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물을 끓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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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 학기가 마무리 되어서인지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운 한 때이다. 녹차를 마시려고 찻물을 주전자에 받아 가스렌지에 올렸다. 보통때 같으면 불을 켜 놓고 방으로 들어와 라디오를 켜거나, 오늘 볼 책을 정리하거나, 오늘 할 일들을 메모지에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가스렌지 앞에 서 있었다. 차주전자를 바라보며, 그리고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 물을 끓일때나 음식을 할 때는 항시 곁에서 지켜봐라. 아무리 얘길 해도 왜 그래 말을 안 듣노. 그 새를 못참고 금새 따른 일을 하니 주전자가 다 타지. 에그.. 벌 써 몇 개째고...? "
그렇다.
난 물을 올려놓고 세수를 하는가하면, 라디오를 들으면서 음악에 빠져 '저 곡이 무슨 곡이었더라.... 아! 저곡은 ＊＊곡이야' 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지나간 기억들을 부여잡고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책을 읽다가 마루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에 나가 드라마나 오락프로를 보며 정신이 팔리기도 한다. 덕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혼자서 온 방을 헤매이는가하면, 가스렌지에 올려져 있던 주전자는 그을리다 못해 까맣게 선텐을 하고는 번뜰거리는 악마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난 이렇게 시간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못한다. 시간이 빠듯할때야 어쩔 수 없다지만 시간이 넉넉할 때에도 버릇이 무서워 난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을 조리있게 쓰거나, 그 많은 일들을 짧은 시간에 다 해내는 것은 아니다.
어머닌 일을 참 차분히 하신다. 또한 언제나 일을 소리없이 하시면서도 아주 많은 일들을 오전 한나절에 뚝딱 다 해내시곤 하신다. 칡물을 끓이는 일부터 아침준비와 빨래까지... 물론 아침 드라마도 잊지 않으시고 꼭 도장을 찍으신다. 물론 30여년 전업주부로 살아오신 노하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뭔가가 빠져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정성이라 생각된다. 무슨 일을 하시든 정성을 다하시는 마음, 바로 이것이 내게는 부족한 것이다.
한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손에 익은 일을 하더라도 할때마다 정성을 다하는 어머님의 몸에 베인 그 내적태도를 떠올리며 녹차물을 따른다. 내 지금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니처럼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어있을지,,,,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식혀 녹차를 넣을 적당한 온도를 기다려본다.
오늘은 엄마랑 제맛나는 녹차를 마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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