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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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사랑
운동하러 공원엘 갔더니 노부부 한 쌍이 앉아 계시는데, 땅콩 껍질을 손수 벗겨 할머니 입에 넣어주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참 우아해보였다. 비록 이제 아내의 입술이 예전처럼 앵두 같이 붉지는 않아도 세월이 지날수록 더해 가는 어떤 맛이 있나보다.
운동복 입고 나란히 산책로를 따라가는 중년의 부부 한 쌍이 가끔 미소를 터뜨리며 이야기하는 모습도 참으로 정다워서 웨딩 촬영을 하는 새내기 부부는 그들을 부러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하루에 한 통 집에 있는 아내에게 안부를 물으려 수화기를 드는 그의 모습은 매우 신기한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부담이 아니요, 기쁨이고 내 가정이 있고 그 가정에 나를 기다리는 여인과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다니 오히려 의지가 되는 것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랑 이야기를 해 왔다. 남녀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친구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웃 간의 사랑도 언급한다. 그 중 단연코 영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이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부부 사이의 사랑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슴 뿌듯하고 따뜻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은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거니와, 내가 사랑하는 이와 하지 않았다고 슬퍼하거나 후회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사랑만 했던 사람과의 결혼은 어쩌면 서로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사랑은 그저 평탄하고 평범한 일상인 것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는 일은 모든 것을 떠나 조화를 이루는 일로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만 가지고 성립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의 사랑 사이에는 부질 없는 모든 욕심도 없고 집착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부의 사랑에 있어 쓸데없는 환상은 모두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고 , 알맹이만 남아서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이나마 해 본다. 한 발 물러서고, 양보하고 가끔 말다툼을 하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배우자의 애틋했던 첫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루하루 서로를 인정하며 쌓이는 세월 속에서 향기가 피어나는 것일 테다. 그 사람의 얼굴이 아름다운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그 사람의 속마음을 보게 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일 것이다. 그 둘 사이의 육체적 행위도 쾌락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믿는다. 서로만 바라봐달라며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맨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이가 되고 그들이 함께 해 온 일상은 커다란 정이 되고 그것이 퍼져 나가 다른 이들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의 사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금의 이해를 하면 될 것을, 이혼이라는 헤어짐이 너무도 쉬운 사람들의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하고, 그들 사이에 이루어놓았던 모든 것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안타깝게 한다. 내 배우자로 하기로 한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사람을 멀리하고서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인 것을.
사람들이 가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서로 결혼을 하고 , 힘들어도 언덕을 올라가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큰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이 내 동반자요, 반려자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모든 것을 얻고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나의 가정이 없다면 언젠가 크나큰 공허함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성공의 원동력을 주는 것은 분명 가정일 것이다.
부부의 사랑이 더없이 소중한 것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가정을 만든다. 가장 긴밀하고 가장 보기 좋은 애정이 있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따질 필요도 없이 그것을 뛰어 넘어 존재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직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키가 조금 큰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몸을 기울인 채 찍은 사진을 보면서 두 사람의 생활이 아름답다고 여기고 믿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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