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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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한창 우리 곁으로 찾아오면 습기진 개울이나 연못 한 모퉁이에 노랗거나 혹은 자색으로 무리지어 있는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꽃창포라고도 하고 붓꽃이라고도 하는데, 두 꽃말 의미를 나는 확연하게 선을 그을수가 없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봐도 창포와 붓꽃 개념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이는게 보인다. 아마도 그만큼 확연하게 다르지 않음이라 여기며 그 구분은 식물학자 몫으로 둘 수 밖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해마다 피는 꽃들은 수백 수만 종류일지나 우리 곁에서 친하게 사랑받는 꽃들은 그리 흔치 않다. 나는 그 중에서 창포예찬에 앞장설까 한다.
유년기부터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칭찬이나 격려를 받고 자란 나는 언젠가부터 꽃을 그릴때면 장미보다는 창포를 먼저 그렸다. 아니 즐겨 그렇다고 할 것이다. 실은 꽃창포 그리기가 참 쉬우니 말이다. 조금 그림을 잘 그렸다면 고상한 백합도 그리고 고고한 척 하는 참나리꽃도 좀 그리고 우아하게 목련이나 화려한 장미를 그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꽃창포는 그리기가 참으로 단순하다. 난을 치듯이 뾰쪽 잎을 몇가닥 그려주고 힘에겨워 치렁치렁 내려앉는 잎을 짜임새 있게 한 두개 느려 뜨려주면 일단 잎 그리기는 끝난다. 그리고 꽃은 잎들 한중간에 꽃대를 그리질 않고 그냥 적당하게 꽃을 얹혀 그리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이 창포를 좋아하는 이유가 꽃잎이 좌우 대칭이 기가막히게 똑 같다는 것이다. 도톰하게 양 옆으로 한줄기씩 그리고 그 중앙에 한잎 늘여 뜨리고 맨 마지막으로 중앙에 세 개정도 왕관같이 머리만 치켜 세워주면 끝이다....
이런 인연으로 어려서부터 창포를 참 좋아하고 지금도 지루한 회의시간이 길어지거나 몇시간씩 사람을 기다릴 틈이 있다면 볼펜으로 창포를 그려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요즘 여기저기에 붓꽃인지 꽃창포인지 노랗게 또는 갈색으로 피워 여름으로 가는 길목을 싱그럽게 한다. 간혹 길에서 발견한 창포를 보면 가까이 가서 그에게 피식 웃어 준다. 한때 좋아했던 연인이었고, 한동안 나신을 나에게 맡긴 모델이 아니었던가?
그런 꽃창포를 보면 참 우리나라 여인들 같은 수ㅡ수한 꽃이란 생각이 든다. 화려하질 않고 또 드러내지도 않고 그냥 파워있는 자체로 아름다운 꽃, 정원이나 못 가운데서 피워있는 이 꽃을 본적이 없다. 다소곳이 한켠에 비켜서 있어 그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산하질 않고 피어있는 꽃이다. 그러나 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슬퍼할게 아니다. 나같은 사람은 장미보다 백합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게 쳐주고 있질 않는가?
예전에 써두었던 창포사랑이란 시를 옮겨 놓는다. 아마도 요즘들어 처음으로 시심이 동하던 어느날 썼던 기억인데 그 후로 50여편을 더 썼으니 나에게는 좋은 시작의 단초를 제공했던 행운의 꽃이기도 하다.
창 포 사 랑
무등산 약수터 가는 길엔
창포꽃 한 무더기가 있었다.
항상
내 눈에 익숙해 버린 꽃 무더기
노랑, 자주꽃의 순박한 자태가
봄, 여름, 가을, 겨울 피는건 아니지만
항상
내 마음에는 노랑 붓꽃이 피어 있었다.
여름이 지나가는 어느날
말끔이 정리해 버린 약수터 길에서
내 창포 꽃무더기도 어김없이 사라져 버렸다.
항상
내년을 위하여 잠시 베어 두었던 것을
내 마음이
창포피는 계절을 기다림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게 사랑인 것을
모델이 되었던 비슷한 붓꽃/사진은 빌려 왔음
이 시에 모델이 되었던 꽃창포는 무등산에서 산장을 가는 길을 몇 키로 따라가다 보면 산장과 담양으로 나누어지는 삼각지점이 있고 충장사던가 사우 옆으로 이치부락이 있다. 이 마을에는 생수가 좋아 사람들이 생수통을 들고 한통에 200원 정도를 주고 물을 길어가는 물 좋은 곳이다. 나도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번은 물을 길어 먹는 인연으로 이 마을을 뻔질나게 들어 다녔다(지금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물을 길어갈 기회를 주질 않음). 그 곳에 노오란 꽃창포가 늘 그렇게 수수하게 반겨 주었다. 이 무렵에는 그녀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정도였다. 눈 감고도 그의 기다림을 알아볼 정도인데 어느날 주말에 그 마을을 찾았는데 허전한 구석이 바로 느껴졌다. 마을에서 여름철 모기 서식지라는 이유로 그 주변을 말끔하게 정비를 해 버린 것이다. 나는 그 허전함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간혹 그곳을 찾아 본다. 내년에는 꽃을 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희망사항으로 변한지 오래다.
오월이다. 이 오월에 꽃은 당연히 꽃창포라고 말하고 싶다. 수수하고 아름다운 동양의 여인네 같은 꽃. 단오가 가깝게 다가온다. 이 창포는 옛 선조 여인네들에게 목욕할 물로 긴요하게 쓰였고 요즈음은 창포비누로 여인들을 일깨우고 있다. 너무 화려함을 떨지 말라고,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누구도 채워주질 않은 허무함과 공허가 더욱 무섭다고.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발산할 때 그 아름다움은 생기는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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