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16) - 때를 기다리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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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함께 간 곳은 2층 원주실 아래 부엌이다. 부엌으로 가는 길에 스님께서 "불자님 오늘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도 됩니다"하신다. 그 순간 마음이 텅 비었다. 아무 생각이 들 겨를도 없을 만큼 놀랐다. 내가 평상시 산 아래 조그만 암자에서 몇 일을 보내고 싶어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또한 그러한 생각을 오늘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님께선 어이하여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 스님께서 다시 한번 더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오늘 하루 자고 가셔도 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저에겐 큰 기쁨이지요" 말씀 올리니 당신께서 그러한 권한 있으시다며 허스키한 큰 목소리로 설거지 보시하고 가면 된다고 하신다. 발길에 구름이라도 깔린 양 가벼웠다.
부엌에 들어가니 여러 불자님들과 승원께서 저녁공양 준비를 하고 계시었다. 도와드리는 것 보다 걸리적거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부엌 귀퉁이에서 설거지만 열심히 했다. 내가 닦고 있는 이 식판이 깨끗해지는 것이 내 마음의 찌든 때를 깨끗이 씻어내는 길이라 여기며 마음의 오기를 내어 열심히 닦았다. 스님들 공양마치시고 그 식판 다 닦은 다음 나도 저녁 공양을 했다.
스님께서 챙겨주시고 하시어 송구스러울 정도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스님께서 청해주시어 한 여자 불자님께서 내가 오늘밤 머무를 방을 안내해 주셨다. 2층 방이었는데 할머님께서 귀처하던 곳이었다 하신다. 마침 할머니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신 터라 방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지킬 것이나 유의할 것이 있으면 일러달라고 말씀드리니 7시 이후론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고 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야 하니 그 시간만 지키면 된다고 하셨다.
방은 2중문으로 되어 있었다. 방안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는데 너무나 헐렁한 가방에 마음도 헐렁해진다. 그도 그럴것이 집을 나설때만 해도 3시경에 집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하고 나온 터라 가볍게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이 볼펜과 수첩만 들고 나온 것이었다. 물론 지갑에도 돈이 얼마 들어있지 않았다. 아까 문득 이러한 절에서 하룻밤 묵을려면 불전에 보시를 좀 해야한다고 들었기에 걱정의 바람이 일기도 하였지만 마음으로 들어온 곳 마음으로 편히 있자 싶어 맑은 마음지니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 다지며 범종루 앞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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