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그리고 나
|
| |
|
|
| |
| |
| |
-눈속에도 싹은 돋고
눈이 푹푹 빠지는 무등산에 올랐다.
초입부터 백설기 같이 순한 눈이 산속 깊이 토실토실 살도 쪄 있었다.
누구도 밟지 않은 곳을 골라가면서 발자국을 남겨 본다. 저벅저벅 걷는 길이
깊은 산속 외로운 길로 말해 주고 있다.
아마 내 마음을 필시 길에다 깔아 두면서 걷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념에 빠지면서 두어시간 눈 속을 걸어 본다. 정상 부분에 쌓여 있는 눈꽂 속으로
철쭉이 눈에 들어 온다. 이 눈이 그치고 따사한 남녁의 봄바람이 스칠때즈음
핏빛 보다 더 붉은 철쭉을 토해 내리라.
-숲도 깊고 눈길도 깊다
문득 이차돈이 생각 났다.
그래 그 사람은 힌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지 아마
난 붉은 피도 간절함이 쌓이면 희게 변한다고 믿기로 했어
눈 속에 파뭍힌 무등산은 온통 정적이다.
그 흔던 산새들 울음소리도 간혹 보이던 다람쥐나 청솔모의 바스락 거림도 없다
단지 내 발자국이 눈에 파뭍히는 뿌드득 소리만 공허할뿐
-산사의 오래된 기와에도 신설은 내리고
기실 설 명절 전날인 오늘같은 날 나를 비우기 위해 산을 올랐다.
따지고 보면 아무렇치도 않은 일인데 정작 당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억울하고 분했다
잠도 이루 수 가 없었다. . 사람이 무서워 지기까지도 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중상모략으로 경쟁자를 떨어 뜨리는 무서운 세태. 무섭다.
오늘 이 산행으로 덜어 낼만큼 머리속에 박혀있는 욕심을 덜어 내기로 했다.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던 바램밖엔 없었는데 나 모르게 내 자신을 되돌아 보질 못했다면
더욱 겸손해지고 자신을 낮추는걸 찾고자 했다.
이런 마음을 정리하는데는 너무나도 조용한 설산이 제격이었다.
덕분에 시 한편을 얻어 내려 간다.
앞으로 많이 수정하고 탈고도 해야겠지만 이 정도 수확으로 만족한다.
머리 속도 어느정도는 맑아 진다. 또 인간세상으로 들어가면 그만이겠지만....
설산 그리고 나
기별도 없이 찾아가는 산길엔
순백 원초적으로 하이얀 설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꽃으로 치장하고 고운 분단장한 무등산이
그냥 오라 한다
오만, 질투, 시기, 욕심 그런건 다 버리고
헐겨운 나신으로 찾아 오라 한다
선홍빛 피가 더붉어 힌피가 된다던가
오죽 간절했으면 이리도 힌 꽃으로 물들었단 말인가?
할 말이 많으면 오히려 침묵한다던가?
속 살 깊이 베어든 미소가
찰랑거리는 욕심들 틈으로 헤집고 들어와
동일한 침묵으로 꽈리를 틀고
찌꺼기 하나도 없는 설 산이 보인다.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