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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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21
내 아우중 한 명은 직업군인이다
언젠가 내 수필에 주인공이 되었던 재수생 내 동생이 바로 군인이 된 것이다
언제나 아우이고 말 잘 듣는 소년인 내 동생이 사관학교 동기생 몇을 데리고 내 산막에 온다는 것이다.
대전 계룡대에서 일과 마치고 출발한지 두 시간 남짓 걸려 도착을 했다.
가벼운 평상복차림으로 차에서 내리는 얼굴들은 이제 중년의 얼굴이었다.
내 아우친구의 모습이 저 정도인데 형인 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느낌이 어떨 것인지 상상이 되었다.
허나 그들은 모두 동심이었다. 이십대 초반에 사관생도시절부터 동고동락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구들이니 어릴 적 고향친구 못잖은 정이 묻어있었다.
나보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준위라고 하는 사람, 중위라고 하는 사람, 중령이라고 장난 끼로 자기 소개를 하였다.
사십대 중반의 중후한 체격의 장정 다섯이 산막에 들어서니 마당이 가득해 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수 인사를 마치고는 뒷산 선유동 계곡으로 고기잡이를 나섰다. 그들은 아우에게 사전 정보를 들었는지 고기잡이 장비를 갖고 왔다.
반바지 반소매에 슬리퍼를 끌고, 산길을 오르는 길에는 밤송이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다. 계곡 길은 지난 태풍의 흔적으로 길이 끊기고 바위들이 굴러서 물가에 사는 나무들이 넘어지고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선유동 폭포는 아무 탈없이 그대로 물이 굽이치고 떨어지고 맴돌고 있었다.
선유동 심산유곡에 사는 도리뱅뱅이용 물고기들이 장정 다섯 명에 쫓겨 넓은 소에서 손살같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달아나고 있었다. 어항을 놓고 낚시를 하는 사람, 뜰 채를 들고 아래서 진을 치고 위에서 물길을 따라 포위를 하여 쫓으면 물고기들은 맑은 물 속에서 달아나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이는 것이다. 뜰 채를 재빨리 뜨지 않으면 뜰 채에 들어간 물고기도 다시 달아나 버리곤 하였다.
이십여 수 잡아서 즉석 도리뱅뱅 튀김을 한다. 소주잔을 돌리며 계곡 너럭바위에 앉았다. 아래로 폭포가 포말을 뿌리며 떨어지고 건너 산 위로 하오의 가을 햇살이 비쳐 바라보이는 산중에 앉았다. 계곡 물 건너 직벽에 어느 누가, 언젠가 새긴 글귀와 이름 석자도 만고풍상의 세월에 저 홀로 늙어가고 있었다.
건너 바라다 보이는 눈 높이의 산 위로 달이 뜨면, 달빛이 우리가 앉은 바위에 부딪히면, 달보다 밝은 빛을 발하는 바위 등불이 되어주는 바위에 앉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선인들이 모습이 떠올랐다.
내 언젠가 달이 좋은 날 밤, 막걸리 한 말을 못 지고 오더라도 소주 몇 병은 들고 올라와서 달을 보고 음풍농월을 해 보리라고 마음먹고 있다.
산막으로 돌아와 감나무 장작에 불을 놓고는 산청 흑돼지 삼겹살을 굽는다. 드럼통 아래로 기름이 잘잘 빠지면서 통고기 삼겹살을 굽어서 먹고는 저녁대신에 광에서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밤알을 잿불에 넣어놓고 굽히기를 기다린다.
누구는 여기 산청지방에 처음 왔다고 하기도 하고 지리산자락에 처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산중 시골 생활은 어릴 적 해보고는 처음이라고도 한다.
모두들 임관하고 임지로 임지로 전근생활하며 군인으로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왔다. 훈련이니 비상이니 하며 휴일과 주야가 없는 직업군인의 생활이 아니었던가. 반평생을 오직 국토방위를 위하여 살아온 사람들이다.
내 동생인데 명절이며 휴가시절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여기 온 모두의 형이 되어 부대를 떠나, 가정을 떠나, 뜻 맞는 친구들과 모처럼 그들의 말처럼 안빈낙도하는 하는 시간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생각만큼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자정을 넘기고 방 하나를 내어 주었더니 좁은 방이나마 옹기종기 끼어서 새우잠을 자도 동기의 우애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들은 방에 들어서도 그냥 소 시절 수학여행가서 하던 짓들을 하는 것 보니 동심이란 게 바로 자유로운 몸과 마음이 되어야 우러나오는 것이지 싶다. 나는 옆방에서 그들이 조용해지는 것을 보고 네 시가 되어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일곱 시였다. 잠깐 눈을 부쳤는데 개운하고 말짱하여 어제 씻어 놓았던 감을 썰고 녹즙기로 즙을 내고 있었다.
지난주에 한번들인 감물이 곱지 않아 한번 더 감물을 들인 생각이었다.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명씩 한 명씩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왔다. 서늘한 아침공기에 모두들 상쾌한 얼굴이었다.
내가 아침 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형님 오늘 산행은 취소입니다. 우리도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저희들이 할 일을 주십시오. 마당도 쓸고 밭도 갈고 돌도 나르겠습니다."
"그래, 아침을 먹고 보자! 내가 일꾼으로 쓸만해야 일을 주지 시원찮으면 그냥 구경하는 편이 나을 걸세."
"어제 경운기 핸들잡고 돌리는 것 보셨잖아요. 또 돌 확 하나 들고 옮기는 것 보셨잖아요."
오늘은 돌 확보다 큰 돌 절구통 들고 올 것 있으면 시켜셔요."
"알았네, 아침이나 먹고 천천히 내 일거리를 마련해 봄세."
한나절 동안 집 안팎으로 산재된 그 동안의 일들을 합심하여 마치고는 정자나무 그늘아래 앉았다. 준비해 둔 부추전을 부쳤다. 홍합에 고추를 넣고는 즉석에서 부침을 붙여 막걸리를 받아놓고는 마셨다.
"형님 안빈낙도 이거 쉬운 거 아니네요."
농촌 일이라고 해보니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나에게 지적 받은 일과 땀 흘리면서 킁킁거린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명색이 영관급 장교들인데, 몇 년 있으면 장군 될 재목들인데, 막일 흙일 해 본적이 없는 그들인데. 하하 내가 오늘은 장군이었다. 공군 말똥들 다섯 명이나 명령하고 지시하고 부하로 부렸으니 야전군 사령관이 된 하루였다.
"아우들 고생했네 내가 여기 그대들 오늘의 전과를 기념하고자 기록장을 만들어 왔으니 그대들의 자필로 오늘의 소감들을 한자씩 적어주시게."
그들이 남겨놓고 간 아름다운 일들은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내 산막 방명록에도, 여기 산막 일기에도.
2003. 0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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