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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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천국이라 불리어 지는 캐나다는 학교엘 가 보면 그 말을 실감하실 수가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아이들이 모두들 다른 얼굴색을 하고 같은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지요.
쌍꺼풀 없는 눈에 낮은 코 그리고 언제나 조용한 편인 동양계 아이들, 곱슬 곱슬한 머리와 검은 피부에 한 번 웃기라도 하면 이가 하얗게 드러나는 아프리카계, 그 보다는 조금 연한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검은 눈동자 짙은 눈썹에다 머리에 수건 같은걸 둘러 쓰고 교실에 앉아있는 중동계 모슬림 아이들, 게다가 노란머리 파란눈 하얀피부를 가졌지만 실제로 말을 걸어보면 강한 액센트가 들어있는 영어를 쓰는 동구 유럽권 아이들......
우리 남편은 그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ESL 선생입니다. English as Second Language의 약자로 이민자 자녀들이 처음 이곳에 와 언어 때문에 격는 어려움을 막고, 학교 생활을 제대로 잘 해 낼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캐나다 교육 제도의 일 부분이지요. ESL선생이 되려면 교사 자격증을 딴 후 또 다시 ESL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합니다. 그런다음 교육청에서 자리가 날 때 마다 인터뷰를 받아서, 거기서 정해주는 학교에 발령을 받지요.
남편은 주로 소그룹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교실에 들어가서 힘들어 하는부분을 알아내어 옆에서 도와 주기도 합니다.
저녁을 먹으며 항상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 해 주고, 제가 보낸 하루 이야기들을 물어보는 남편이 오늘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제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구 물었지요...
남편은 그제서야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 해 주더군요.
이곳에 온지 1년 정도 된 한국 여자애(4학년) 한명과 중국 여자(5학년), 남자아이(4학년) 각각 한명씩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그룹이 있는데, 오늘은 공부를 하다가 무슨 이야기 도중 한국 여자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래요.
" I don't like Japanese. I hate them !" 그래서 남편이
" Why do you dislike them?" 이라고 물었더니
" I just don't like them..." 하면서 자세히는 설명을 못 하는데 역사적인 이유를 말 하는 것 같더랍니다. kill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할아버지 어쩌고 ... 하는 말이 선조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남편이 무슨 말을 해 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중국 여자애가
"Do you have Japanese friends?" 하고 묻더랍니다.그래서 없다고 말하자, 네가 일본 애들을 사겨보고 그 애들이 나빠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막연한 역사적인 일을 가지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중국 사람들 한테도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나는 일본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 애들은 나한테 잘 해주고 나도 그 애들 하고 잘 지낸다. 이렇게 다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니... 하고 말을 하더라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줄곧, 몇 주 전 친구와 같이 간 Bar(술집?)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고 해요......
남편은 일요일 저녁마다 하키를 하러 갑니다. 게임을 마치고 항상 여럿이 어울려 근처에 있는 Bar에 가서 맥주 한 잔씩을 하고 오는데 그 날은 한쪽 구석 큰 TV가 있는 아래에서 한국 학생들 한 열댓명이 앉아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더라는군요.
그날은 박세리가 골프 경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한국의 세리가 좋은 점수를 딸 때 마다 몇 몇 남학생들이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아주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하더래요. 같이 간 사람들 중 남편을 잘 모르는 영국계 친구 하나가
"Those chinks!!!(특히 중국인, 동양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말. 우리말로 하면 땟놈 정도?) They always stick together(쟤네 들은 항상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다닌단 말야)."
하고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더랍니다. 남편은 순간 놀랐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You know... David, they are Korean not Chinese..." 했대요
그랬더니 그 친구왈.
" They look the same to me(나한테는 그 놈들이 그놈들이야)!"
하며 계속 맥주를 마셔대더랍니다.
이 두 이야기를 해 주고 나서 남편은 제게 묻더군요.
"내가 그때 어떤 말을 그 친구에게 해 주었어야 옳을까? 오늘 민지 에게 충고를 해 주던 그 초등학교 5학년생이 난 오히려 존경스러워. 그 아이는 자기의 생각을 그렇게 솔직히 표현하면서 최소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꿔 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잖아? 그날 Bar에서 아무말도 못한 내가 정말 부끄러워......"
그 말을 하며 눈을 조용히 내려깔던 남편의 속 눈썹이 오늘따라 더 길게만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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