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공갈새

공갈새

아름다운 늪...



	2001년 3월23일. Stan gats 무심한 침대위의 돌. 3월은 스윙하는 달. 나는 지금 스윙하고 있다. 벌써 내게서 지나친 무성한 이야기들이 어느 사이에 하루키의 상상마냥 The Girl From Ipanema 가 되어간다. 쿨 재즈에서의 평온함이 주는 하얀 연기같은 아련함은 어쩌면 내 안에서의 풍경으로 만들어져서는 우물 속에 집어던져 지는 지도 모른다. 무심한 Gats 의 음악을 들으며 팬티 7장을 빨았다. 목이 짧은 양말들과 그 외의 몇 가지의 옷을 빨면서도 그 여름날의 이파네마 아가씨에 관한 얘기들을 상상해본다. 그녀가 먹다 남긴 서울우유를 마저 마시고 씻는다. 삶이란 것도 실은 이런 사소한 얘기들의 옴니버스 앨범 같은 느낌이다. 16년 전 난 포항의 어느 외진 바닷가에서 소라껍데기를 만지작거린다. 거침 모래알을 딛고 서서 황폐한 바다의 뒷면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산을 찾는 사람은 자신을 찾으러 간다고 하고, 바다에 돌아오는 사람은 사람이 그리워서 온다는 말이 있긴 하지. 하긴 인어공주가 꼬리 살랑거리며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지. 진짜 바다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은 말이야. 생선 비늘 밟고서 그 비린내를 콧구멍으로 들이마시며 항구로 들어서는 그 검은 얼굴들을 봐야 알 수 있다구. 부감으로 카메라 잡고서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 업 해봐. 그들의 얼굴이 바다야...바다라구... 로맨스를 꿈꾸는 나이가 지나고 그 바다에 익숙해지면 바다는 푸른 사막 같다는 느낌이 들지. 그 막막함이 좋을 뿐이지. 어디로든 떠날 수는 없다구.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기어올라오는 사람이 맛보는 그런거 아닐까? 특히 수영을 못해서 죽다 살았다 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해가 쉽겠지. 어느 時에 바다가 죽고...삶이 죽어서 떠다니는 유랑의 사막...이라는 그런 구절이 있었을 것만 같다. 구석구석 사막의 쓸고 닦아보니 그녀의 머리칼이 구석구석 많기도 하다. 담배를 하나 피워본다. 박하사탕은 아무래도 바다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막막한 바다에 다다른 한 인간이 가지는 정서가 푸른 사막과도 일맥상통하는지도... 물론 그 영화에 바다는 보이지 않고 자살을 위해 은밀히 권총을 전달받는 접선장소가 공원이나 외진 산도 아닌 어느 항구 방파제이긴 하다. 비 오는 바다에서 우산 쓰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조금 눅눅한 느낌으로 보이는데..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비 오는 방파제에서 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을까? 화창한 봄날도 아닌 그런 날에 사진 찍는다는 것...감독의 쓰잘데기 없는 영화적인 겉멋 이였을까? 모르겠다. 그녀는 오늘 아침 십자가 모양의 팬티를 입고 나갔다. 검은 바탕에 하얀 십자가...꽤나 멋있는 팬티다. 언젠가 그녀에게 미키마우스 팬티를 선물하긴 해야겠다. 그것도 셋트로 말이지. 미키마우스...자본주의로의 회귀...음...거창하군. 다시 바다로 돌아가서 얘기하지. 바다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여긴 적이 있었을까? 거의 없는 듯 한데, 그건 바다에 익숙해서가 아니다. 내륙의 사람들에게는 바다는 아름다움과 자유의 귀환쯤으로 생각되는 지도 모른다.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바다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어린 날 죽은 내 어린 누이의 영혼이 그곳 어디 쯤에 있는지도 모르지. 모든 영혼들은 바다에서 자신을 말끔히 씻고서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았으니깐. 누이의 생일이 언제인지 난 기억하지 못한다. 알려주지도 않았던 것 같다. 허나, 나도 알지 못하는 예감으로는 가을날의 어느 늦은 오후였을 것이다. 그 예감 이란게 실은 내 엄마가 미쳐간다는 느낌이 그런 계절에 유독 돋보였으니깐. 미쳐간다라는건 정신이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건 치유되지 못하는 가슴앓이같은 가을에 오는 계절병 같은 것이다. 가을은 언제나 계절이 한바퀴 돌면 돌아오는 것이다. 삶을 견딘다는게 얼마나 모진 싸움인지 알 것만 같았는데 그런 싸움에 나조차 개입되길 원치는 않았지. 하지만 그 죽은 누이가 바로 나이기에 이건 빠져나갈 건덕지도 없는 그런 종류의 난감함이였지. 봄이 오고 있고, 확실히 봄이 다시 생겨난 것 같다. 봄이 온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 삶이 겨울로 시작해서 봄으로 대자연적인 변화를 시작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지. 난 말이지. 난 마른 풀처럼 조용하게 살고싶어. 사소한 바람이 지나가면 조용히 몸 한번 흔들어 보는 그런 마른 풀. 비가와도 빗물에 젖어서는 마른 날을 조용하게 기다리는거지. 마치 SWING JAZZ을 듣는 오후의 마른 봄빛처럼... 째즈같은 날들로 돌아가고 싶은 것 뿐이야. 여름날 동생과 아무도 찾을 수도 없고 알지 못하는 그런 아카시아 숲 속의 편편한 바위에 앉아 잎사귀 사이로 슬쩍 보이는 햇볕에 눈 한번 찡그리는 그런 날. 태양이 구름에 잠깐 가려질 때, 무성한 풀들이 내 허리께로 자라난 그 평원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그런 날. 친구들과 달구어진 자갈밭 해변에서 한차례 헤엄을 치고 두런두런 앉아 사이다 돌려 마시는 그런 날. ............... 그런 날의 배경은 모두 여름인 듯 하다. 여름에는 모든 게 살아있다. 나조차 펄펄 살아서 고등어처럼 퍼덕거리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과시하지. 그래서인지 째즈는 여름의 음악이다. 오후의 그늘 같은 여유. MONK 가 살아낸 그 시절의 COOL-LIFE ... 그녀는 아이들에게 쵸코 파이의 정을 묻혀주고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참옹기쟁이 같다. 참옹기쟁이란 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3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든지 그 소리를 들으면 나에게 말을 건네면 좋겠다. "여보세요...3월이 지나가고 있어요..." 이렇게 말이다. 늦은 아침 그녀와 함께 씻지도 않은 얼굴로 기어 나와서 던컨 도너츠에서 갓 구운 빵과 향 좋은 커피를 마시며 통 유리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신발 사이즈를 얘기해도 좋으리라. 눅눅하지 않은 쿨한 삶. 그게 방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