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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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 비둘기 같이 조용한 저녁나절 나는
고풍스러운 담장과 유리문밖 작은 오솔길을 내다보고 있다 .
여인의 고요한 눈동자 같은 휴식 이제 저 작은 오솔길로 오고있으나 ,
나른한 버들가지로 불타는 저녁 황혼이 밀려온다 .
어느틈에 모닥불 같은 겨을 로변의 이야기를 모으는 동안 ──
오오 귀여운 사슴이 샘터의 맑은 물 마시는 것을 상상한다 .
또 이러한 이야기가 풀어내는 듯한 옛 추억에 놀라
살랑거리는 저녁바람을 타고 내려온 듯한 나뭇잎조차
이 안온하고 평화로운 저녁 황혼으로 그 추억 이끌어 내나니
하여 서러운 마음 저윽히 누르고 황혼의 비탈길에 있는 나는
아주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당신을 떠올렸다 .
다만 이러한 생각은 어느 순간 나의 영혼에까지 맴돌다 ,
이토록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
아마 그것은 저 붉게 타는 황혼이 풀어낸 버드나무 하나
고풍스러운 담장밖 어스름 오솔길을 따라오게 하고
서늘한 저녁 바람이 그것을 일깨웠기 때문일까 ?
1968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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