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40
|
| |
|
|
| |
| |
| |
가을 배추를 심어야지 싶어 일어나자마자 텃밭에 나왔다.
좀 늦게 일어났지만 햇살이 올라오지 않은 아침시간이라야 일이 쉬운 법이라, 삽과 괭이 그리고 낫을 들고 밭에 들어섰다.
해가 올랐지만 느티나무가 햇살을 막고 선지라 한두 시간 일할 여유가 생겼다.
바랭이와 잡초가 자리를 차지한 묵밭을 삽으로 갈아엎기 전에 먼저 낫으로 풀을 베어내었다. 그리고 삽으로 흙을 파 엎은 다음 괭이로 흙덩이를 잘게 부수면서 흙 속에 묻힌 잡초를 가려내는 일이다.
잡초뿌리에 매달린 흙은 괭이로 내려쳐서 흙을 털고 풀만 골라내었다.
고추와 들깨를 심고 남은 자리에 배추밭을 만들고자 하니, 남은 땅이 나란히 한곳이 아니라 고추밭사이에 한 고랑, 들깨 밭 언저리에 한 고랑이 되었다.
작년 한해 흙을 파고 밭농사를 지어 보았다고 일의 요령이 생겨 밭이랑 두개를 식전에 만들어 놓았다.
잡초가 무성했던 자리에 땀을 흘린 보람으로 보기 좋고 아담한 밭이 생겼다.
이제 오전에 숨을 돌리고 한낮의 더위가 숨을 죽이는 해그름녘에 다시 거름을 넣어야 했다.
처서가 지난 8월말이지만 햇살이 따가웠다. 햇살에 굳이 일을 할 것도 아니다싶어 4시가 넘어서 다시 거름 내는 일을 하였다.
작년에는 농자재 가게에서 계분 거름을 몇 포를 구해서 뿌렸는데 금년에는 음식찌꺼기 거름을 할 참이다.
여름 내내 집안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는 드럼통에 따로 모았다. 그 동안 충분히 부패되었지 싶어 뚜껑을 열어보니 까맣게 거름이 되어 있었다.
물이 안 빠지는 통이어서 냄새가 여간 아니지만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걸 보니 거름으로 손색이 없었다만 퍼내어 옮길 일이 여간 아니지 싶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운반을 해야하나 생각을 하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똥거름을 밭으로 지어내던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퍼세식 화장실에서 물이 반인 오물을 먼저 작대기로 훠이 훠이 잘 젖는다.
이때부터 온 집안에는 오물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허나 그 오물을 똥장군에 똥바가지로 퍼담아서 지게에 지고는 논밭으로 퍼 날랐다. 똥지게는 요령이 없으면 지지 못한다. 똥을 반만 담으면 출렁거려서 바로 넘어지고 만다. 설사 가득 담아 가더라고 약간은 출렁거림이 있기에 그 파도를 잘 이용하여 걸음을 걸어야 한다.
그 똥퍼는 일 같은 일을 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하면 냄새가 덜 하겠지만 농사 일하는 사람이 마스크 쓰면서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바가지는 무엇으로 하며, 담아 옮기는 그릇을 또 무엇으로 한단 말인가.
그러나 생각만 가지고는 일의 진도는 나가지 않는 법, 일단 신발을 단단히 신고는 수돗가에 놓은 바켓과 삽으로 퍼 담았다. 처음에 코가 시큰거릴 정도의 약취가 금새 익숙해 졌는지 한번 옮겨서 잘 골라놓은 이랑에 골고루 붓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 번에는 조심스레 하던 삽질을 퍽 떠서 파악 쏟았더니 오물이 첨벙 튀기더니 어깨며 얼굴 볼까지 와서 철버덩 물감 칠을 한다.
그러나 개념 할 일이 아니다. 이미 각오한 일이니 부지런히 삽질을 하여 바닥을 긁어내었지만 드럼통 바닥에 고인 오물은 삽으로 퍼내기가 어려웠다.
폐품 수집장에서 낡은 식기 하나를 집어와서는 드럼통을 기울이고는 오물을 쓸어 담았다.
바닥까지 말끔히 퍼내어 밭에 골고루 펼쳐서 바라보니 금년 배추는 예전 김장 배추 같은 단맛이 한껏 나올 법도 같았다.
헌데 이 정도 거름으로 만족할 내가 아니다. 호박밭에 모아놓은 한약재 찌꺼기도 아직 남았으니 봉지를 열고는 일년동안 묵힌 한약재 거름도 넣었다.
이제 한약과 음식으로 만든 최고의 거름으로 재배한 배추를 먹게 될 것이다.
괭이로 두 거름을 이리저리 섞어서 흙에서 몇 일 부패를 시킨 후에 비닐로 이랑을 씌운 다음 배추 모종을 구해 옮겨 넣으면 그만이다.
작년에는 무를 늦게 심어 발아도 못시키고 말았는데 금년에는 작년을 교훈 삼아 제대로 무도 심어 볼 참이다.
내가 좋아하는 무청 씨레기를 만들어 처마 밑에 줄줄이 걸어놓고 겨울을 날 생각이다.
음식찌꺼기 거름을 만들어 사용하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거름을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고, 음식 남은 것을 버릴 곳이 마땅하지 않았는데 하천 오염을 시키지 않아도 되고, 거름 중에 최상의 거름이라 작물에 좋을 것이다.
다만 부패시키는 과정에서 냄새가 나긴 해도 시골 살면서 이 정도는 맡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지난번에 뿌린 가을 상추도 싹이 돋았다. 도시인이 시골 살면서 밭농사에 먼저 긴요한 작물은 상추 들깻잎 고추 호박이고 그 다음이 무 배추이다.
산막에는 큰 밭도 없고 또 땅을 만들어도 내가 다 경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에 열거한 채소만 조금씩 재배를 하였다.
내가 먹고, 산막에 오는 사람과 나누어 먹고, 다행이 적기에 오면 떠나는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 모두이다.
그리고 자랑하자면 물 맑고 공기 좋은 산청 땅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자랑이다.
땅심이 좋아서인지 별로 병을 하지 않고 벌레도 붙지 않았다.
하기사 두더지 지렁이가 사는 땅이니 자랑할 만 한 일이 아닌가.
가을에는 손바닥만한 여유 땅이 생기면 부추(정구지)밭을 만들까한다.
재 거름으로 키우는 정구지 밭을 말이다.
좋은 낫 한 자루면 부추 전을 부지런히 붙일 수 있는 정구지 밭 말이다.
저녁으로 바람이 여간 좋지 않다. 그리고 산막 개울에 흐르는 물로 한바탕 목욕을 하고 나면 아침에 올린 별유천지비인간이라는 성어가 새록새록 하여지는 산막 생활이다.
2004. 08. 30.
사천의 두칠이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