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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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18
간밤에 갑자기 산막에 가게 되었다.
수월, 안봉 이정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조각난 달 하나 얼굴 빨그레 되어 반긴다.
마치 반술된 내 얼굴 같다. 음주측정을 한다면 알코올 도수가 기준치를 넘을 수도 있지 싶은데, 그 동안의 내 경우에는 단 한번도 기준치를 넘겨서 법률위반을 한 적은 없다. 음주측정이야 여러 번 받았지만 적당히 마신 후 음주측정을 받은 적이 두어 번 있었는데 강심장이라서 그런지 단 한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사실이지 난 우리 나라 음주 측정방법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다. 미국식으로 차에서 내려 바른 줄 하나 땅에 내려놓고 걸어가 보라고 하여 반듯이 걸어가면 통과이고, 취하여 못 걸어간다면 운전이 불가한 상태인 걸로 구분하는 그 방법이 바른 방법 같다.
술이 약한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는데 피 속의 알코올 농도로 기준을 정하는 우리 나라 제도는 술 취한 사람을 적발하는 제도가 아니라 알코올 농도 높은 사람을 적발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난 술을 마셔 알코올 농도는 높지만 취하지는 않은 상태로 내 산막까지 잘 운전하여 왔다는 말은 이리도 어렵게 설명을 하고 있다.
산막 마당가운데 주차를 척하고는 열쇠꾸러미를 신발 속에서 찾아 신속하고 정확하게 현관을 열어놓고는 손전등을 들고는 마당 끝 전신주 전기함을 열고는 지하수 펌프 모터 스위치를 올린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혈관에 피가 돌 듯이 필요한 곳에 급수가 자동으로 되어진다.
이미 저녁도 먹고 왔으니 자리 펴고 자면 되는 일이다. 평상에 앉으니 지난여름 극성이던 날벌레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태풍 따라 북상했는지, 공중의 내 시야는 깨끗하다.
어느새 바람이 서늘하면서 물소리 따라 풀벌레 소리가 유난한 계절이 오고 있다.
캔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평상에서 마신다.
뒤뜰 당상나무 고목 할아버지가 가만히 내려다 봐 주신다.
기웃뚱 넘어진 고추나무가 주렁주렁 붉은 고추들을 간신히 매달고 서 있다.
마당 저만치 늦은 백화 한 송이 불빛에 빛난다.
반딧불은 다 어디로 가고, 달빛만 자욱하게 들판을 후빈다.
이제 모깃불 피울 일도 없다. 긴 팔 난방 하나쯤은 차려 입고 앉아야 찬 기운을 피한다.
들판의 벼는 마음이 바쁘다. 따가운 햇살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난여름 모자란 해 기운을 담을 일에 바쁘단 말이다.
내일 아침에 고추라도 따서 늘어놓고 가야 할 터인데..
아무래도 내일 오전 결근 계를 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좀 늦은 아침을 간단히 먹고 마당 청소를 하고 고추를 따서 전처럼 축담 위에다 천막을 펴고 늘었다. 가지도 자꾸만 열려, 따 주어야 하는데 먹을 사이가 없어 매달린 가지만 힘이 든다. 그렇다고 먹지도 못할 것을 따서 보관한다는 것은 더욱 낭비이다. 그냥 두고 보리다. 늙어 시들면 제자리에 떨어져 거름이 되겠지.
요 며칠 햇살이 좋다. 따갑고 억센 햇살이다. 안봉 천에 차를 몰고 나가서 세숫대야로 물을 퍼 차에 뿌려 세차를 한다. 하천 오염이라고 걱정을 하지 싶다. 헌데 내 차 청소는 여름에 한번하고는 처음인데 기름때를 빼는 것이 아니라 어제 집 앞에 물을 건너면서 튀어 올라온 외관에 묻은 흙덩이를 씻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차 싸워하는 셈이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들고 간 세숫대야 하나 냇물에 떠내려보내고 말았다.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여름내 평상에 깔고 앉았던 대자리를 물에 대강 씻어서 빨래 줄에 걸어놓고는 정오 전에 출근을 해야 하니 번개처럼 차를 몰고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가을에는 좀 느긋하게 쉬고도 싶은데 어찌 잘 될라나?
2003.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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