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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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토종벌 이야기로 수년동안 거림골 토종 벌꿀 장사를 하였다는 것은 다 아실 일이고, 이번에는 내 산막에 든 목봉 이야기를 해 볼까한다.
야생벌 종류가 부지기수이지만 벌초날 밤나무 아래서나 풀밭 바위 속에서 나오는 땡벌 이외는 특히 아는 이름이 없다.
다만 양봉을 제외한 우리 토종벌 중에 흔히 말하는 석봉과 목봉은 쉽게 구별이 되지 싶다.
토종벌은 원래는 야생으로 산중 바위 속에다 집을 짓는다면 석봉이 되고, 늙은 나무 옹이구멍에 집을 짓는다면 목봉이 되는 이치다.
산막이 지리산 줄기에 있지마는 깊은 산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거림골 토종벌꿀집 형님에게 다음에 토봉 한 통이라도 키우면 한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대답이 양봉 때문에 토종을 키우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집 근처에 밤나무 단지가 많고 그러다보니 양봉업자가 온다면 토봉이 안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토봉과 양봉이 싸움을 하면 토종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만다.
지난여름 산막공사를 하던 포크레인 정사장이 산막의 할아버지 느티나무에 집을 진 목봉을 발견하였다.
수령이 수백 년이 되는 느티나무의 중간 가지 중에 하나가 호박처럼 부푼 곳이 있는데 그 아래가 구멍이 난 것이다.
비가 와도 묘하게 비를 피할 장소라 벌이 집을 짓고 여름 내내 꿀을 퍼 나르는 것이다.
정사장의 생각에는 여름장마가 끝이 나면 나무 재주를 하여 꿀을 퍼내 먹자고 하였다.
나무를 해치지 않고 꿀만 퍼간다면 내 나무도 아닌데 내가 무어라고 할 일이 아니지만
그의 생각은 아래로 뚫린 구멍으로 꿀을 꺼낼 수는 없고
아무래도 나무 둥지 위쪽을 톱으로 잘라 관통 구멍을 내어
꿀을 꺼내겠다는 것이다.
내가 나무를 상하게 하지 않고는 꿀을 먹는 방법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자연에서 사람이 구해 먹는 것은 어떤 수단이라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생활 철학을 내 생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고 볼 참이었다만 내심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장마가 오고 여름이 지나가니 산막공사도 중단이 되어
목청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막에 놀러와서는 목청을 보고는
한숨을 쉬는 것이다
벌의 색깔이 변해서 꿀이 망해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말뜻을 몰라하자 가서 보라고 한다.
가보니 노란색의 벌들이었는데 거뭇티티한 벌로 색이 짙어져 버렸다.
그래, 벌의 색이 무슨 상관인가 하고 물었더니
꿀을 모아 새끼 벌을 까면서 그 동안 모은 벌꿀들이 다 소진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금 나무를 타고 올라가 본들 벌집 속에는 애벌레가 가득하거나 빈 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심 오라! 쾌재를 부르면서도
사뭇 겉으로는 애통해 하면서
"그럼 어쩌나 토종벌꿀 맛은 못 보는 건가?"
"---"
"친구야 마 너무 서운해 마라. 그 벌통이 그 자리에 있으니 내년에는 꿀을 따면 되지 않겠니?"
아니라는 것이다. 야생벌은 한 곳에서 한 해 이상 살지를 않는다고 한다.
내년에 나무 빈 통에는 이미 벌이 만든 집이 있는데
새 꿀은 새 집을 지어서 새로 난다는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토종벌집은 매년 꿀을 따 버려 집을 비워두기에 그 빈자리에 다시 집으로 채우면서 꿀을 모우지만 야생벌은 그러하지 않는다고 한다.
두고보라는 것이다.
내년에도 그 자리에 벌이 있는지..
나는 야생의 습생을 정사장보다 모르니 그의 말을 믿는 도리밖에 없다만
어찌되었거나 내 의지도 못 말릴 일을 하늘이 말려서 나무에 해를 끼치지 않게 되었다.
세상의 일들에 당장 화급하게 처리하고 결론짓고 넘길 일도 있고 그냥 좀 두고 보고 저절로 해결이 되는 일도 참으로 많다.
특히 자연 속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서는
초등학교 국어 책에서 읽은 거위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하룻밤 부잣집 마당 헛간에서 머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마나님의 진주 구슬이 없어졌다.
구슬을 훔쳤다고 의심을 받은 나그네는 마당의 거위가 구슬을 삼키는 것을 보고도 자신의 결백을 말하지 않고는 마당의 거위가 똥을 누길 기다렸다.
다음날 거위 똥 속에서 구슬이 나오자 주인 내외는 나그네에게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내가 진작 거위가 삼켰다고 했다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거위배를 갈랐을 것이 아니오?"
"내가 기다린 결과 거위가 살게 된 것이라오."
하늘이 지켜주는 일도 있고
사람이 후덕해서 지켜지게 되는 일도 있다
세상의 사람 사는 일에는
2004. 08. 27.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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