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어준 선물 - 한해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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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준 선물_한해를 시작하며
오랜만에 가족들과 여행을 갔습니다. 겨울 바다는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답고 자유롭더군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새로움과 맛보지 못한 생크림의 달콤함을 찾는 것처럼, 우리가 여름에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즐기던 일상적인 바다보다는 추운 겨울에 만나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언제나 듬직한 바다를 보는 것이 저에게는 더 인상깊었던 듯 합니다.
파도치는 바다, 저 멀리 보이는 빨간 등대가 꽂힌 있는 방파제 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고 연인과 , 가족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행에 묘미란 그런 것에 있는 것입니다. 비싼 돈 들여 좋은 곳에 가지 않아도 '자연' 과 ' 사랑하는 사람 ' 이 함께 있다면 어디라도 즐거운 것이 여행이지요.
' 00관광' 이라고 쓰여진 촌스러운 관광버스들이 잇달아 들어오고 , 쓸데없는 노점상이 잔뜩 깔려져 버린 ' 설악산 국립 공원 ' 이 옛날에는 참으로 보기 싫었는데 이번에 가본 설악산은 아름답더군요. 어릴 때는 몰랐던 우리네의 ' 설악산 '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일년이 지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걱정할 것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 온 아주 오랜만의 여행이라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사진을 있는대로 찍어댔던 것인지도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세상의 모든 만물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 아마도 너무나 빨리 지나버리는 시간 속에서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은 제 곁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1초들의 등을 떠밀어 저 먼 과거속으로 보내버리고 자신은 제 옆에서 땀흘리며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들을 제조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제조된 추억과 기억의 통조림을 열어 아직 상하지 않은 그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요.
하늘이 눈으로 짠 스웨터를 껴입고 다시 햇살을 받아 눈부시도록 빛나는 설악산을 걸으면서 아버지가 제게 물으셨습니다. 「 산이 더 좋니 , 바다가 더 좋니? 」 저는 둘 다 좋다고 대답했지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지자요산, 인자요수라. 」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아버지로부터 저는 그것의 의미를 생각해 봤습니다. ' 지자 ' 는 산을 좋아하고, ' 인자 ' 는 바다를 좋아한다지요. 저는 ' 지자 ' 도 아니고 ' 인자 ' 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다를 느끼고 산을 느끼자 ' 지자' 도 되고 싶고 ' 인자' 도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산과 바다는 분명 우리에게 자신들이 정성스레 빚은 선물을 주는 것일 테지요. 산에 오면 ' 지자 ' 가 되고 싶은 깨달음을 느끼고, 바다에 오면 ' 인자 ' 가 되고 싶은 평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들을 변화시킵니다. 산업사회, 황금 만능 주의 , 명품 주의에 물들어 자연을 잊고 목마른 사슴의 목구멍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연은 분명 선물을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를 ' 지자' 로 만들고 ' 인자 ' 로 만드는 것이지요. 설사, 지자와 인자와 같은 ' 도달한 ' 사람은 못되더라도 지자나 인자가 되고 싶은 청명함을 선물하는 것이 우리의 산과 바다, 자연입니다.
그리고 저는 2003년 1월 1일 동해바다 저편으로 떠오르는 빨간 홍염과도 같은 해를 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2003년 타오르는 희망을 보기 위해서 그곳엘 왔습니다. 너무 졸려워 하품을 하며 눈을 부비는 꼬마 아이도 가는 길에 갑자기 생각나 들러버린 누군가도 새해를 맞이하려고 결심하고 단단히 채비를 하고 온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온 연인들도 모두들 웃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검푸른빛의 망망대해 저 편에 조그만 태양이 점점 얼굴을 내밀자 바다는 이내 아름다운 푸른빛 넘실거리는 ' 천국 ' 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보고 싶어합니다. 시계를 보면서 카운트 다운을 하며 새해가 되었다고 소리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들이 더욱 원하는 것은 ' 자연의 시간 ' 이지요. 해가 떠오르면' 새해다 ! '를 외치는 사람들, 시계를 보며 외치는 카운트 다운보다 사람을 더욱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듭니다. ' 자연의 시간 ' 말입니다.
오늘은 벌써 1월 10일입니다. 새해의 결심이 조금씩 흐려져 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금, 저는 저를 생각에 잠기게 했던 자연에의 여행이라는 기억을 되살리며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자연은 그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나는 과연 자연과 새해를 맞아 또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 걸까. 영화 ' 스토커 '에서 주인공인 싸이 역할을 맡은 로빈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하죠. ' 사람들은 항상 특별하고 좋은 기억만을 찍는다. 사실, 사진이라는 것은 일상을 담는 것인데 말이다 ' 라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특별하고, 항상 기억하고 싶고 , 행복해서 잊지 않고 싶은 순간들만 사진에 담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항상 행복하고 좋은 것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영화 ' 스토커 ' 의 주인공들 모두 상처를 하나씩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다 슬픔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모두가 합쳐지면 바로 ' 일상 ' 이지요. 행복한 일상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힘들고 슬펐던 일상도 분명 존재했던 기억이니까요. 그리고 지나고 나면 그저 ' 소중했던 ' 일상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다짐합니다. 지난해의 모든 내 기억을 소중히 하고 2003년 , 그 모든 기억들을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살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태양이 뜬다는 사실은 저에게 희망차기만 합니다. 슬픔도 힘겨움도 지나가면 ' 소중했던 일상' 이 될테고 지금도 미래도 저에게 소중한 일상들이 제 힘에 의해서 선물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연' 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 하고 ' 자연 ' 과 함께 한해를 시작한 저에게 올해는 더욱 아름다운 일상으로 빚어져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자연은 벌써 저에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일상 , 변화되어갈 일상의 시발점이라는 선물을 빚어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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