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한 편(수해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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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더 푸르고 장미는 더 붉다
김산
태풍과 더불어 국지성 폭우가 쏟아졌다.
감천이 범람하여 제방이 무너지고,
다리란 다리는 모두 끊어지고, 폐허가 된
논이며 밭, 과수원과 축사, 집과 마을
의사소통 불능이다. 너와 나를 이어주던
모든 것이 두절된 고립무원,
누가 우리들의 존재를 알리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세상은 적막하다
자갈밭을 뒤지며 부모의 시신을 찾는 사람들
황야에서 숟가락 하나라도 건지려는 사람들
세상은 온통 쓰레기와 토사와 흙탕물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가스렌지가 없는 세상이 왔다
이기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삶이 원시시대로 되돌아갔을 때,
한 번 생각해 보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
4개의 강이 합쳐지는 유프라테스의 와디바틴(마른 강바닥)은
1만 년 전에는 울창한 삼림 지역으로, 창세기 11장,
기온이 7도 상승하니 해수면의 높이가 150미터나 높아지고,
몬순기후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대홍수가 났다.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문명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재앙을 부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논과 밭과 가축과 집이 아니다
풀과 나무와 새와 꽃과 물과 해와 달과 별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리고도 깨닫지 못 하는 온전한 영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넋을 놓을 때,
새로운 것은 늘 저 너머의 세계에서 온다
뭉게구름과 무지개와 반딧불이 같은 것
아침 햇살 속에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 같은 것
밤하늘에 빛나는 별, 풀숲에서 고개 내민 한 떨기 꽃,
나뭇가지 사이를 폴폴 날아다니며 우는 꽁지가 하얀 새
나무는 더 푸르고 장미는 더 붉다.
별은 더 빛나고 아침 강물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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