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도 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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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조그맣고 커다란 돌멩이들의 머리가 보이는 앞마당. 그
흙무더기 사이로 자라나 있던 잡초들이며 꽃들이 건너편의 아스팔트
길을 가리고 있고 밑이 뻥 뚫려 무섭기만 했었던 푸세식 화장실에 앉
아 있다가 행여 흙담하나 사이에 두고 있던 소 한마리가 '워어'하고
울기라도 하면 눈물을 찔끔 흘리며 할머니 가슴을 찾았던 시절.
나는 요즈음 그 시절의 냄새를 다시 맡고 있다. 여느 때 보다 추위
가 더 빨리온 것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의 차거운 겨울나기에 가끔 내
고향 진도에 내려가면 대학이니 시험이니, 하며 날 괴롭히는 얘기들
말고 따뜻한 손과 음성에 잠에 빠져들것 같은 포근함이 드는 할머니
께서 계신 곳을 빼먹지 않고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보는 것
보다 듣는 것 보다, 향기를 맡는 것에 기억들이 더 살아나려 애쓰게
되는 것일까. 작년 이맘 때쯤 할머니댁에서 이틀정도 지냈던 기억들
이 그 포근함을 그대로 머금고 한 해가 지난 지금 내 코를 자극하고
있다.
지글지글 아랫목에 할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이
며, 삼촌들 모습, 그리고 첫 손녀인 나를 무척 귀여워 하셨다던 돌아
가신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
"할머니, 내가 엊 그저께 할아버지 꿈을 꿨는데, 할아버지가 나오시
더라고."
"......"
"태백산에 있는 천태종 구인사던데... 금관안에 계시는 거 있지. 정
말 좋은 얼굴이여서 나도 옆에서 잠이 드는 꿈이었어."
"잘 계시는 갑다. 살아 생전 죄 안한 사람이니께."
할머니께서는 혼자 힘으로 오남매를 키우셔야 했다. 시장에서 고사
리를 파시고, 빨간 구기자를 따셔야 했던 힘드셨던 가슴이, 그 든든
한 가슴이 이제는 나에게도 체화가 되어 안에서 할머니의 냄새가 맴
돌고 있음을. 아마존의 여신들은 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태워버렸다는데. 당신과 당신의 분신들을 지키셨던 할머니의
가슴은 너무 포근하다.
내게 참회와 반성과 깨달음을 주셨던 그 할머니의 냄새가 바람을 타
고 한 해를 거슬러 올라와 나를 또 다시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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