘 너무 너무 좋았어요. 우리 전례부가 품바공연으로 동상 탔어요. 그런데 모두들 얼마나 열심인지 아세요? 예순다섯살이나 되신 우리 부장님이 어찌나 잘 하시는지, 걱정했는데 공연도 잘 되었고 결과도 기대 이상이라, 끝나고 고기 구워 뒷풀이 하고 오느라 늦었어요.” 시끄러워 질 일은 없을 것 같아 슬그머니 떠 본다. “그래요? 우리집에서는 아무도 못 가서 당신 좀 그랬겠구나. 미안하요.” “혼자는 왜 혼자? 우리 장남도 낮에 왔다 갔고... 리디아 형님도 오시고… 전에 왜 성서못자리 할 때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 다 불렀죠. 소피아도 오고, 세실리아도 오고 벨라뎃다 형님도... 사람들이 그러는데 나보고 재주도 좋다고 했지요. 오늘 알멜 신부님께서도 시간만 있었으면 참석하셨을텐데....” 내 눈은 컴퓨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 양반은 주저리 주저리 할 말도 많구나. 아마도 알콜이 약간 들어간 탓이려니.. 계속되는 자랑은 귓전에 머무는데, 대꾸가 신통찮으니 말수가 줄어든다. 전화하고 조금 있으니 창 밖의 소란은 진정되고 몇 분 인가 정적의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그 곳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갑자기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요것이 뭐이란 말이가? “............” “??????” 그러자 이번엔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경찰차 경음소리가 들려온다. 생각 같아선 나가서 안내를 해 드리고 어느 놈인 지 고약한 놈 얼굴이라도 좀 보고 싶지만 내가 지금 그럴 처지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한가한가? “여보, 경찰차 왔는데 신고한 사람이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슬적 심중을 떠본다. 이사람 갑자기 큰아이 방문을 두드리더니 자는 사람을 불러낸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요즈음 애들은 생일파티 할 때 때리고 그러냐?” 갑자기 무슨 밤중에 홍두깨냐는 식으로 둘러 보며 이 녀석 하는 말 “술 먹이고 때려주는 거 보통 있는 일 이어요, 엄마. 텔레비전에서 못보셨어요? 생일빵 하다가 술 먹은 아이 물에 빠뜨려 사람 죽일 번 한 사건도 있었잖아요? 제 친구도 생일날 맞아서 팔이 부러진 일 있었어요.” 기가 막혀서 벌어진 입이 닫힐 줄 모른다. 나도 그 말 듣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생일 날. 그 좋은 날 맛있는 것 얻어먹고 축하해 줄 일이지, 선물주고 노래 불러주고 좋은 말 많이 들려줘서 그 날 하루라도 즐겁게 해 줄 일이지, 고약한 넘 들!’ 우리는 할말을 잊었다. 순간 잘못한 판단이 공권력을 낭비하게 만들고 젊은이 들의 그릇된 행동들이 얼마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가. 그것이 아무리 젊음의 발산을 통한 추억만들기 행사라 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어이 없어 마주 보고 웃고 말았지만 어쩐지 기분은 회색으로 가라앉는다. 집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깡통 앞에서 자판을 열심히 두드린다. 독수리 타법으로… 밤중에 이 무슨 해괴한 소란이란 말인가. 창문을 여니 밤바람이 시원하다. 심장 가득히 신선한 공기를 채워 넣고 하늘을 쳐다 본다. 별도 보이지 않고 달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차의 경음소리가 멀리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