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17) - 때를 기다리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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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루에선 이미 저녁예불예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 퍼져가는 법고소리를 들으며 합장을 했다. 四物의 의미를 몰랐을 때에는 그 소리를 듣고 마냥 마음에 감동만 담았는데 오늘은 그 사물마다의 소리가 울릴 때 나도 그들을 위해 발원을 하려고 애썼다. 법고소리에 눈을 감으니 눈시울이 금새 뜨거워져 합장하고 고개 숙였다. 뒤이어 목어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운판소리가 울렸다. 울지말자 울지말자 心착하게 心착하게 서러울 것도 속상할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다... 마음 풀어주며 범종소리에 눈을 뜨니 눈이 아려 다시 감는다. 20여분 정도의 예식이 끝난 다음 일주문 밖으로 나와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뭐라 말씀드리나... 미처 생각도 다 못했는데 신호음 저편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엄마 난대요... 아직 통도사예요. 저녁공양하러 갔다가 설거지 도와 드렸더니 스님께서 하룻밤 유하여도 된다고 하셔서 그러겠노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래 그럼 마음 편이 쉬었다 온나" 너무 짧고 쉽게 나온 허락이었다. 마치 어제 '내일 어딜 좀 다녀올깨요' 하니 '절에 갈려고' 하셨던 그 대답처럼. 뭐라고 말이라도 더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내일 새벽예불 끝나고 공양 마친 다음 바로 가겠노라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에 횡하니 바람 한점 불어왔다 지나간다.
2층 원주실에서 바라보는 설법전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설법전에선 저녁예불이 거행되고 있었다. 발길은 그곳을 향하려 하였지만 감히 그 곳만 바라보며 합장하고 들어와 방안에서 좌선하고 스님들의 예불소릴 들었다. 스님들의 경전 낭송소리가 계곡물 소리와 아울려 마음에 들어오니 이런 福이 있나 싶다.
참 '때'라는 말이 무서우리만치 신비롭다. 스님께선 어이하여 '자고 가겠냐' 묻지 않으시고 '하룻밤 자고가도 된다'고 말씀하셨을까... 고마운 따름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산사에서 부치는 편지」를 들고 올 것을.... 허나 이런 욕심이 나를 점점 더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 다시 뉘우쳐본다. 경봉스님께 들으셨을 저 물소리... 저 바람소리... 들려오는 소리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싶다. 쓰고 읽는 것보다 지금 나에겐 눈감는 일이 중요하리라. 바르게 앉아 두 눈 감는다.
9시가 되니 타종소리 들려온다. 일찍 잠들 것 같은데 밤사이 선몽이라도 꿀 수 있을까... 웃음이 난다. 머리를 대웅전쪽으로 하고 몸은 집이 있는 남쪽으로 돌려 누웠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7시 이후로 방문 한번 안 열었으니 방안 공기가 따뜻한 만큼 순화가 되지 않았다. 내 숨에 내가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살짝 안쪽문을 열어 두었다. 찬바람이 틈새로 횡- 불어 들어오니 그 깨끗함이 뜨거워진 두 볼에 얼음처럼 와 닿았다. 가슴이 좀 트인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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