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공갈새

공갈새

늪의 우기...



	아름다운 늪...늪지대의 우기... 3월 26일...월요일...시작하는 취한 채 잠들어서는 깨어나 보면 그대로다. 누군가 머릿속 필름을 엉망으로 만들기나 한 것 마냥 다시금 혼돈스런 기억의 필름들이 인화된다. SECRET GARDEN...song from a secret garden.. 그런 날이다. 3월이 얼마만큼 남아서 내 뒤를 따르는가.. 앞으로 얼마만큼 ... 멈춰서야 하는 건지... 그녀는 가고 없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지. 내 어둔 심정들을 들여다보기나 하는 것처럼 그녀의 눈은 충분히 맑다. 간혹 난 그녀의 어두운 동굴벽화를 본다. 그 어둡고 습한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들을 닦아내고 가만히 쓰다듬고서 내 얼굴을 대어본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까? 그녀가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고 말하는 순간 눈물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아 달라는 일종의 주문일지도... 하지만 난 아직 그 어두운 장막 안으로 기어 들어가지 못했다. 이 음악처럼 그녀도 마른 빈방인지도 모를 일이다. 건조한 빈방을 둘러보면 마치 그녀가 빈방으로 남겨져 있는 것만 같다. 그녀를 알 수 있을 때까지 난 그 길을 돌아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난 쪽문을 사용하기를 바란다. 가장 큰문을 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로움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싫은지도... 그 작은 문을 살며시 들어오면 그녀의 작은 침실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녀는 하얀색의 충분히 맑은 색을 좋아한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곳에는 그 맑은 심성이 서려 있어서 그런걸꺼야. 아니... 오히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진행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물어 본적이 있는가. 내가 아버지 혹은 엄마라는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보았는가. 어쩌면 언어와는 상관없는 그와 다른 소통방식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난 그녀를 잘 안다. 잘 안다고 말하고 싶다. 잘 알 것이다. 그녀는 대담하다. 대범하다. 씩씩하다. 그리고, 남보다 늦게 몸살을 앓는다. 그녀의 빈방에서는 따뜻함 이상의 어떤 따뜻한 온기가 스민다. 유아 회귀적인 성향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녀의 자궁 속에 들어와 있는 것 마냥 난 자유롭다. 그녀는 자유를 외치지만 결국은 그 자유란게 삶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난 그녀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자궁은 실제로도 아주 따뜻하다. 그 온기를 느끼며 사정을 하고 난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건 저주스럽다고 말할 만큼의 수치스런 내 어린 날의 한 컷 짜리 포르노다. 음...진부한 얘기다. 차라리 부진한 얘기다. 아이러니한 얘기들. 어느 소설에서 아이를 담지 못하는 자궁을 가진 애미는 삶을 견딘다. 어느 날 자식이라고 데리고 오는 남편에게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를 거두고 그 남편의 무심한 표정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미안함 이상이 보였을까? 아마 그 남편은 참 미안했을 것이다. 혹은 그 애미라는 사람도 어쩔 수 없는 미안함으로 아이들을 자기 배아파 낳진 않았어도 남편의 자식이면 자신의 자식이라고 믿고.. 아니 믿고 싶어서... 키워내고 가끔씩 술 취하면 쏟아 내고야마는 악다구니정도..그것이겠지. 애미는 생각할 것이다. 왜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궁을 달고 태어났는지... 그래서 왜 자신이 힘들어야 하는지도... 모질게 버티고서야 그 애미의 자궁에서 고름주머니를 만들고서야 자신은 아무것도 담지도 못하는 자궁에서 고작 만들어지는 것이 종양 덩어리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지. 어떻게 쓸모 없는 자궁에서 자궁암을 키울 수는 있었을까? 이것이 아이러니다. 삶은 아이러니의 반복... 그녀는 내가 왜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그것마저 아이러니다. 아니 잠복된 이유를 동굴 속에 몰래 넣어두고서 아이러니처럼 덮어두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것마저 아이러니한 삶 속에 살짝 끼워 넣고서 이 아이러니로 점철된 시간에서 '다 그런 거지..' 하고서 체념하는지도...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우고 가만히... 그리고 적당히 웃어본다. 적당히... 세상에는 적당히 라는 말을 잘 쓴다. 나 역시 그 적당함을 잘 사용해왔다. 세상의 적당한 남편...적당한 아내..그리고 적당한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 그녀의 친구의 남편은 과연 적당한 남편인가? 설마... 부당한 남편이지. 적당함이라는 건 타협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세상과의 타협...아내와의 타협..아이들과의 타협...그리고 그 타협은 부당하다. 왜 부당하냐고 묻지는 말아...왜 부당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그건 그냥 내 편견으로의 느낌 일뿐이니깐... 그 적당함이라는 말의 이면에 내포된 어감이 치사하단 느낌인 것이다. 다만 그 적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 어느 허름한 사진관에서 찍어서는 거실에 떡하니 붙여놓은 적당한 가족사진... 적당히 웃고 적당한 포즈로 자세를 잡고서 "자아...찍습니다...조금 웃으세요..네네..좋습니다...챨칵..." 난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이기는 싫을 뿐이다. 세상의 위선들을 야금야금 씹어서는 밷아내고 싶은 것뿐이다. 능청스럽게 떠들어대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 난 조금 높은 곳에 머물고 싶다. 하긴 나조차 이 졸열함으로 위장된 가면 속의 남자일지도... 세상에서 한발 짝 위에 딛고 서 있다고 뭐가 다를 수 있겠는가... 그녀는 주일마다 교회를 가길 원한다. 교회... 난 꽤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닌 듯 하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성당 같은...종교적인 사람들을... 난 일주일동안 얼마정도의 사람들을 상처 주고 주일마다 그만큼의 죄를 사해달라고 비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주여! 저는 주님 앞에서 오늘에서야 고백하나이다... 저는 남을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나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어떤 이에게는 뼈저린 상처를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해버리고 돌아서서는 이렇게 주님 앞에 무릎꿇고 빕니다. ... 저는 그들에게 그 아픔들을 달래주기는커녕 더욱 쓰린 상처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이렇게 기도를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이렇게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게 궁금할 뿐이다. 또한 자신이 그들에게 상처를 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그 위선들을 견딜수 없게 하는 것이다. 미사를 하는 동안 제 탓이로소이다 라는 말을 세 번 하는 것을 봤다. 가슴을 치며 그렇게 자기 탓이라고 외치고서 몇 번을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특히 주님을 영접하는 이들은 더욱더 망각의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만 같다. 교회 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보이는 사람들을 난 여럿 보았다. 하긴 이것도 나의 편견일수도 있겠지. 삶이란 것이 한순간이라는데 그 삶조차 버거워서 겨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고 나면 삶이 주는 무게를 감당 못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난 안다. 한때는 자질도 없는 혁명가를 꿈꾸는 시절이 있었다지. 투쟁이라는 말이 좋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알 수도 없는 복수심만 키우고서 덤비는 조무래기 같은 시절들... 다만 그게 나의 위선 들이였다는게 슬프다. 젊은 날의 객기로 무장한 잘 난 놈들이 이론들만 무성하게 키우고서 프롤레탈리아 해방을 외치는 쓰레기 같은 놈들을 욕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이 도대체 노동의 질곡을 맛보았느냐 말이다. 노동은 신성하다라고 말한 놈들이 언제 노동자의 삶을 생각해 보았느냐... 노예근성으로 다져진 노동자들의 비열함을 아느냐 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비굴해지는 모습들을 난 보았다.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비굴해진다는게 어떤 기분인지 그들이 알까? 노동자들이 삼겹살에 소주 들이키고 옛 노래 부르는 심정...자신들이 비굴했다 라고 회한처럼 들먹이는 말들...그래..그때는 그랬었지...우리 부모세대이전부터 애비가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고 그러진 말자라고 했었던 어린 날의 모습이 지금에서는 어떠냐구...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애비의 조악한 자화상처럼 일그러 진줄 몰랐단 말이야? 제기랄.... 그 해의 그 사람은 늘 그 같은 말을 달고 다녔지. 아마 "이런 [좆]같은 세상!" 이 말은 그 사람의 별명이기도 했지. 멀리서 그 사람이 오는게 보인다 싶으면 야야...저기 좆같은 세상 온다...어디어디..저기 앞에 오잖아...아하..진짜네..좆같은 세상이 오고야 마는군..하하하...그는 늘 [좆]이라는 낱말에 강한 악센트를 넣어서 그 말을 강조하곤 했다. 정찰대임무가 시작되고 전경들이 둘러싼 운동장을 막아서며 그는 다시 "아이..이 [좆]같은 썌끼들!" 당시 울산 무거동으로 전경들이 몰려오고 울산대쪽과 연계하여 다시 재정비해서 거리출두를 조직하던 집행부 고위층 아저씨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사복경찰에게 잡히고 그 시간 어디선가 달려온 그는 정찰대의 임무완수를 위해 그 사복형사들과 몸싸움을 했었다. 말이 몸싸움이지 실은 난투극에 가까웠지. 허약해 보이는 몸인데도 예전에 검도를 했다는 말이 실감나게 아예 각목을 들고 설쳐대고 그가 휘두른 각목에 한 명이 나뒹굴고 그 사복형사들은 주춤거렸다. 이미 다른 정찰대들이 위원회 의원들을 피신시키고 난 후 전경들이 밀고 들어왔다. 한참동안 피 튀기는 싸움으로 그는 이미 지쳐있었다. 전경들이 둘러싸고 바닥에 스러진 그에게 몽둥이 세례가 쏟아지고 조금 전 사복형사들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그를 짓밟고 있었다. "이 쎄끼...죽여버려...이 씹쌔기..겁대가리 없이..." 그의 몸둥이에 쓰러져 있던 사복형사 한 명이 실려가고 나머지 형사들이 복수라도 하는 듯 그를 반쯤 죽이듯 패고 그를 싣고 갔다. 그리고 다시 노동자연합 집회가 시작되고 전경들이 때를 지어 몰려오고 행동대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끌려갔던 그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난 항상 그 자리에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이게 뭐지? 그런 심정으로...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각목을 힘껏 잡고서 다시 달려가면서도 난 이게 너무 비현실 같더라구...환상이야..이건 환상 같아...꿈꾸는 것만 같아... 멀리 누군가 전경의 전투화 발에 맞고서 한 명이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는 전경이 행동대 사람 네 명에게 붙들려서 구석에 끌려가서는 맞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 전경에게 내려꽂히는 각목에 그는 움츠리며 몸을 비틀다 어느 순간 사지의 기운이 빠진 듯 늘어지고 다시 몰려오는 전경들이 급히 업고 급히 달려갔다. 조금 전 전경의 군화 발에 쓰러진 사람은 미주섬유 여성 지부장으로 밝혀졌다. 누군가 쓰러진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옆구리를 차여서 갈비뼈가 부서졌고 자궁손상으로 영구불임이라고 진단이 내려졌다. 그녀는 남자처럼 목소리가 크고 인상파라는 별명이 있었었다. 늘 얼굴은 구겨진 마분지 마냥 그렇게 보였다. 한 번도 말을 해보진 않았지만 소문에는 성질이 더럽다라고 우스개 소리로 전해지곤 했었다. 그렇게 우악스런 그녀조차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건 치유할 수 없는 아픔 이였을 것이다. 한 달 후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도망쳐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강하지 않기 때문에 강함을 부각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강해 보이려는 모습이 딱하다. 그런 안간힘이 고작 견딘다는 것일 뿐이잖아... 그런 건 결국은 무너지는 거더라구...그녀로서는 떠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것이 존재이유는 아닐지 몰라도 삶에서는 치명적인 상처일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 때의 누군가는 생리가 끊긴지 몇 달이라고 하더라구... 근데 그게 여자로서는 중요한 일인 줄은 몰랐던 거지. 누구는 전 생애를 걸고서 하는 모험을 또 누구는 고작 젊은 날의 혈기로 알고서 뛰어들었다가도 슬쩍 발빼고서 그 시절에는...하면서 소주 안주로 나오는 그런 말들은 싫다는 거지. 그 때의 그녀가 했던 말이 슬핏 생각난다. "누군 힘들지 않아?" 그래서 난 도주했다. 내 젊음에서 야반도주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다시 난 아버지 당신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애써 가르쳤을 그 공평함 이란게 도대체 무엇인지 난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다. 당신이 늘상 마셔대던 그 소주를 내가 마셔대고서도 아직 알지 못한다. 당신이 바다 저 쪽에 앉아있고 엄마는 그 건너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뭐지? 뭐가 문제지? 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 정서에 기대서 나약한 자아를 덮어보려는 수작이란거지. 일어나 봐! 일어서 보라구! 언젠가 죽음보다 더 습한 기분 나쁜 바람이 불 때에 당신은 내게 없었지. 그런 때에 한 번이라도 돌아보았더라면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내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젠 덮어 둘 것이다. 그때까지는... 15시 23분....그녀에게 전화 오다. "잘잤니?" "응..." 잘 잤는 걸까? 그녀는 그녀의 목소리는 태양 같다라고 느껴진다. 뜨겁지도 않고 차운 바람도 불지 않는 4월의 볕...볕... 말간 우유 같기도 하다. 김이 새록새록 나는 아름답다...아름답다...아름다운 늪...늪지대의 우기... 피아노 소리...변기에 앉아있는 동안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 소리...어린 날부터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집은 참 행복하겠지 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면 무지개상회가 나오고 그 옆에 떡 집이 있고 그 길을 350보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이층 양옥으로 새로 지은 빨간 벽돌 집이 나온다. 늘 그 집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 집 아저씨가 아버지와는 예전에 같이 일하던 친구라고 하긴 했다. 피아노가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는건 그 피아노가 주는 넉넉한 이미지를 동경한다는 의미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