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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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냉정한 것
-노자 말씀
김산
태풍은 거칠 것이 없네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뒤
사위는 적막강산 !
퍼붓는 듯 장대비 쏟아지네
폭포처럼 곤두박히는 저 강물 어이하리
제방과 다리를 허물고, 논과 과수원과 집을 쓸어 묻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 뚝 따고 돌아앉은
오호라, 천지불인(天地不仁) !
무섭도록 차가워서 살과 뼈를 가르는 듯하니,
그 빛은 참담하여 모래와 바위와 시뻘건 흙탕물뿐,
푸른 산천은 온통 폐허 속에 적막강산 !
어리석은 것은 사람이니
다시 제방을 쌓은들 무엇하리
산머리까지 에돌려 임도를 내고
허리를 잘라 공장을 세웠으니
절개지에 꽃을 심은들 무엇하리
상선약수(上善若水) 업수이 여겨 온 세월
물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뒤
세상은 온통 흙탕물뿐, 이제와
어디 가서 한 바가지 깨끗한 물을 빌랴
자연을 자연으로 돌려놓지 않는 한
오호라, 자연은 냉정한 것 !
가을 햇살, 화살촉으로 박히다
김산
감천 철교 교각이 무너지다
선로는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모든 교통은 두절된다
제방이란 제방은 모두 허물어지고,
다리란 다리는 흔적도 없다
산사태가 마을을 덮치고,
농경지는 자갈밭으로 변했다
시뻘건 황토가 안방까지 밀려든다
전봇대가 쓰러지고, 상수도가 끊기고, 전화는 불통이다
이제 너와 나는 고립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까?)
먹을 물도, 밝힐 불도, 일용할 양식도,
입을 옷가지 하나 없이, 죄다 묻히고 떠내려갔다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이럴까
문명에 맛을 들인 죄값을 치르는 것은 아닐까
그 동안 우리는,
산허리를 끊고, 도로를 닦고,
물길을 돌리고, 부실한 제방을 방치했다
배후습지를 메워 땅을 수탈했다
공단을 세우고 매연을 내뿜었다
산골짜기까지 별장이며, 식당이며, 축사를 세우고
시커먼 폐수를 흘려보냈다.
강은 살아 있는 큰 물줄기이며 생명체다
수많은 생명을 품어 기르며 물을 공급한다
물은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느긋하게,
길이 막히면 잠시 쉬었다가
돌아 가든가 아니면, 흘러 넘친다
물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거대한 댐을 세울지라도,
수맥은 살아 있어 꿈틀꿈틀 땅속으로도 흐른다
자동차와 냉장고와 에어컨을 사용하면서
화석연료를 마구 사용하면서
지구는 스스로 데워지고 지구 온난화 현상은
국지성 호우로 기습한다 게릴라처럼,
대홍수가 덮치면,
이 세상 어느 곳 안전한 데는 없다
인간은 문명의 가면을 쓰고
오만하고 방자한 짓을 함부로 해 왔으니
이제 물은 한 도시와 산맥과 벌판을 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나무와 풀과 동물과 사람과 사람들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을
몽땅 휩쓸어버리고 다시 원시의 광야로 만들 수도 있다 언제든지,
국지성 호우가 홍수로 한 번 쓸고 내려가면
세상은 온통 적막한 광야일 뿐
이제 너와 나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어떠한 과학으로도 의사소통 불능이다
자연을 자연이게 내버려 두라
삼라만상과 화해하지 않는다면,
제방을 쌓고, 교각을 다시 세운들 무엇하리
더 이상 풍성한 가을은 돌아오지 않고
가을 햇살만이 우리들 가슴에 화살촉으로 박혀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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