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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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오늘 눈이 내렸다. 참 오랜만에 보는것 같다. 작년에도 눈은 왔고, 제작년에도 눈은 왔다. 눈은 항상 온다. 그런데 참 반갑다. 오늘 온 눈은 더 눈물나게 반갑다. 나는 누군가를 아직도 눈물겹게 , 혼자서 혼자서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시간 , 갑자기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며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 그래도 눈오는거 보니까 좋냐? 하얀 눈이 깨끗한지는 아냐?"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맺힌다. 그렇다. 이미 반은 어릴적의 제 모습들을 잃어버렸지만 아이들은 아직 펑펑 내리는 눈에 환호성을 지를 수 있다. 귀여운 강아지처럼. 열여섯이나 먹은 버릇없는 말썽꾸러기에 애물단지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순수하고 귀여운 내 친구들이다. 가끔 이럴 땐 이래서 ' 학창시절' 의 향수가 생겨난게 아닌가 한다.
나는 겨울이 좋다. 겨울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작년 이맘때쯤 언제나 혼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다른 사람을 아프게 그리워하면서도 나는 항상 혼자 보내기를 즐겼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혼자인지도 모른다.
겨울은 감상적이다. 가을,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했던가. 하지만 나는 겨울에 사색한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또다시 다가올 시작에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내 곁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의 체온을 다시 느끼면서 겨울에 사색한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 크리스마스에 어울릴만한 재즈를 찾아 다시 듣고 , 책을 음미한다. 겨울의 묘미다.
칼바람이 쌩쌩부는데도 겨울이따뜻한 것은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겨울에 대한 나의 회상때문이리라. 항상 겨울만 되면 등장하는 붕어빵과 군고구마 장사가 반가웠다. 어릴적 내가 겨울을 견디는 낛은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군것질하는 것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 추운데도 불구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발걸음이 나를 이끄는 곳은 뜨뜻한 오뎅국물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붕어빵 노점상. 그리고 엄마와 동생을 위한 군고구마. 그때는 붕어빵이 지금보다 훨씬 쌌던것 같다. 나름대로 비싸다고 중얼거렸지만. 붕어빵은 내 단짝이었던 그 아이를 생각나게 하는 눈물겹게 고마운 매개체다.
학원을 가려고 기다리다 보니 붕어빵 장사가 보인다. 항상 그자리에 있는 붕어빵 장사였는데도 오늘 새삼스럽게 봤다. 주머니를 뒤졌다. 이백원. 참, 내 수중에 있는 건 이백원뿐이였다. 그때는 이백원 내밀고 " 아줌마, 붕어빵 한개만 집어먹을게요. " 할 수 있었는데. 그 배짱과 엉뚱함이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다가오는 겨울 속에 사라졌나. 그럴 겨울이 아닌데.
나는 캐롤중에 화이트크리스마스 그리고 크리스마스 송을 가장 좋아한다. 조용하고 , 감상적이다. 신나는 징글벨도 좋지만 난 어쨌든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좋아진다. 나날이. 어릴적에는 눈만보면 징글벨과 눈싸움하는 시끌벅적함이 좋았는데, 지금은 궁상맞더라도 방안에서 혼자 불켜놓고 창밖에 내리는 눈내리는 걸 보는게 좋다. 조용한 캐롤과 함께.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날이 혼자가 되어가는건 아닌가 한다.
헤르만헤세가 말하지 않았던가. 언제든 사람은 혼자되기 마련이다. 그걸 좀 더 일찍 경험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나는 이런다. 내 주위에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사랑하게 놔두고 살짝 빠져나오려고 하고, 내 주위에 많은 친구들은 그네들 나름대로 징글벨 들으며 신나는 크리스마스 보내도록 배려하며 살짝 빠져나오려고 한다. 그들은 여전히 신나게 이브를 보낼 것이고, 사랑하면서 아침을 맞을 것이다. 난 그들과 멀어지고 싶은게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겨울날 내리는 눈도, 멀리서 멀리서 넓은 땅에 소복이 쌓이는걸 지켜보고만 싶다. 그게 내가 느끼는 겨울의 묘미다. 춥지만 따뜻하다.
다시 어릴적 이야기를 꺼내자면 , 겨울에 외할머니 댁에 식구들 모두 모여서 방에 따끈하게 불지피고 조금 얇은 이불을 무릎에 덮고서 이야기했었는데. 다들 바빠서 이젠 모이기도 힘들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작년 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나서 작년 겨울엔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울로 ' 상경 ' 하느라 바빴는데, 지금와서 염치없게도 여유있다고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없이 맞이해야하는 겨울이다. 그립다. 겨울이면 마당에서 숯불에 군밤구워주셨는데. 이젠 그것도 못먹게 됐다. 그립다. 눈물난다. 우리엄마 얼굴에 서린 그리움도 아프다. 많이아프다.
겨울은 회상의 계절, 사색의 계절, 아픔의 계절, 향수의 계절, 아름다움의 계절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인생은 끊임없는 감정의 교차로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의 절정이 매년 겨울이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 만남과 이별이 공존한다. 둘을 같이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어리긴 하지만 , 그래서 혼자 생각하며 겨울을 보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추워도. 이게 좋은것 인가 한다.
매년 나는 겨울을 맞고 겨울을 보내지만 , 올해 겨울은 날씨는 더 춥고 마음은 더 따뜻할것 같다. 내마음은. 한해씩 나이를 먹고 한해씩 삶의 향기를 만들어나가면서 겨울은 나 자신에게 따뜻해져만 간다. 이번 겨울이 춥고 외로워도 미소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은 그런 신비한 힘이 있다. 그게 겨울의 묘미다. 난 겨울이 좋다. 겨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울려퍼지는 나의 아름다운 겨울. 노르웨이의 겨울숲보다 더 아름다운 나의 겨울.
- 겨울이 깊어가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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