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다양한 형태를 가진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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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동 파출소 - 죽음, 다양한 형태를 가진 뫼비우스의 띠 ]
푹푹 찌는 여름날. 더위를 모르고 찾아와 낡고 작은 소극장의 연극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피서법이다. 즐길 수 있다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여름날의 초상을 그리는 이들이다. 등골이 서늘한 ' 죽음 ' 에 관한 보고서를 본다면 더 짜릿하지 않을까.
혜화동 파출소. 삼천원을 지불하고 본 연극은 좋았다.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해 결국은 파출소로 흘러드는 미아처럼, 가출 청소년처럼 그들은 이승에서의 삶의 길을 잃고는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혜화동 파출소로 하나둘 흘러 들어온다.
세상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것을 지향한다. 죽음의 길.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을 기다린다. 죽음의 길.
너무 일찍 죽음의 길을 알아버렸고 ,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 길을 기다려야 하는 이에게 죽음으로의 기다림이란 이것의 의미 그 이상이다. 또는 괴로운 죽음의 길을 기다리는 이들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도.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들. 이들에게 죽음에의 기다림은 그녀의 말대로 " 기다림이 신앙이 되고 , 기다림이 집착이 되어 기다림을 멈출 수 없는 " 것이 된다. 진정한 죽음, 평온한 죽음의 길로 접어들지 못한 채 떠도는 망령이 된다.
생을 다한다고 꼭 ' 잠드는 '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만은 아니다.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죽음의 형태는 다르게 주어진다. 각각에게. 어떤 이는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선택하려는 무모한 짓을 한다. 죽음은 ' 업 ' 이다. 살아 지은 업에 따라 죽음은 주어지는 것이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시작하는 탄생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어지는 것을 받을 뿐, 선택할 수는 없다.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것, 생성과 소멸이라는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 속에서 우리는 발견한다. 우리는 왜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죽음을 알려드는가. 인간은 왜 죽어야만 하고 죽음을 통해 무엇을 얻고, 죽음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는가. 수세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성자들의 , 현자들의 연구대상이었던 ,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었던 ' 죽음 ' 이라는 것은 이렇게 ' 태어남 ' 이라는 것과 떨어질 수 없다. 죽음은 태어남이요, 태어남은 죽음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과 함께 동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루하루 죽음 앞에 가까워져가는 우리를 헛되이 보내는 이는 끝에 다다라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제대로 숙성시키지 못한 이는 죄값을 치른다. 그리고 다시 연결되는 태어남에서 ' 좋은 ' 운명을 받을 수 없다. 환생하지 못하는 이들 , 환생할 수 없는 이들 , 그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환생할 수 없는 망령이 '아닌' 이들이다. 가끔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기꺼이 환생의 영광을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 기다림이 신앙이 되고, 기다림이 집착이 되어 멈출 수 없는 " 망령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태어남과 죽음 속에서 업을 쌓아간다. 그렇게 쌓아가는 업의 생김새에 따가 죽음은 주어지고 , 다시금의 태어남이 주어진다. 다시 환생할 수 있는 이들은 업을 잘 쌓아온 이들 , 그리고 환생의 영광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 이다. 누가 가장 행복할까. 이것은 대답할 수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그 속에서 가끔 나름대로의 행복과 절망을 발견하듯, 죽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태어났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죽음이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단지 , 그 동안 쌓아왔던 업을 반성해보며 새로운 태어남과 또 다시의 죽음을 맞는 것이 설레이기 때문일 뿐이다. 시작과 끝은 반복되고 항상 새롭게 다가오듯 죽음은 그렇다.
과연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다가올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기꺼이 환생의 영광을 포기할 용기도 없고 , 지옥에 떨어질 용기도 없고 , 망령이 되어 편안한 죽음에의 기다림을 신앙으로 집착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싫다. 결국 죽음은 우리에게 ' 잘 살아라 ' 라는 것을 전달하는 편지인 것이다.
혜화동 파출소는 오늘도 붐빈다. 수많은 모습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수많은 모습으로 죽음의 끈을 잡고 수많은 이유를 들며 운명을 택하게 해달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대기 때문에. 우리가 잘살아간다면 운명을 택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의 사실을 망각한 채. 가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현명한 이들도 있다. 이승에서의 길을 잃고 혜화동 파출소로 들어오는 것 역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잠깐의 방황기이므로. 가끔 길잃고 죽음 속으로 표표히 걸어들어가는 것도 괜찮다. 어쨌든 수많은 모습으로 파출소에 들어온 죽은이들은 나름대로 결말 아닌 결말을 그렸고 , 나름대로 갈 길을 찾았으므로. 그것이 어떤 감정을 동반하든지. 그러고 보면 죽음은 죽음이고, 끝이고, 절망이지만 태어남이고, 시작이고 희망이다. 연속되는 ,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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