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익어가는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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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여름을 적시어줄 단비가 장마라는 이름을 빌려서
온 대지를 촉촉히 쏟아 붓고 있다. 질주하는 차량이 무거워 보이고,
나대지에선 흠뻑 비를 맞고있는 꽃잎이 처량하다.
장마, 폭우, 무더위, 불쾌지수...이런 단어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지만
여름은 성숙의 계절이다. 산과 들녁에선 땅맛을 단단히 본 온갖 과실나무들이
봄내 꽃을 피워내며 그 화려함을 자랑하다 그 화려한 본모습을 지우고
결실의 인고를 감내하기 시작한다. 혼 힘을 다 털어내어 그 성숙을
이루려 함을 우리 인간은 눈치도 못챈다.
텃밭에선 감꽃이 지고 어느새 애기감이 열렸다.
그러나 우린 그를 보지 못하고
어느날이던가 하늘이 푸르고 힌구름 떠나가던 날
붉그스레 물든 홍시감을 보고 감이 열렸음을 안다.
감꽃이 필때부터 감은 열리는 것을....
뒷 마당 대나무밭에 쬐금하게 자리잡고 누구에게 보일 듯 말 듯
매실이 열려있다.
그 땡글땡글함이
그 풋풋함이 누구못지 않게 아름답고 이쁜 것을..
우린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그 약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햇빛에 그을리며 봄날의 화려함을 간직한채
성숙해 가는 그 매실....
집 앞을 나서면 포도밭을 발견하게 된다.
따가운 햇살이 내이 쪼이는 여름날이면
유나히 생각나는 시인 이육사님의 청포도가 그리운
그래서 포도는 더 유명해지고 맛도 들어가는가 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여름은 밤꽃이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오기 시작하는가 보다.
야산에 희밋희밋 피어내기 시작한 밤꽃에서 뿜어내는 이상 야릇한 향으로
온 세상이 마취가 되어 버린다. 그 황홀에 빠지기도 한다.
누구는 이 향을 꽃향기중에서는 제일로 치는가 하면
누구는 발정기를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향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벌을 끌어 모으는 신비의 마력을 지닌 이 향을 나는
사랑한다.
또한 이 밤꽃은 얼마나 이쁜지....
얼굴을 가까이 하고 치밀하게 대해 보라
그럼 그는 베시시 웃으면서 반겨 줄 것이다.
촘촘히 박힌 수술의 떨림을
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는 떡복숭이 이쁜 미소를..
이 연약하고 아름다운 밤꽃이 지고나면
온몸에 바늘을 갑옷처럼 두르고 자신이 헤쳐 나오기 전까지는
감히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밤톨이 된다.
밤나무밭을 주욱따라 산속 깊은곳에 오솔길을 따라가면
산길로 바뀌고 더 깊은곳에 청미리 넝쿨이
입산객 발목을 잡는다. 우린 냉감이라 흔히 불리었고
예전에는 잎을 따다가
하얀눈이 온 누리를 뒤덮을때면 찹쌀떡을 싸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빠알간 청미리 열매를 따다가
방안에 걸어두고 방치장을 하곤 했다.
이 여름은 성숙의 계절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온 만물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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