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김종인

김종인

지역할당제



	교육개혁을 호도하는 지역할당제 김종인(김천중앙고등학교 교사) 1. 월드컵이 끝나면서 시작된 지난 여름은 가혹했다. 지루한 마른 장마 끝에 폭염과 무더위가 천지를 달구더니, 이내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가운데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비는 장장 12일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낙동강변의 김해 한림면은 하천의 제방이 터지고, 둑이 무너져 면 전체가 물에 잠겨 폐허가 되고 말았다. 70년대 이후 우리의 교육 현실이 저와 같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여름 내내 전국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월드컵과 장마와 무더위와 폭염과 집중호우 속에서도 변함 없이 0교시 수업과 주요 교과 중심의 특기적성 활동이라는 변칙적 보충 수업과 심야 자율학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직 일류대학 인기학과를 가겠다는 일념 아래 꽃다운 청소년들이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80시간 이상 150시간의 보충 수업에 아까운 청춘을 다 바쳤다. 피서와 여행과 독서와 음악 감상 같은 것은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겐 사치요,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2. 작금, 정보화 사회와 지식기반 사회와 세계화와 제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교육에서 출발하여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거쳐, 수준별 선택중심 교육과정에 와서 숨을 고르는데, 소위 학부모와 학생과 대학과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우리 나라 교육을 뒤흔들어 망쳐놓은 주범으로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우후죽순으로 대학이 설립되고, 대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대학을 가고자 하는 교육열은 더 한층 불타올라 70년대 이전에 '나는 비록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내 자식만은 꼭 대학물을 먹여 출세시켜 보겠다'는 학부모들의 열망을 제대로 정화시키지 못한 결과, 교육계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펼쳐 교육 현장은 황폐화되고 말았다. 전국의 1200여 개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에 목을 매게 되었고, 대학 입시를 주도하는 학교는 역시 국립서울대학교였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를 나왔다는 프리미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 전체는 물론, 언론, 방송, 법률, 사회 단체, 국회의원, 대기업, 심지어 노동계까지도 주요 요직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꿰차고 앉았으니,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라! 서울대 공화국이요, 서울대 우월주의요, 서울대 중심주의요, 서울대 만능이지 않는가! 오죽하면 서울대 망국론이며, 서울대 해체론까지 나올 것인가. 3. 제7차 교육과정으로 처음 치러지는 2005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이 확정 발표되었다. 논술이 부활되고, 지원 자격으로 교육과정상 필요 최소 단위를 130단위로 결정했으며, 인문대와 사회대, 경영대 등 일부 모집 단위에서는 수능 전 영역을 반영키로 했다. 또한 수능 5개 영역 중 3+1 형태를 취하며, 친절하게도 고교 교육과정상 교과목 이수 요구 단위인 192단위의 68%에 해당하는 130단위를 서울대 지원 필요 최소 단위로 결정했다. 서울대에 지원하려면 전체 선택과목 136단위 중 74단위를 선택해야 하며, 사회 교과 22단위, 과학 교과 22단위 국어 교과 20단위, 수학 교과 20단위, 영어 교과 24단위를 이수해야만 한다. 도덕, 기술, 가정, 체육, 음악, 미술, 한문, 교련, 교양 등 기타 과목은 국민공통 과정에서만 하든지 말든지 관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은 바로 생명과 같은 것인데, 서울대에 가려면 전인교육, 인간교육, 참교육 같은 것들은 이제 언급할 것이 못 된다. 왜? 서울대에서 원하지 않으니까! 결국은 국, 영, 수, 사회, 과학 주요 5개 과목 외에는 별 볼일 없어졌다.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서울대에 원서라도 내보려면 서울대가 규정하는 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지원 자격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에서 국가가 선택하는 것이 있고, 도교육청이 선택하는 것이 있고, 학교가 선택하는 것이 있고, 학생이 선택하는 것이 있는데, 서울대가 친절하게도 교과와 이수 단위까지 선택하여 규정해 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마땅히 제7차 교육과정은 서울대 선택형 교육과정이래야 마땅하다. 4. 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서울대가 하면 다른 일류 대학도 따라간다. 지원 자격이 강화되니 수험생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런 시점에서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며칠 나오는가 했더니, A급 태풍 루사가 고흥반도에 상륙하여 한반도를 대각으로 가로질러 관통하면서 김천과 강릉과 속초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서울대의 위치가 위치니 만큼 서울대에서 나오는 교육 소식은 가히 우리 교육계를 뒤흔드는 A급 태풍의 위력을 가졌는데,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내놓은 "개혁적 주장(?)", '지역할당제'가 그것이다. '인구 비례에 의한 지역할당제'에서 '군별 1-2명 정도의 할당 방식'으로 변화하여 선발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교육부의 이상주 장관까지 지지와 격려를 마다하지 않아, 지역할당제 문제는 더욱 탄력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사회적 약자인 지방의 학생들'을 배려하겠다는 개혁적 총장의 마음은 이해가 가나, '서울대 우월주의', '서울대 중심주의'의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 나라 교육을 서울대 중심으로 이끌어 가려는 게 아닌가 하여 걱정이 앞선다. 2002학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행 입시안에는 '독자기준 특별전형' 유형이 99가지나 있고, 추천제 전형 32가지도 이미 154개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1998년 10월 19일 발표한 '2002학년도 대입 제도 개선안'에서 '지방 사립대가 특정 지역 학생을 우대하는 지역할당제는 대학의 지역특성화란 차원에서 허용되나,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수도권 대학이나 정부 기관인 국공립대의 지역할당제는 금지된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 이번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지역할당제이다. 게다가 교육부의 수장이 교육부의 발표를 스스로 짓밟은 것이니, 누가 우리 교육 정책을 믿겠는가. 5. 지역할당제는 서울의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려다 교육부의 제지로 무산되었으나, 그 방법을 약간 바꾸어 특별전형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지방의 36개 대학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독자기준 선발 대학 중 배재대(지역 출신 성적 우수자), 순천향 대학(충남 지역 출신 학생), 중부대(지역 우대자), 평택대(지역 연고자), 포천중문의대, 한국기술교, 한남대(지역 학생 우대) 등은 바로 지역할당제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대의 지역할당제는 실효성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99가지나 되는 독자기준 특별전형 중 한 가지를 가지고, 그것도 군 당 1-2명, 모두 200-30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우리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교육기회 불균등을 호도하면서 생색만 내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가 지난 7월 발표한 2002학년도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광역시 출신 이상의 학생이 무려 77%를 차지한다. 또한 고소득층 자녀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아버지의 직업이 고위 관리직인 기업체 간부, 고급공무원, 의사, 법조인, 대학교수 등인 학생은 52.8%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생산직은 8.5%, 서비스직 5.3%, 특히 농어업은 3.5%에 그쳤다. 이런 현상은 연세대, 고려대 등 다른 일류대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서구 대학들의 지역할당제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개혁적 총장의 순수한 개인적 주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서울대가 어디 보통 대학인가. 우리 나라에서 서울대의 위상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바드, 북경대학이 그 나라에서 가지는 위상 이상의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합쳐져 가히 서울대 입시 중심교육으로 전국의 거의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내심 우리의 소원은 서울대요 그도 아니면 일류대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에서 나온 지역할당제 바람은 A급 태풍으로 교육계를 강타할 수밖에 없다. 6. 이는 한동안 서울대 포기와 독자기준 특별전형으로 기울어진 지방의 수재들에게 또 다시 서울대 환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으며,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황폐화된 농어촌 교육 현실을 덮어버리고, 황폐화된 공교육의 교육개혁을 내버려 둔 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생색내기 주장에 머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도시 출신, 좋은 학군 출신, 고소득 상류 계층 출신, 부모가 모두 대학을 졸업한 집안 출신 등 소위 기득권 계층의 자녀들이 일류대학 진학을 싹쓸이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순수하게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지났다. 만약 이대로의 지역할당제가 실시된다면 농어촌과 산골짜기까지 서울대 입시열풍이 몰아칠 것이며 지역 유지와 학교운영위원과 학교장은 자기 학교, 자기 자식 서울대 보내기 작전에 총력을 기울여 또 다른 교육황폐화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서울대에 많이 진학시킨 학교에 몇 천 만 원의 위로금을 내린 적도 있으며, 서울대에 많이 진학시킨 3학년 부장은 유럽으로 9박10일 위로 여행을 보내고, 다소 적게 진학시킨 학교 교사는 미주로 여행 보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군별 1-2명을 지역할당제로 선발한다면, 자기 학교 학생이 선발될 수 있도록 온갖 비교육적인 내신점수 부풀리기와 우수학생 유치에 광분할 것이 분명하다. 정말 서울대학이 그동안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지방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지역할당제를 포함한 입시 쿼터제를 실시하겠다면, 입학 정원의 50%에 해당하는 2천명 이상을 지역할당제, 학교할당제, 계층할당제를 실시하여 지역간, 계층간 교육기회 불균등의 해소에 기여할 보다 큰 정책을 펼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울러 세칭 일류대란 대학은 모두 이 정책을 받아들일 것이며, 지방대가 주장하는 지역인재 할당제 같은 정책도 정부에서는 조속히 실시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