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김상국

김상국

[꽁트]어느 불법체류자의 하루



	1. “오늘도 무사히! 아시겠죠?” 그렇다. 오늘도 무사히! 이 보다 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사내는 여자를 끌어안고 뜨겁게 입맞춤을 했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사내의 볼에 살랑살랑 와 닿았다. 사내는 짜릿함을 느꼈다. “사랑해!” 이 한마디를 던지고 사내는 저벅저벅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정말 무사할 수 있을까…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내로부터 눈길을 거두었다. 아직도 밖은 어둠이 깔려 있다. 짙은 어둠도 곧 밝은 아침으로 변할 것이다. 아침은 다시 어둠을 낳고, 어둠은 아침을 낳고. 그렇다.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돌고 도는 것이 우주의 이치가 아닌가. 여자는 문득 학창시절 읽었던 시 한 토막을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 낳고, 꽃을 낳는다 /…/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을 한다’ 그렇다. 모든 물상들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 주는 아침. 그러나 여자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장을 보러 길을 나설 때 어디서나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러다간 여자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그런 여자의 아침도 눈코 뜰새 없다. 새벽 4시, 자명종 소리에 따라 어김없이 일어나야 하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 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바로 아침 메뉴. 사내는 햄버거, 우유, 과일 한 조각이면 될 것을 꼭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등 한식을 꼭 찾는다. 따라서 냄새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그런 냄새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여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한식을 먹어야 힘이 솟는다는 사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요리를 할 때 절대로 창문을 열지 않는다. 냄새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외부 공기와 단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일상을 거부하지 않으며 벗어나려 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여자의 관심은 사내가 무사히 다녀오는 데 있다. 2. 사내의 일터는 역동의 도시 중심부에 있다. 사내는 이른 시간 전철을 타고 폭이 넓은 강을 가로질러 일터로 간다. 사내는 그러한 습관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이른 아침 도시의 뿌연 안개. 자욱한 안개가 강기슭을 거쳐 도심으로 밀려오면 사람들은 안개의 숲속에 갇히게 된다. 그러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면서 안개는 금세 사람들의 옷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사내는 안개를 좋아 한다. 안개. 그렇다. 안개 만큼 고독하고 안개 만큼 슬퍼질 수 있을까. 맑고 쓸쓸한 날 아침, 안개가 강물 위에 한 겹 한 겹 옷을 벗어 놓을 때 사내는 안개를 닮는다. 전철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도착한 것은 오전 6시쯤. 빌딩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체크 인을 한 뒤 곧바로 진공청소기·물통·세재·걸레 등 장비를 챙겨야 한다. “하이, 굿 모닝!” “굿 모닝. 하우 아 유?” 사내의 말은 짧고 간단하다. 누가 뭐래도 이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쓰레기통을 비우고 새 화장지를 걸고 물청소하는데 정신을 쏟는다. 가급적이면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내는 작업시간 내내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창문을 닫고 외부 공기와 방안 공기를 유리시키듯, 사내는 스스로 외부 세계와 단절을 시도한다. 그것은 사내의 생존 방식일 수 있는 것이다. 사내는 화장실 청소 같은 힘든 일에 아주 익숙하다. 부도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기 때문에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이 몸에 배인 것이다. 사내는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행복이라고 믿고 있다. 비록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처량한 신세가 됐지만 이 순간을 이겨내야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기약하는 것이다. 3. 사내가 집을 나가고 아이들도 학교를 가면 여자는 혼자다. 밀폐된 공간에 홀로 남은 여자. 한 폭의 정물화 속에 갇힌 사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TV 시청 뿐이다. 여자는 리모컨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길거리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여자는 직감적으로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거라고 여겼다. 여자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는 카메라가 하늘을 찌들 듯 솟아 있는 빌딩을 아래에서 위로 비춰 주고 있다. 바로 그 때였다. 빌딩 상층부 한쪽에서 갑자기 검붉은 화염이 치솟더니 무슨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때 화면도 심하게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 화면에는 거대한 빌딩이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은 엄청난 장면이 클로즈업 됐다. 그 때 파편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지고 뽀얀 먼지구름이 거리를 덮치며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눈길은 더욱 화면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여자는 언젠가 보았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 속으로 빠졌다. 그러나 여자는 이런 것들이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화면에 뉴스 앵커가 등장하더니 빌딩이 테러의 공격을 받았다며 흥분했기 때문이다. “그이는…” 여자의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기 시작했다. “정말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러나 여자는 사내에게 변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한 믿음은 근거는 무엇인가. 사내의 청소작업은 대개 오전 8시 전에 모두 끝난다.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오전 8시40분을 막 지난 때였으므로 이미 빌딩을 빠져 나온 뒤의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설사 90층 이상 되는 곳에서 일을 했다고 해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시간이긴 마찬가지. 그렇다면 이런 저런 것을 종합해볼 때 사내는 참사를 모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자는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특히 사고란 종종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일어나며 우연이든 필연이든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여자의 눈에 그만 눈물이 고였다. 사내가 그 빌딩에서 청소를 마친 뒤 이삿짐 업체로 가서 하루종일 무거운 짐을 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대개 오후 6시쯤 된다. 그런데 땅거미가 내리고 날이 어둑해졌지만 사내의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불길한 징조다. 그렇다면, 사내는 건물 잿더미 속에 깔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그렇다면… 여자의 머리 속으로 온갖 상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속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사내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사내가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이상 여자가 먼저 연락할 방법이 없다. 밤이 이슥해지자 여자는 더욱 불안스러워 했다. 십중팔구 사내에게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야 전화 연락도 없이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앞이 캄캄했다. “오, 주여!”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너무나 처절했던 과거의 모습이 여자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렸다. 사내를 절망의 늪으로 떠밀어 넣은 야속한 세상. 사내는 희망이 없었으므로 절망했다. 공사도급으로 따지면 굴지의 건설업체였다. 사내는 오너로서 남부러울 것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폭삭 주저앉게 될 줄이야. 입찰로 관급공사를 받는데 새 정권이 들어서고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도는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어떤 기업은 법정관리다 뭐다 해서 회생의 기회를 주는데 사내의 기업은 예외였다. 그리하여 사내의 기업은 와해되고 만 것이다. 4. 간밤 여자는 뜬 눈으로 지새다시피 했다. 퀭한 눈에는 핏발이 서려 있다. 아침을 맞았지만 사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실종자 신고도 할 수 없는 노릇. 불법체류자란 약점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도 벙긋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면은 실종자를 애타게 찾고 있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화면은 다시 참사 현장으로 앵글을 옮겨 갔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근, 마구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들. 마치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였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원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사망자 수도 계속 늘고 있다. 처음엔 5천 명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1만 명 이상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실종된 불법체류자나 방문객까지 합치면 그 수는 가히 짐작조차 어렵다. 만일 실종신고를 한다고 해도 보상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사망자 신분이 확인된 피해자에게만 거액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신분을 숨기면서 살아왔으니 실종자라고 우긴들 누가 알겠는가. 차라리 실종자 명단에 사내가 포함되지 않기만을, 여자는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다 여자는 지쳐 소파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어디선가 톡톡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왔다. 여자는 확 정신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현관 쪽에서 낯익은 소리가 점점 세게 들리는 게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여보, 문 열어줘.” “당신이세요?” “응, 나야 나. 걱정 많이 했지?” 현관으로 들어서는 사내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머리에서부터 어깨와 가슴, 다리까지 온통 허연 가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초췌한 얼굴, 덥수룩한 수염. 지옥을 막 빠져 나온 사람 같았다. “무사하셨군요.” “응, 하마터면 개죽음을 당할 뻔 했어.” 여자는 팔뚝을 꼬집었다. 따끔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사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이 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사고가 난 시각 40층쯤 되는 곳에서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는 것. 그 날 따라 화장실 쪽에 물이 새고 배설물이 넘쳐흘러 그것을 치우느라 늦어졌다는 것. 바로 그 때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며 폭음이 귀청을 때리자 거의 반사적으로 계단을 내려왔다는 것. 그런데 계단 쪽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밀려 있어 1층까지 내려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 빌딩 밖으로 나오자 금세 빌딩이 무너졌다는 것. 여자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어 자욱한 먼지, 우박처럼 쏟아지는 파편들을 뚫고 필사적으로 달렸다는 것. 그러나 금세 사방의 길이 막혔다는 것. 바로 그 때 어디선가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왼쪽 다리를 찍었다는 것.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제대로 걸을 수는 없었다는 것. 그래서 땅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란 복장을 한 구조요원이 달려와 부축해 곧장 119 구급차로 데려가더라는 것. 거기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곧바로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임시 재난 구호소로 긴급 후송됐다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움직일 수 있어야지. 교통도 차단되고 통신도 마비됐으니 연락도 할 수 없고 미칠 지경이었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면 곧바로 간호원이 제지하고…” 사내는 이야기를 끝내자 마자 소파에 쓰러져 그대로 넉장거리를 쳤다. 얼마 안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사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창백했던 얼굴에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친 앞을 내대볼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 여자는 어느새 피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뭐라고 할까. 여자에겐 정말 길고도 긴, 멀고도 먼 이국땅에서의 하루였다. (붙임말:여성중앙 미주판에 1년여동안 연재했던 것중 한편입니다. 지난해 뉴욕 맨해튼에서 9.11테러 사건이 난 직후 곧바로 구상해 쓴 것입니다. 지금 저는 월드트레이드센터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무너질 당시 목격은 하지 못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봤습니다.지금은 텅빈 자리만 남아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수천명의 고귀한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진 자리에서 혼령들의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마 환청인듯 합니다.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격문이 붙어있고,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는 모르나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맨해튼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가 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