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김상국

김상국

[꽁트]어떤 쾌감



	<어떤 쾌감> 이 놈을 어떻게 하지? 박씨는 아들 때문에 아침부터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조아려도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분하고 억울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박씨는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곧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녀석 지금 뭐하나?” “당신이 너무 심했어요. 그쯤 하면 됐지 총까지… 애가 큰 충격을 받았나봐요. 지금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어요.” “아니 뭐야, 심했다니. 그런 놈은 살 자격이 없어.” 박씨는 아내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어찌하면 좋은가. 자식이라곤 아들 하나 뿐인데 이렇게 부모 속만 태우다니. 박씨는 자식을 잘못 키운 죄책감에 스스로를 탓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을 원망하기 바빴다. 옛말에도 ‘자식농사가 상농사’라 하지 않았던가. 10여년 전 이민 올 때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아이 교육을 시키려고 오지 않았던가. 한국 교육 풍토에서 더 이상 내 아이를 맡겨둘 수 없다는 나름의 치밀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올 가을 10학년에 올라간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전 무슨 클럽에 들어갔다고 자랑하면서부터. 처음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나 컸기에 믿었다. 그런데 박씨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 된 것이다. 어느 날 셰리프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 학교 학생들이 인적이 뜸한 사막지역에서 패싸움을 벌이려다 경찰에 발각돼 충돌직전 해산했다는 것이다. 그런 무리들 속에 아들이 끼어 있었고, 조사결과 아들이 마약을 하고 있다는 경찰 리포트를 받았다. 박씨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간신히 몸을 지탱한 김씨는 그날 저녁 아들을 다그쳤다. “이 놈아, 아버지한테 솔직히 말해라. 너 마약하지?” “……” “왜 말이 없나 이 놈아. 바른 대로 얘기해. 어서.” 다그치는 말에 아들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사실이에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나한테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지만 전 생각이 달라요. 전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어요. 그 친구들은 좋은 친구들이에요.” 박씨는 망연자실했다. 이날 이때까지 아들을 너무 믿은 것이 실수였다. 허우대는 좋았으나 천성이 순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 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노래를 부르며 태평양을 건넜던 박씨의 아메리칸 드림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일견 그럴 듯하구나. 하지만 마약은 절대로 안된다. 약물에 중독되면 너의 인생은 끝장이다. 만약 앞으로 한번만 더 손댄다면 너와 나는 끝장이다. 명심해라.” 이날 따라 박씨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배어있었다. 끝장이라는 말. 바로 그 말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결연한 의지였다. 함께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탈선은 눈에 띄게 심해졌다. 아무리 타이르고 온갖 겁을 줘도 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미들 스쿨에 다닐 적에는 클래스에서 1,2등 하던 녀석이 성적도 뚝뚝 떨어져 이제는 꼴찌에서 1,2등을 다투는 것이다. 마약도 점점 많이 하는지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돼 있는가 하면 무기력증과 의욕상실증을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민 10여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는 순간이었다. 아들 탓에 비즈니스도 영향을 받았다. 하는 일이라곤 잘 되질 않았고, 심지어 불황까지 겹쳐 이제는 먹고 살기를 걱정할 지경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박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미국으로 이민해서 죽기 살기로 안 해본 것 없는 터였다. 스왑밋, 페인트칠, 청소, 가드닝 등 힘든 일은 두루 거쳤다. 그런 생존의 고통 속에서 번듯한 비즈니스라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캄캄한 터널이 지나고 이제 먹고 살만하니 자식이 속을 썩이는 것이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우리 가족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박씨의 눈자위에는 물기가 촉촉했다. 그의 거친 손등이 파르르 떨렸다. 박씨는 일생일대 최대의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그 결단은 힘든 노역을 극복한 정신력에서 우러나왔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안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씨가 생각한 것이 강한 충격요법. 그것이 박씨가 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박씨는 위험한 리커 스토어를 하면서 호신용으로 구입한 스위스제 38구경 권총을 떠올린 것이다. 그 권총은 리커 스토어를 그만 두면서 옷장 깊숙이 넣어뒀던 것이다. 그날 밤 아들과 일전을 벌일 순간이 왔다. 잘만 하면 아들이 마약에서 손을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선 아들을 안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아들을 앉히고 조용히 동태를 살폈다. “이제 너는 선택을 해야한다. 마약을 끊을래, 아니면 함께 죽을래.” 그러면서 박씨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총을 꺼내는 박씨의 손이 굵은 파장을 일으키면서 부르르 떨렸다. 이 순간 박씨는 방바닥에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디까지나 ‘충격요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뿔사!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되레 핏발 선 눈으로 박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이려면 죽여봐라 하는 '막가파'식으로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쯤 되자 박씨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 아들 앞에서 붉은 피를 쏟으며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목적이 그게 아니었기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지독한 놈이었다. 마약을 하면 다 이렇게 되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박씨의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내가 졌다. 이제 너의 앞길은 스스로 알아서 해라.” 그런 뒤로는 박씨는 아들에 대해 무관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시적 무관심이었다. 외면이라고나 할까. 몇 달후 박씨는 퇴근길에 서울행 항공권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다. “예야, 방학도 맞고 했으니 서울에 좀 다녀와라. 내가 가야하지만 너무 바빠서 너가 대신 다녀와야겠다. 선산 할아버지 산소에도 들러 벌초도 하고 친척집도 둘러보고 와라.” 아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서울로 떠난 뒤 박씨는 곧바로 서울 동생 집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녀석이 오면 할아버지 산소에 데려가 몽둥이로 실컷 두들겨 패주라고, 그러면서 마약을 하는 놈은 할아버지를 뵈올 자격이 없다고 다그치라고 했다. 또 조상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네놈이 마약을 한다면 우리 가문은 망한다고 협박하라고 단단히 일러줬다. 그게 아들을 정상으로 돌이킬 마지막 승부수라고 덧붙였다. 며칠 뒤 서울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씨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됐을까. “형님! 기뻐하세요. 녀석이 이제 절대로 마약을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할아버지 산소에 엎어져 실컷 울데요. 그러면서 아버지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 빈데요. 그 장면이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저도 녀석을 부둥켜 안고 꺼억 꺼억 울었죠. 형님!” 수화기를 내려놓는 박씨의 손이 떨렸다. 눈가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이민생활 10여년 만에 처음 맛보는 쾌감이었다. *PS: LA의 한 청소년 전문지에 기고했던 꽁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