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일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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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박 대위의 그 표정을 -
우리 소대는 동부 전선 후방에 투입되었다
적의 견고한 방어망을 뚫기 위해
후방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산발적인 교전을 벌임으로써
아군의 본격적인 공세를 위한
교란 작전을 펼치는 것이 임무였다.
우리의 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적군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마도 우리의 작전을 읽기 시작한 듯 했다
소수의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적 지휘부는 2개 중대의 병력을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이끄는 박 대위는
탁월한 군인이었다
기본적인 전술은 물론이거니와
예측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또한 뛰어났다
적절한 곳에서의 매복 작전과
상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역습은
그의 2개급 특진에 이유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작전 3일째,
우리는 탄환을 아끼기 위해
깊숙한 계곡에서 적 첨병 분대에게
기습적으로 백병전을 감행했다.
나는 뒤에서 덤벼드는 적병을
미처 보지 못해 위기에 처했으나
바로 그 순간
박 대위의 단검이
쏜살같이 적병의 허리를 찔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쓰러진 적의 가슴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박 대위가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적병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도주하는 적을 뒤쫓았으나
나는 박 대위와 적병이 나누는
마지막 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지 ....
다음 생에서는 ....
좋은 인연으로 만납시다 ....'
금강석처럼 표정이 없는 박 대위는
손바닥으로 적병의 눈을 가리운 채
그의 임종을 지켜 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작전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작전 5일째,
우리의 최종 목표가 눈앞에 있었다
어젯밤 지휘부와의 마지막 교신에서
아군이 적지를 향해 총 공격을
개시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적의 추격을 따돌리며
아군이 점령 예정인 816고지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증강된 적 병력은
마치 전쟁의 목표가 우리의 목숨인 듯
집요하게 추격해 왔다.
끝내 우리는 고지까지 이르지 못하고
막다른 지형에 몰리고 말았다
우리는 지형 지물을 이용하여 소개한 후
마지막 일전을 기다렸다.
아래 능선에서 적군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적막한 삶도 여기서 끝나는가 보다
동료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끝을 알고 있다는 그 표정들은
나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난 박 대위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보고 싶었다
강철같은 군인의 얼굴을.
박 대위는
작전 중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신조를 어기고 있었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
화랑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침묵에는 좀처럼 금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으로
두려움에 대한 답을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 대위는 미소로 화답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마치
너에게만 들려준다는 표정으로 속삭였다.
'너무 많이 죽였지?....'
솔밭 사이로 햇살이
바람을 타며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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