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 발전소가 앗아간 거림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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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마을들이 지난 20년 동안 변했어도 이 곳만큼 많이 변한 곳은 없다.
그리고 예전에 이 곳만큼 산골이던 곳도 없었다.
시천면 곡점에서 골짜기로 이삼십 리를 더 올라가야 나오는 산중 마을 거림.
거림을 이야기하자면 저 지리산 빨치산과 남부군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지리산 등선과 골짜기마다 그들의 은신처가 아닌 곳이 없었겠지만, 거림은 하동 쌍계사 대성골과 산등성이 하나로 이어진 곳이다.
이 산골이 그런 대로 등산객이 다니는 유일한 이유는 이곳을 오르면 세석고원(세석평전)으로 쉽게 오를 수가 있다. 그래서 철쭉이 피는 5월말이면 지리산 철쭉을 보러 세석의 철쭉을 보러 이 나라 산꾼들이 다 몰려오던 곳이 이 곳이었다.
지금부터 이십 년 전 이 곳을 갈려면 진주서 거림 아랫마을인 내대까지 버스로 두 시간 걸려서 도착할 수가 있었다.
중산리와 갈라지는 곡점에서 거림골을 좌로 두고 버스는 비포장에 외통수 길을 곡예 하듯이 가야 한다. 차바퀴는 바닥의 큰 바위를 피해야 하고 창문은 산허리의 바위를 피해야 하는 산중 외길을 아슬아슬 힘들게 돌고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었다. 물론 중간에 차를 만난다면 그날 제 시간에 가긴 걸렀지만 다행히도 차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유일한 버스 외는 올라가는 차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길도 길이거니와 가본들 산뿐인 마을인데 누가 간단 말인가? 산꾼 밖에는.....
곡점 다리를 건너 지금의 양수발전소용 하부 저수지의 아래로 길이 있었다. 이제는 그 길은 저수지 속으로 지나가고 길은 다시 잘 포장되고 크고 넓은 새 다리와 함께 곡점 1Km 못 가서 갈라져 오른다. 저수지 상류를 올라 다리를 건너 다시 계곡 우측 변을 타고 오른다. 잘 포장된 도로가 내대 지나 거림까지 이 차선으로 차는 쑹쑹 올라갈 수가 있다. 오르는 길가엔 온통 산장이고 별장이다. 산만한 바위가 개울에도, 길에도, 천수답 논에도 늘려 있었는데 돌들을 집집이 정원석으로 쓰였고 이제는 옛 모습 찾으려도 찾을 길이 없다.
그 옛날 봄이 와서 이 길로 세석을 가자면 여기 내대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서 거림까지 한 시간이나 걸어 갔어야했었다. 가는 길에 산 호두며 곶감을 얻어먹고 주워 먹었는데, 한 여름이 오면 길가 수박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산 수박을 한 덩이씩 그냥 주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 길도 그 밭도 사람도 다 없어졌다.
거림마을 주차장까지 이제는 버스도 올라와서 돌아나갈 수가 있다. 비탈길을 돌아 오르면 좌측에 시골 가계집들이 서넛 나오고 바로 관리공단 매표소로 들어간다. 여기서 두 개의 골짜기가 만나는데 우측은 도장골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이고 좌측이 오늘 가야할 세석고원에서 내려오는 거림골이다.
민박집 마당을 지나면 산 속으로 접어든다. 여기서 골을 따라 길을 따라 빠르면 3시간 늦으면 4시간이면 세석의 산장이 있는 세석고원에 도착한다.
거림골 거림마을에서 좌측 계곡을 건너 남부능선으로 오르면 청학동으로 가는 재를 오르게 된다. 청학동 뒷산인 삼신봉으로 오를 수가 있다. 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서로는 쌍계사 골짜기요, 남으로 흐르면 지리산 종주능선에서 유일하게 갈라져 나온 낙남정맥이 시작되어 경남의 산들을 다 일으키어 낙동강하구 김해 신어산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이 낙남정맥 길에 지리산 양수발전소 상부 저수지가 놓인 지리산 고운마을이 있다. 이곳은 그 옛날 고운 최치운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지금도 지리산 작설차 농장이 있어 산중마을로 남아있는 몇몇 중에 하나이다.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거림골로 돌아가서 이 지리산에 산이 깊고 물이 좋지 않은 곳이 있겠냐마는 이 곳의 계류는 가히 최상급수라고 할만하다. 도장골과 세석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 흐르는데 여름이면 그냥 하천수를 떠서 마셨다. 그리고 시리 같은 물고기와 산 메기가 살고 있으며 아무리 가뭄이 와도 이곳의 수량은 줄지 않으니 어느 핸가 여름 가뭄이 수개월 계속되던 해 일부러 이곳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이 나라 산천물이 다 말랐다고 떠들던 그 해였으리라.
지나간 어느 해 날이 저물어 세석에서 거림으로 혼자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거림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밀려왔고 거림서 내대까지 걸어오는데 길엔 아무도 없는 어둠뿐인 밤길이었다. 그 길을 내려오면서 문득 지리산 빨치산과 남부군 영화 생각이 나서 혼자서 모처럼 가슴을 조이며 걸어 내려온 적이 있었다. 길 옆 산 속에 하얀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서 외면하려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서 그 년이 귀신이 아니라 산 위에 붙여놓은 현수막이란 걸 확인하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때 왜 거림골 남부군이 기억이 났을까?
꽃 피는 봄이 오면 해마다 가는 곳이 거림골 세석고원이다. 진달래가 지고 철쭉도 다 져버린 5월도 지나고 6월이 와야 산 위의 철쭉들이 피기 시작한다. 세석의 철쭉밭은 그야말로 선경이었다. 저녁에 올라 평원에서 야영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철쭉밭에다 텐트를 치고 잤던 것이다. 눈을 뜨고 바라본 사방은 철쭉의 천국이었고 그 꽃 잎사귀 크고 키 큰 철쭉들이 수십만 그루가 울긋불긋 피며 살고 있었다.
아! 그러나 그 철쭉은 이제 다 죽었다. 어느 핸가 철쭉제가 있던 날 여길 와서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그 넓은 세석이 온통 해수욕장이 되어있었다. 온통 꽃밭이 아니라 텐트 밭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몇 년 후엔 철쭉은 다 죽어버렸다. 철쭉의 가지는 건드리면 뚝뚝 부러지는 나무이다. 그래서 그들은 군락 지어 산다. 그러나 인간이 지나가면 생물은 초토화 되고마니 인간보다 더 지독한 것이 있으랴.
이제는 이 세석에 대규모 산장을 지었고 모든 등산로는 철책을 만들어 교통로를 지었다. 그리고 철쭉을 심고 야영을 금지하여 복원하고 있다. 이 지리산 산장중 가장 크고 멋진 산장이 세석 산장이다. 수용능력이 자그마치 300명에서 500명은 가능하니 이제는 야영하지 않아도 된다. 난방시설에 침구 대여하니 빈손으로 올라가서 잘 수도 있다. 그러나 간식은 팔지만 음식은 팔지 않는다.
난 산에 다니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산장에 매점이 있다는 게 불만이었다. 이 산의 쓰레기는 저 매점에서 나오니 그들은 변명한다. 여기에 버리는 쓰레기는 산장에서 수거하여 헬기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먹는 사람이 여기서만 먹느냐? 지고 올 줄 모르는 사람은 지고 내려갈 줄도 모른다. 이건 산의 진리다.
온 산의 쓰레기는 지고 온 사람이 버리는 것은 드물다. 내려갈 때는 배낭이 가벼워 얼마든지 가져갈 수가 있다. 그러나 빈손으로 올라온 사람은 지고 갈 배낭도 없고 힘도 없고 생각도 없다. 산장의 매점은 폐쇄해야 한다.
세석의 물은 약수이다. 이름처럼 細石에서 걸러져 나오는 물인데 약수이지 그리고 세석의 제일봉은 촛대봉(1703.7m)이고 진봉은 영신봉(1651.9m)이다. 산의 맥상에 앉은 봉이 영신봉이요, 낙남정맥의 발원이 영신봉이다. 영신봉의 낙남정맥을 따라 내려오며 빗방울이 좌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흐르고 우로 떨어지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그러니 낙남정맥의 산길은 물을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나누는 산경표이다.
양수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진주 산청의 시민들이 그 얼마나 항의와 궐기를 했지만은 결국 그 완공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개발이 그 얼마나 이 시대에 중요한 일이냐 마는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면 그 결과는 어젠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자연의 준엄한 경험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발전소 건설로 보상된 돈으로 산골에 도로가 나고 별장이 서고 가든이 온다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질까? 그들도 지금쯤 옛날을 그리워하고 과거를 후회하고 있으리다.
아! 옛날이여.....
다음은 거림골 민박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이야기를 하련다.
십수년 전에 하산하다 파전과 막걸리에 걸려 들어간 민박집이 있었다. 하도 인심도 좋고 사위 볼 딸 있다고 좋은 총각 중신해 달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알게 되어 봄마다 지나가다 들리곤 하여 알게 되었다.
병든 주인 아저씨 요양차 치료차 산중으로 찾아와서 살게 되었다는 그들은 이곳에서 봄이면 나물 뜯고 토종벌 키워 꿀 떠서 팔고 등산객 상춘객 막걸리와 안주 팔아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딸아이 출가시키고 아들들 졸업하여 공무원 되고 이번에 들리니 큰아들 결혼 후라 잔치 후렴상 한 상 받아 실큰 먹고 마시다 왔었다.
어느 가을 늦게 산을 내려오니 아저씨 혼자서 벌꿀을 따고 있었다. 나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흘러내리는 꿀을 자꾸만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다 떠날려는 나에게 도시락 통에다 밀랍을 한가득 채워주시면서 이건 진짜여, 내가 아무리 주고 싶어도 꿀 따는 날 아니 오면 맛도 못 보는 것이데 마치 이날 와서 이렇게 줄 수 있으니 실큰 먹고 가져가게 하셨다. 토종꿀과 곶감이 맛있는 곳, 사람 사는 인정이 살아 있는 곳, 그곳이 거림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산천은 변하였고 사람은 아직은 남아있으나, 몇 년 안 남았다.
이제 그들도 가면 산천도 변하고 사람도 다 갔으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는 빈 껍질뿐이 것이다.
산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산에는 산이 살아야한다.
2000. 03. 29. 이학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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