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사건 (1-1) 댁이 나 알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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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햇살은 벌써 거실까지 침범하여 늦잠자는 우리들을
깨우고 있었지요.
이리뒤척 저리뒤척 이불속에서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게슴츠레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지금쯤 지리산자락에선
선남 선녀들이 모여 금낭화 꽃구경 하러 가는 길일텐데....
하고 생각하니 이 황금같은 일요일을 그냥 이렇게 뒹굴뒹굴
하는 시간들이 아까워 지기 시작 했지요.
그래 벌떡 일어나 안방문을 빼꼼 열고 들여다 보니
(사실 며칠전부터 각방 썼거든요)
아니 쿨쿨 잠자고 있을 우리 너구리 양반, 침대에 그 모습
보이지 않고 물소리 요란한걸 보니 벌써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나봐요.
원래 일요일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한나절 잠자고 일어나
아침겸 점심을 찾았거든요.
이크~~속으로 분명히 씻고 나오면 밥달라고 할텐데...
아침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에라~~모르겠다.이참에 더 배짱 부려야겠다 싶어
다시 거실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척 하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밥 줘~~하데요.
"몰라!"
"안주면 나가서 사먹지 뭐"
밥하기 싫은데 듣던중 반가운 소리데요.사실 내가 너무한가 싶어
속으론 미안하기도 했지만요.
그러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한번 열고,
우유를 꺼내 식탁에 있는 초코파이 하나 들고 먹고 있데요.
아니,세상에나 마상에나....
사실 우리 너구리 이런적 처음이에요.
생전 우유에 빵조각 한번 안먹어본 사람이거든요.
"애들아~~아빠 연습장에 다녀 올께"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코끝이
아려옴을 느꼈답니다.
이거 내가 너무한거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늘 반복되는 생활이지만,그래서 때론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 아침 밥 먹여 놓기가 무섭게 나는 집안 청소를 구석구석
했지요.
평소 잘 닦지 않던 먼지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대청소를 마치고 나니
왠지 속이 시원하더군요.
분위기 있는 카페..노래 틀어놓고 헤이즐럿 향이 짙은 커피 한잔의
여유까지 누리고 있을 즈음 딸아이가 쇼핑을 하러 가지고 하더군요.
잠시 여유가 있으면 아이들과 동네 뒷동산에라도 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곰곰 생각해보니,마트 근처에서 너구리가
골프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을 시켜 전화를 거니 슬슬 운동삼아 걸어서
마트까지 오라는 거에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잖아요.
물론 화해 해야겠지요.
헌데 그놈의 자존심이 무언지,서로 조금 양보하며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나누면 금새 봄눈 녹듯 사그라지는 감정들도,
서로 팽팽해질때까지 줄만 붙들고 있을뿐....그 줄을 놓을 줄
모르잖아요.
1층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빨간티셔츠의 사나이가 눈에 뛰길래
바로 제너구리임을 알았지요.
먼 곳에서 바라보니 그래도 멋져보이데요.그래도 가서 아는 척
해야겠기에 반가움에 달려가 "왔어요?"하니
대뜸 한다는 말이 뭔지 아세요?
"아니,댁이 날 알아유?"
"내참 기가 막혀서...."
물론 그것이 농담인줄 알지 왜 모르겠어요. 반가움의 표현이
그럴 뿐인거죠.원래 충청도 남자들이 말 뻔대가 없거든요.
앞장서서 매장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길래 쇼핑카트를 끌고
뒤따라 나섰더니만 "나 아는 척 하지 말고 지금부터 사는
물건들은 계산은 각자가 알아서 하기유?" 하잖아요?
끝까지 퉁명스런 말투지만 그래도 조금 마음이 풀어져 있음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씨익 웃으면 패이는 보조개가 사실은 매력이거든요. 속으론 킥킥...웃음이 나오지만 참아가며
계속 졸졸졸 따라다니니,귀찮다고 하며,자꾸 아는척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내가 당신이 좋아서 따라다니나? 필요해서 그러지?"
아들놈 짱구는 게임 씨디를 사주고,딸아인 책을 사주고,그래도 요즘
아이들에게 인심 잃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하는것 같아보였어요.
그러더니 슈퍼에 내려가 이것저것 주워 담는 거예요.
"아까 내가 냉장고를 열어보니까...어째 먹을 것도 하나두 없고..
살림을 어떻게 하는건지,원..."중얼중얼거리더군요.
먹구싶구 필요한 사람이 가득 사서 채워 두시라구요.
ㅎㅎㅎ 이참에 반찬값 벌어갖구 가지요.뭐
"엄마 핸드폰 하나사줄까요? 제 저금통 떨어서?"
딸아이가 기특한 말을 하길래.
"아냐,아빠가 뿌셨으니,당연히 아빠가 사줘야지,안그래?"
"이왕 왔으니 우리 3층에 가서 핸폰 구경하고 가자"
너구리의 팔을 잡아 끌며 3층 매장으로 올라가니 마지못해
끌려 오면서도 그리 싫은 눈치가 아니더라구요.
"칼라폰도 필요없구,최신형도 필요없구,그냥 잘터지는걸루..."
하는데 왜이리 웃음이 나오던지요.
원래 우리 너구리 기계사용 잘 못하거든요.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거,딱 질색하거든요.
난 이왕이면 좋은거 갖구 싶은데 말이예요.
구경만 하고 나왔지만,어느새 서로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서로 감정들이 풀어진것 같아 조금
기분이 좋아졌어요. "내 알아보고 다음에 사줄께"
며칠동안 밥안해주고 퉁명스럽게 골부리고 했던 일들이 미안해
지더군요. 그리고 정식으로 내게 그날 일들에 대해서 미안하단
사과를 하지 않았어도 너구리의 맘을 조금은 알것 같아지네요.
맥주도 한박스 실었겠다,이제 집에 가서
이러쿵 저러쿵.....분위기 잡고 화해하는 일만 남았겠죠?
하지만 웬걸요,아이들과 나와 짐만 달랑 실어다 주고는
약속이 있다고 다시 나가는 거에요.
저녁을 먹고,이제나 저네나....기다려 보지만, 냉장고 속에
시원하게 넣어둔 맥주만 울고 있네요.
열시가 넘고 열한시가 넘고 다시 시계바늘이 자정을 넘고....
공연히 다시 열받데요.
맥주 한병 들고 나와 오징어 다리 씹어가며 벼르고 있었지요.
"내 들어오기만 해봐라..."
에구..근데 어쩌나 그 맥주 한병에 그만 똑 떨어지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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