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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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대강 내 머리에 담긴 대로 적어본 남구만 선생의 시조이지 싶다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일찍 눈이 뜨였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못 된 시간이다.
새소리만 고요한 아침을 깨운다. 창밖은 휜 하다. 풍경소리가 아직 잠결인지 기척이 없고, 그렇게 간밤에 울어대던 무논의 개구리 소리도 이제 흔적도 없다. 오월 말이라도 여기 산중이라 새벽공기는 찰 터이니 긴소매 옷을 꺼내 입고는 5시가 되는 걸 보고 방문을 열고 나서니 어느새 날은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개울물소리가 그쳤다. 물가에 가보니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줄어있었다. 논물을 대느라고 물이 보이면 호스 줄을 대어 논에 물을 댄다. 폭포를 만든 곳이 조금은 높은 곳이라 그곳까지 호스가 이어져 있었고 끝같데가 어딘가 해서 내려가 보니 호스는 하천 둑을 넘어 길 건너 논까지 이어져 밤새 물을 끌어가고 있었다. 산막 위 논들도 산막 개울의 물을 위에서부터 받아서 논으로 보내고 있었다. 대단한 작업이다. 농부가 물을 끌어대는 일은. 며칠 전에 논둑의 풀을 예초기로 베어 내었는데 이제 들판의 모든 논들이 하나같이 물을 끌어넣고 있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한 마지막 순서가 물을 내고 논에 써레질을 하여 말끔히 골라놓으면 되는 일이지 싶다. 지금은 모내기도 이양기로 심기에 예전의 모심기 풍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 아침 혼자 달리기 들판의 농로를 따라 돌아오는 코스로 정했다. 너댓바퀴 돌면 한 삼십분이상 소요될 것 같았다. 논길이지만 흙길이라 뛰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두어 바퀴를 돌고 있는데 논둑 여기저기에 아주머니 몇 분이 보였다. 논두렁 콩씨를 넣고 계셨다. 인사를 하고는 나는 들판을 돌고 아주머니는 논둑을 돌고 있었다. 경운기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들은 경운기를 끌고 들판 논길로 나오시는 것이다. 모두들 아침 식사 전에 농사의 하루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마을 분들이 농사일 때문에 바쁜데 운동복 차림으로 혼자 달리기를 하는 것이 사뭇 꺼림칙하여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산막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었다. 흰색으로는 덩굴나무인 으아리와 옮겨 심은 은방울꽃이 피고, 보라색으로 패랭이와 아침인사꽃이라고 내가 지어 부르는 난초 같은 잎에 방울 같은 입술을 열고 피는 꽃과 붉은 장미와 작약 꽃이 만개를 하였다. 노란색으로 감꽃이 푸른 감잎에 숨은 듯 피어나고 연못가와 집 뒤꼍에는 붓꽃들이 화들짝 놀라서 혓바닥을 내 민 듯 피어있다. 지난해 옮겨 심은 석류도 꽃망울을 수없이 매달았고 남밭에 심은 고추모종도 하얀 종같이 조그마한 꽃송이를 총총 매달고 서 있다. 장담하건대 내 산막에는 봄부터 서리 내리는 가을까지 여러 꽃들이 피고 지고하여 한차례도 쉬지 않고 꽃을 피울 것이다.
내 이 산막에 꽃과 같이 살려고 들어왔는데 당연히 사시사철 꽃을 보며 살 것이다.
하다못해 겨울철에는 눈꽃이라도 피워놓고 살리다.
내년 봄에는 금낭화 엘레지도 피고, 마당에는 황매화도 피어줄 것이다. 가을에는 여러 종의 국화꽃도 필 것이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고 하듯이 부지런히 가꾸고 보살피면 보기 좋은 화원이 만들어지리다. 수목이 어울리고 벌 나비가 찾아드는 그런 천상 꽃밭을 꿈꾸고 있다.
2004. 05. 25.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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