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두칠이

두칠이

사천 앞바다 만큼 푸른 마음으로 산을 음유하는 산사나이

영남 알프스 달빛 산행 연작시



	달빛산행 연작시 전편 1. 매미 날 받아 놓았는데 약속 해 놓았는데 날아왔구먼 나는 알지 어둠이 깊어야 아침이 온다는 걸 태풍이 불어야 달빛이 좋다는 걸 풍수해 입은 분께 미안한 일이지만 새벽달이 떴는데 아무도 없던데 아! 속삭이기 좋은 밤 술집색시라는 매미 내 왕매미는 날 보러 달빛 산행 왔었지 2. 긴늪 숲 천년을 흐르는 강변 백년을 섰던 솔숲 조약돌 모여 마을 이루던 곳 이리가면 밀양땅 저리가면 청도땅 알로가면 표충사 울로가면 운문사 밀양 관문 삼거리에 세세백년 이정표에 나그네 한량객 쉬어가고 자고 가던 긴늪 숲 어이타 한순간에 이리도 폐허로고 허허 남아 한평생 춘몽이구나 3. 얼음골 산이 깊어 산내면 얼음 난다고 꿀사과 난다고 얼음골로 가건만 얼음골에 제일은 파란 하늘아래 푸른 산허리라 사자산 마루금 운문산 마루금을 성곽으로 쌓아놓고 구비 구비 골짜기 아득한 강물이요 깎아 세운 절경인데 산은 푸를 綠이요 하늘도 푸를 靑이라 푸른 綠을 타고 올라 푸른 靑으로 걸어간다 4. 배냇고개 죽전마을 파래소 폭포 물이 간월산을 타고 내리는 죽전마을 삼거리에 살던 욕쟁이 할머니가 민박 치던 자리에 할머니는 산에 묻히고 별장에 모텔이 들어섰네 엄동설한 젊은 시절 홀어미로 살면서 외동아들 입신양명 바라며 새벽 찬물에 목욕하여 백일기도 드렸다며 "이 썩을 놈들아! 늙으면 뼈마디 쑤시니 겨울 찬물에는 들어가지 말어래이" 일러주던 쉰 목소리만 귓전에 맴도는 배냇골 죽전마을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가 아니라 인걸은 의구한데 산천은 간데 없네 5. 눈물의 855고지 진달래 피고 지고 피울음 같은 철쭉이 피면 저린 바지저고리 따라 줄버꿈 열린 입에서 가뿐 김 뿜어 나오는 소가 오르던 길을, 달이 올라 강물 같은 하늘에 달이 뜨면 된비알 소나무길 따라 달빛 산행 오른다 855고지 산마루까지 굽은 소나무 마디 잡고 오르던 아흔 아홉 구비 길 소 똥 고인 자리에 땀 냄새가 고인다 1100고지 넘는 사자산 재악산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다 타고 고사리분교로 원점회귀 산행길 아! 찬밥 한 덩이 입에 문 눈물의 855고지에 새벽달이 따라 운다 6. 고산 분지 (사자평 분지) 천상에는 길이 없다 거저 평평한 하늘과 땅뿐이다 더 올라갈 곳도 다시 내려갈 곳도 없다 그러나 산꾼은 가야 한다 길이 없어도 가야 할 운명을 진 사람이다 어둠 고인 자리에 달빛이 쌓여 물이 되고 풀이 되고 꽃이 되고 마침내 세상이 되었네 태초에 배낭 하나 지고 지팡이 든 자 나타나 물길로 길을 여니 하늘도 길을 열어 마루금 따라 한바퀴 따라 도는 하늘 길을 걷는다 7. 재악산 달춤 재악산 수미봉에는 쟁반 돌이 있다 밤 안개도 수미봉을 넘지 못하고 재를 타고 넘는다 달빛에 어지러워 쟁반을 비워놓고 내려앉는다 사통팔방으로 열린 지평선을 바라보는 곳인 줄 알았는데 달밤이면 달은 쟁반 돌에다 옷을 벗는다 시린 하늘에 맑은 달이 거칠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이 홀라당 벗고 나와 달춤을 춘다 영남알프스 산맥이 낮게 엎드려 잠잠하다 8. 사자평원 (으악새) 누구도 살 수 없는 그 곳에서 그는 산안개 외투를 입고 밤이슬을 마시며 바람을 데리고 산다 오직 그만이 사자 등에 탈 수 있다 9. 표충사 사자바람 뭐도 모르는 왜놈들이 남의 땅에 와서 남의 산 이름도 제멋대로 불렀다 괜찮은 산의 산봉우리 이름을 제 놈들 왕 이름인 천황봉이라 지어놓고는 황국사관 역사 배운 우리 선배 선생들 따라 부르니 학생들 따라 불렀다 하동땅 악양에 가면 성제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는데 왜정시절 왜놈들이 악양땅 평사리 사람들에게 산 이름을 물었더니 성제봉이라 말했지 형님을 성님이라 부르듯이 산 위에 오르면 높이가 같은 산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있어 형제같이 보인다고 형제봉이라 부르던 우리 산 우리 이름을 뭐도 모르는 왜놈들이 聖帝峰이라고 불렀다고 정상석까지 새겨 올렸으니 밀양땅 표충사는 임란 때 왜군과 싸운 사명대사의 사당 있는 곳인데 表忠祠 뒷산을 천황봉이라고 부르다니 포효한다, 사자가 한 맺혀 운다 사자산 사자봉이 억새 같은 깃털, 바람에 날리며 2003. 10. 15. 10. 사자평원 목로주점 바람이 열어주면 열리고 닫아주면 닫히는 사자평원, 목로주점 十五夜 달빛에 비친 천막주막 목로주점에 사람소리 가득하여 덜컹 열리는 문으로 들어서니 바람 피해 들어온 달빛무리였다 쉬어간 사람들이 남긴 情談들이 나무식탁 긴 의자에 아직도 훈훈하다 2003. 10. 15. 11. 목장길 샘물상회 인간세상 곁에 산줄기로 빗은 천상낙원 광활한 분지 풀밭에서 달빛 무리 유희하는데 오늘 밤새워 길을 걷던 가련한 영혼들 가뿐 숨 가다듬고 마른 목을 추긴다 그 해, 아스라한 지평선 구름사이로 사자상 같은 달이 떠오르던, 영남 알프스 고산 분지 허물어져 가는 정자에 앉아 재약산 약주로 세상 시름 잊었던 그 가을은, 달은, 그 날 그 달이건만 望月臺 샘물상회 주막 정자는 지난해 태풍 루사에 그만, 2003. 10. 15. 12. 고독한 달빛 길 소리꾼이 장구 메고 걸어가던 서편제 남도 길 같은 사자봉 돌아 능동산 산허리 휘감아 도는 삼 십리 목장 길은 멀고도 아득한 인생 길 같다 지친 다리 끌며 허기진 배 끌어안고 차디찬 밤바람에 몸 맡기는 눈물의 길이다 저 멀리 달빛만이 희망이다 2003. 10. 15. 13. 영남 알프스 달빛 산행 시린 하늘에 백치 같은 달이 떴다 표충사 골바람이 안개꽃을 피워도 멍청한 달, 눈물 떨어져 울부짖는 풀잎에 매달린다 달은 깨어져 사자봉 돌비늘이 되고 빛은 흩어져 풀잎에 진주가 된다 마루금 따라 흐르는 길, 소금길이다 바람길이다 눈물의 인생길이다 2003. 0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