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김상국

김상국

[꽁트]흉터의 비밀



	<흉터의 비밀> 1. “왜 이리 꾸물거려요?” “……” “아니, 이 양반이….” “……”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뭘 해요?” 그녀의 바늘같은 외침이 고요한 방안의 균형을 깨뜨렸다. 쇳소리가 조금 섞인 그녀의 목소리는 라르고에서 알레그로로 톤이 빠르게 변해갔다. 서늘한 눈매, 둥근 콧날, 도톰한 입술. 외모와는 달리 성격은 날카롭고 급한 게 더욱 도드라졌다. 미국에 와서 조금 느긋해지긴 했으나 타고난 천성은 바꿀 수 없는 모양. 어느 날 그녀는 종이 박스를 뜯어 이발기구 세트를 꺼내 앞에 내놓았다. 그런 뒤 다짜고짜 “앞으로 이발소에는 갈 생각 말아요”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 사는 언니가 보낸 것이라고 했다. 세트에는 충전식 전동이발기와 6밀리·3밀리 칼날, 빗과 두 개의 가위, 가발과 헤어스타일 책, 빠듯한 이민생활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한평 남짓한 좁은 화장실 안. 커다란 벽 거울 앞에는 나무의자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모든 준비가 다 됐다는 듯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앉으라고 손짓한다. 그런 뒤 매끄러운 나일론 천으로 몸을 차갑게 휘감는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 마치 시골 동네 한적한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드는 것 같다. 그러자 아득한 기억들이 물안개처럼 가물가물 피어오른다. 2.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갔던 시내 네거리 이발소. 그 이발소 커다란 의자는 어찌나 높게 보였던지. 그 의자 옆에는 둥근 회전 손잡이가 달려 있어 그것을 돌려 의자를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키가 작은 아이도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것 보다 뇌리에 더 강하게 박힌 것은 이발기구였다. 이발기와 면도칼, 여러 개의 가위, 머리빗, 솔 등이 위생함이란 상자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가죽 허리띠에 휘휘 면도칼을 가는 모습, 저 면도칼이 목덜미에 닿을 때면 몸은 거의 반사적으로 빳빳해졌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고약한 이발소 아저씨의 놀림. “얘는, 왠 기계충이 이렇게 많지”하는 비웃음이 정수리에 비수처럼 와 닿았다. 정말 수치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발소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얼마나 다짐했던가. “니, 부스럼 때문에 그라제?” “예, 다른 애들처럼 집에서 깎고 싶어서요.” “니 마음 다 안다. 그러잖아도 이발비도 부담이 되고 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아버지는 시내 이발소에서 본 똑같은 수동식 이발기구를 샀다. 이발소 대신 집 뒤뜰 어디든 좋았다. 그런데 1년 뒤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이발기구를 소독하지 않은 채 두었기 때문이다. 세균이 번식해 몹쓸 기계충이 정수리 주변으로 심하게 번졌다. 시골이라 병원도 없었고 약국에서 소독제만 사서 발랐다. 그것이 나중 커다란 흉터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그것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겪은 마음의 고초는 또 어떻고…. 짓궂은 아이들이 ‘흉터’를 가리키며 놀렸을 땐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물의 세계에선 약점은 즉각 공격의 대상이 된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비디오를 보면 호랑이가 순록의 무리를 노리다 그중 다리를 절든가, 약하게 보이는 놈 한 마리를 타깃으로 삼아 끝까지 추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야생 동물의 본능이 아니고 무엇이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은 인간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강자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다가 약자를 만나면 가차없이 공격하는 인간 군상들. 흉터를 약점 삼아 놈들이 벌인 가증스러운 유희는 지금까지 유년의 아픈 기억을 떠나지 않고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 장발을 할 때까지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바로 그 흉터. 다행히 덥수룩한 머리가 흉터를 까맣게 덮어 약점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장발이 곧 흉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의 흉터로 깊숙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3. 그 즈음 조국의 부름을 받아 또 한번의 빡빡 머리를 해야 했다. 대학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논산 훈련소로 입대할 때였다. 입대 전날 아버지는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이발기를 꺼내 뒤뜰로 갔다. 이발기는 녹슬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러나 이발기를 쥔 아버지의 손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굵은 핏줄이 울툭불툭 솟아 있는 손등이 거칠고 앙상했다. 강인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이발기를 갖다 댔다. 발등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긴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을 보자 순간 흉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입대한지 1년이 지나고 새봄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한참 잠에 골아 떨어졌을 때 비상 벨이 울렸다. 내무반은 어수선했다. 군장을 챙기고 연병장에 집합했을 때 별은 총총 빛나고 있었다. 부대에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잠결에 지급받은 총알 3백발의 무게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이라도 터진 것일까. 캄캄한 밤 트럭은 쉴새 없이 달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몰랐다. 날이 새고 대원 중 누군가 귀띔을 해줘서 알았지만 우리는 광주 시내에 들어와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면 쏴 버려”라는 중대장의 외마디가 아니더라도 이미 발포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음이 짐작이 갔다. 대원 모두 도로 양쪽 하수구에 매복을 하고 상황이 터지기만을 기다렸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얼마쯤 지났을까. 시청 옆에서 시위대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수는 기하급수로 불어났고 급기야 새까맣게 떼지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독재정권 타도” 라는 시위대의 외침은 점점 가까워졌다. 바로 그 때였다. 대원 중 누군가 시위대를 향해 첫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시청 앞 광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화염병이 터지고 돌멩이가 마구 날아들었다. 피를 본 시위대들은 흥분한 나머지 육탄돌격을 할 태세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다. 마구 날뛰는 군중 사이로 앳된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 때였다.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멀리서 얼핏 봐도 그 앳된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아스팔트 위로 힘없이 나동그라진 것 같았다. 귀신에 홀린 듯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흐르는 세월을 따라 모두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떤 놈은 회사로, 어떤 놈은 남대문시장으로, 어떤 놈은 카바레로, 또 어떤 놈은 노동꾼으로 복귀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복학을 했을 때 캠퍼스는 활기에 넘쳤고 정상이었다. 축제 때면 으레 오월 그 날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사진전이 열렸다. 그 때 아스팔트 위로 낙엽처럼 힘없이 스러진 앳된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었다. 캠퍼스를 떠나 어디론가 가야 했다. 아무도 오월 그 날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오월 그 날의 상흔은 마음의 흉터로 자라 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의 방에 갇힌 흉터. 그 흉터는 그렇게 몰래 몰래 숨어 지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느새 아득히 잊혀져 오랫동안 현실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4. 전동 이발기를 쥔 그녀의 손끝이 떨린다. 과연 머리를 깎을 수 있을까. 생전 처음 이발기로 머리를 깎겠다고 겁없이 덤비는 그녀의 손을 보니 마음 속 흉터가 되살아 나는 느낌이었다. 아, 자칫 잘못하면 탄로날 비밀. 만일 그녀가 내 정수리의 그것을 캐낸다면…아, 게다가 그 흉칙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그로 인한 혐오감은 또 어떻고…. 하지만 대세는 이미 그녀에게로 기울어 있다. 그녀의 손끝에 한 사내의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이발기에 6밀리 날을 끼우고 목 뒷부분을 한 차례 훓어간 그녀는 이번엔 가위로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머리카락을 한켜 한켜 잘라낸다. 뭉텅 뭉텅 타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낙하 속도가 꽤 느리게 느껴졌다. 까만 머리카락들이 공중에서 몇 바퀴 회전하더니 가벼운 깃털처럼 힘없이 내려앉는 것이다. 그것이 잘리어 나온 흉터의 한 부분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가만히 좀 있어요. 흔들리면 실수를 하게 될지도 몰라요. 알겠죠?” 실수라. 암, 그렇지 실수는 절대로 안돼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가위질이 끝나자 또다시 전동 이발기를 작동시킨다. 윙윙거리는 소리, 아주 짧은 파장의 진동이 어우러져 가슴 속살을 파고드는 것 같다. 다시 가위로, 가위에서 다시 이발기로 그녀의 손이 빠르게 옮겨간다. 문제는 머리 오른쪽을 깎으면 왼쪽이 불균형을 이루고, 왼쪽을 깎으면 오른쪽이 언밸런스. 또 머리 위쪽을 깎으면 옆 머리가 균형을 깨뜨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 때마다 그녀는 마뜩찮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가위질을 하거나 3밀리 날과 6밀리 날을 번갈아 끼워 보지만 갈수록 태산. 이러다 흉터가 어떤 흉물스런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숨이 딱 멈춰질 것만 같았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랴. 정수리 부분 뿐 아니라 머리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어디를 봐도 한 올의 머리카락도 남아 있질 않은 것이다. 정수리의 치부를 들여다 보는 그녀의 눈빛에 그만 화가 치밀어 이발기를 냅다 집어 던졌다. 이발기에 맞은 거울이 파편을 튀기며 세면대 위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 순간 오월 그 날 마음 속의 흉터마저 살아나 모든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었다. 막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단말마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손을 휘저으며 “안돼 안돼”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 때다. 누군가 몸을 세차게 흔드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옆에는 아내가 누워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가보니 세면대의 거울도 말짱했고 이발기의 파편도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놀란 아내가 “자다 가 왜 그래요?”라며 어둠을 털고 일어났을 때까지도 한동안 환청과 착시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