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술..
|
| |
|
|
| |
| |
| |
벌써 12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계절마다,달마다 화려한 껍데기를 벗고서 이제 마지막으로
데롱거리고 매어달린 달력이 또다시 쓸쓸해보인다.
누구나 비슷한 감정일게다.
올 한해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들 하나 늘 잘한것보단
못하고 후회되는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것은...
사람이기에,인간이기에,언제나 앞서 가고픈 욕망에 사로잡혀있기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다보니
후회,또 후회를 거듭하고 살아가는것인가보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술잔 기울이는 소리가 어둠을
깨우는듯 하고,웃어보고 울어보고 이유없이 악을 써보고
애매한 술병만 바닥을 내고 있는 우리의 가장들이 비틀거리는
12월을 보내고 있으리라.
며칠전 남편 너구리의 회사 전 직원들과 가족들 송년 모임이
있었다.
전 직원이래야 청주 지점에 근무하는 분들만 15명정도
되고 가족들까지 합치면 대략 50명 정도가 모인 조촐한
모임이었다.
1차는 한정식 식당에서 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지점장으로 있는 남편의 첫인사와 함께 올 한해 어려움속에서도
함께 열심히 일해준 전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짧은 인사를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갑자기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88년도에 입사를 해서 꾸준히 한직장에 머물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남편이 한편으론 자랑스러워 보였고,또 한편으론
벌써 40을 넘긴 중년이구나...저 자리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내며 왔을까 생각하니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각 직원들 소개와 가족들 소개에 이어
젊은 남자 직원들의 패기 발랄한 부라보~~소리에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하고,이사람 저사람이 한두잔씩 따라주는 술잔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의 어깨는 벌써 비틀거리고 있음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자꾸만 눈시울이 젖어오고,맨처음
회사에 입사할때 면접관이 "주량이 얼마나 되십니까?"
하고 물었을떄 남편은 아주 당당하고 자신있게 이렇게 대답했더란다.
"돈이 없어 확인할순 없었지만 여하튼 돈만 있다면 끝까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었는데,그래서 처음엔 늘 술을 밥처럼,물처럼,
음료수처럼,동고동락해오던 사람이었는데....
세월속에 장사없다고 이젠 주는 술 다 받아마시다간
큰일나겠지 싶은 마음이 드니 음식이 제대로 입으로 넘어가지
않고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저 남편의 모습만 자꾸 지켜보게 되었다.
어째 알콜이 들어가고 얼굴이 벌개지고,시간이 흐르면
자갈치 시장판처럼 시끄러워지는지....
모두들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것 같고 이젠한국어 발음도
어느새 꼬부라진 영어발음으로 들리니 원...술이라는것이
약인지,독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으니....1차만 마치고
그렇게 헤어지면 좋으련만...
2차는 노래방!!
아이들방하나 따로 잡아주고 어른들,총각들...따로 따로...
이젠 끼리끼리 모여 노래부르는 모습들을 바라보니
이건 완전히 코메디였다.
공연히 웃음도 나오고,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니,
우리 남편의 18번지,누이!! 마이크를 돌리며 다리 들어 춤을 추는
그 모습에 다들 박장대소..(얼마전 마이크 하나 부숴놓고 나온적도 있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다들 가수들이 되는것 같다.
"사모님께서도 한곡 골라 주시지요"하며 노래책을 내미는
직원의 권유를 슬그머니 뿌리치고 아이들 방으로 가보니
동요에 만화주제가에...어린 아이들의 유치한 노래에 코웃음을
치던 우리 짱구..제법 이젠 지가 어른이라고 팝~~쏭을 부르니,
제목은 마이 러브~~래나...
카운터쪽으로 나오니 어깨가 의자 바닥까지 닿아있는,
금방이라도 얼굴이 땅으로 꺼저버릴것 같은 모습의 우리 남편,
너구리.....등을 두드려주며 "우리 그만 집에 갈까?"
"내가 너무 취했나보다..."
20댄 아직도 팔팔한데,30댄 그래도 아직 견딜만 한데
40대인 우리 남편 도저히 이제 감당이 안된다고 판단했는지
직원을 불러 뒤를 부탁하고는 먼저 자리를 빠져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금새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왠지 서글픈 맘이 자꾸 앞섰다.
예전에 귀가길이 늦으면 바가지도 긁어보고 술 담배도
점 줄여보라 잔소리도 해보고,했었지만...윗 선배님들 아줌마들
하시던 말씀...다 때가 되면 알아서 들어오고 알아서 줄이니,
그땐 너무 빨리 들어온다고 구박하지나 말어..
우리의 너구리도 벌써 그 때가 되어간단 말인가.
그래도 눈을 뜨면 일터가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고,
술을 마실 수있는 자리가 있다는것,그것만 생각해도
요즘같이 각박한 현실에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얼큰한 해장국이라도 한사발 안겨주며
힘내라고 해야겠다.
유난히 모임 자리가 많고 술자리가 많은 요즈음,술에
내 몸을 맡길것이 아니라 내가 술을 즐기며 마셔야하지 않을까?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세월의 아픔도 훌훌 털어 버리고
새털처럼 가볍고 황홀한 기분을 느껴볼 정도로만...마셔준다면
행복한 12월이 되지 않을까.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