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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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젖어 기어 나오는 아침에는 피로 회복제라도 먹었는지
지치지 않은 태양이 뜨있다.
밤새 길가의 가로수에 간신히 매달린 노란 박쥐의 날개처럼
보이던 플라타너스 잎들이 아무렇게 돋아나 있다.
한동안 그는 편지를 쓰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도 혹은 지하철 손잡이를 부여잡고라도
머릿속에는 여백없는 긴 편지지 하나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래.
난 아직 멀쩡히 살아있다구...
거울 뒷면의 타인같은 내가 일그러지고 있어..
이 보라구...잘 살고 있겠지...
울지는 말라구... 사는게 다 그런거지...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할수도
있는거지..늘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도 어린 아이들의 심성처럼
빼앗기지 않기위해 남 몰래 버려버리고 마는 그런 무의식적인
습성이 남아있는지도 모르지.
운명이라는 것도 실은 운명이라고 인식하는 그 순간에 운명이 깃든다
라는 말두 있더라구...
그래...살아가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구 말하진 않아...
고작 잠시 동안의 드라마속 비련의 주인공을 들여다보는듯
잠시 슬프해주고 그러다 일상에서 잊혀지는 그런 싸구려 위안은
필요없다라구 말할께. 자신을 위로할수 있는 사람은
타인같은 자신일 뿐이지....
전철을 탄다.
전철속의 수많은 다른 [나]가 그곳에 앉아 [나]의 닮은 꼴을
기다리고 있지.
언젠가의 그 삐걱이는 침대위에 슬픈 폐허는 그대로 남아있는 거겠지.
비열하다는 것도 실은 자기위안일 뿐이지.
자신이 자신에게 비열함을 되뇌어 주는 것또한 치사한 일이지.
하지만...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모순된 사랑의 감정이 남아있다고 해서
그게 비열한 사랑의 흔적은 아닐거라고 생각해.
전철은 한참 승객들을 싣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도망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 검게 그을리다 불타오르는 하얀 종이를 본다.
그리움이나 기다림...혹은 미움...가슴아픔의 모든 감정의
싹들이 벽을 치고 억눌린 가슴 풀어헤치고 거리로 달려나가는
풍경이 보이니?
지워진다는 것이 어떻게 컴퓨터의 DELETE 버턴을 누르는 것처럼
쉬울수 있을까?
살면서 지워가며 사는거겠지.
누구나 그렇지. 누구나...
내가 돌아갈 자리들...
있을까?
늘 아름다움만 꿈꿀수 있다는 것과 부서질수도 있다는 것.
알아서 기어라...라는 말이 있지.
자신의 처지에 맞게 처신하라는 저 70년대 군부독재시대의
모습이겠지...아니면 그 이전의 그 일제시대 군인이였던 시절을
그대로 답습한 것일수도...
자신에 맞게 살고 자신에게 적합한 사람과의 사랑?
사랑도 권력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것마저 타도의 대상이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건 인간의 욕구이겠지만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무의 가지를 친다면
결국은 그 나무는 죽고 말지. 잘 다듬어진 정원수를 볼적마저
불쑥 욕지기가 나오는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지.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인정한다면
그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아픔은 아픔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슬픔이나 외로움마저
그대로 내버려 둬...
그대로 ...그대로 그 상처 그대로 ...
그런 관념적인 말들또한 겪어 본 사람들만 아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깊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 험준한 산을 등반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건 산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
존재로서의 가치는 존재한다는 것이 그 본연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존재할수 조차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일까?
견딘다는건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그 익숙함은 성장한다는 것이겠지.
그는 길을 따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구?
정말 그럴까?
바보들은 그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걸 제 몸으로 겪어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여행객외에는
아무도 아름답다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운 풍경만 취사선택 당하고 마는지도 ...
내 가슴안 우물에 던져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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