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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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30
산골에 묻혀 살기를 원했던 내가 한동안 글을 못 쓴 이유를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코너에 산농일기 두 편을 올리고부터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내 글이 그래도 공적인 지면인 인터넷 신문에 기사거리로 등록되어 올라간다고 하니 글에 괜히 힘이 들어가고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글쓰기 스트레스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내가 무슨 글쓰기로 밥을 먹는 사람도 아니고, 독자와 팬 관리를 하는 사람도 아닐 바에는 내 좋아 내 맘대로 쓰면 되는 일인데.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산농일기를 올리지 못한 점 내 게시판 독자에게 사과를 드린다.
또 하나 산막 공사를 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쓴다는 것도 내 삶의 취지에 안 맞는 일이라 그런 일들을 떠 벌이는 것도 맘에 내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잘 흘러가는 하천물길을 돌리고 조경석 제방을 쌓고, 논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든다고 포크레인으로 파헤치는 일도 다 자연을 자연스럽게 두지 않고 내 용도에 맞게 한다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기에 사뭇 글쓰기가 꺼림칙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문득 봄비가 나직나직 나리는 아침이라 작년 이맘때가 그리워서 지난 산농일기를 처음부터 한편한편 읽고 있노라니 산막 공사를 너무 거창하게 한 것도 같고, 간단하게 한다면서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도 같아 마음이 자꾸만 밟힌다.
이미 시작하여 마무리 단계까지 왔으니 복원할 길은 없고 그나마 가능한 더 이상은 파괴하지 말고 남은 일도 있는 그대로 마무리를 하여야 할 것 같다.
내가 산막 공사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공사기간동안 내 눈에 산막 주변 자연의 변화와 생태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사가 잘 이루어지는지에 온 마음이 집중되더라는 것이다.
하늘에 뜬 흰 구름도 안 보이고, 밤하늘의 별도 달도 안보이고, 산새 소리도 아름다운 풀꽃의 속삭임도 들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내가 무슨 공사 감독도 아니고, 조경업자도 아닌데, 하고 한날 조경석에, 조경수에, 배치며, 진척에 정신이 다 빼앗기고 말았으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고 만 것이다.
거기에다 공사비용은 나날이 증가하니 돈을 구하는 일까지 겹치고 말았다.
아! 예전에 허허롭고 유유자적하던 두칠이 영감은 어디로 가고 일에, 돈에, 눈알이 새빨개진 업자 한 명만 허덕이며 살고 있는 꼴인데, 이를 지켜보던 내 주위의 사람들도 다 느끼면서 아무도 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이다.
낮은 개울에 손만 내리면 물이 잡히던 곳을 이제는 저만치 아래로 내려다보아야 물이 보이고, 힘든 돌계단을 내려서야 물에 닿게 되었다. 편안하던 집 마당에다 마당석이라고 들이 놓은 돌은 마당을 다 차지하여 시야를 막고 말았으니, 돈들이고, 자연 망치고, 마음마저 병이 들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작은 연못 하나 만들어 연꽃이나 피워볼 요량이었는데, 돌로 사방을 쌓고, 폭포를 내고, 물길을 뚫고 나니, 이리 보면 이곳이 거슬리고 저리 보면 저곳이 흠이 되어 나오니 이 또한 마음의 병이로다. 아직도 다 마치지 못한 하천에 지금이라도 장대비가 쏟아진다면 아직 덜 다져진 흙더미가 하류로 떠내려 갈 일도 걱정이 된다.
개울 구비 구비 여울에 살던 물고기들은 이제 숨을 곳이 없어지고 말았으니 다시는 못 살 것이다. 개울둑에 저절로 피던 찔레꽃도 다 잘려 나가고 흙이 쌓여 둔덕이 된 곳에 저절로 피어나던 물 봉선 분홍 꽃송이도 금년에는 못 보게 되었다.
이러면서도 한번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으니 내가 그 동안 사람들에게 자연이 어떻고 생태계가 어떻고 아는척하고 떠들던 일들이 가식이 되고 양심의 가책이 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는 동안 가능한 생태복원의 방향으로 재 공사를 하든지 사람에게 편리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복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마무리하여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산농일기라면 산중에 무슨 일거리하고 있었는지, 달이 뜨는지, 새가 우는지, 꽃이 피는지, 물소리가 나는지, 벌레는 사는지 이런 이야기는 없고, 무슨 자해공갈단처럼 자학꺼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나도 내가 한심하다.
그래도 그 할아버지 느티나무하고 슬레이트 지붕의 산막은 손 하나 안 대고 그대로 있으니 헤헤
잘 했지?
나..
2004. 05. 21.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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