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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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5
우리 속담에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요즈음 내 마음이 그렇다.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마음은 산청 산막에 수시로 드나든다. 야생화 사진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다든지 좋은 꽃 그림이 보이면 그래 저 꽃도 심어야지.
언제 심어야 하나? 어디서 구해야 하나?
구름 잡은 생각의 나래가 끝간데 없이 펼쳐지곤 한다.
비가 오다 개다 하는 장마가 며칠 계속되고 있다. 선 듯 퇴근하고 산막으로 향하기가 쉽지를 않아서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 싶어 파종할 씨앗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퇴근 종이 울리자마자 차를 몰고 대진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사천서 지리산인터체인지까지 20분 남짓 걸리는 시간이지만 산과 강을 지나는 도로는 눈 구경이 괜찮은 코스이다.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자락도 보이고 천왕봉도 보이는 길이다. 경호강줄기를 따라가는 길이고 맑은 날 하오는 푸른 산과 파란 하늘 그리고 흰 구름에 시퍼런 강물까지 조화를 이루는 길이다. 차량마저 뜸하니 창문을 약간 열고 도미의 청포도 아가씨 노래라도 한 구절 부르면서 간다면 낭만과 환상의 코스임이라 여겨진다.
지리산 단성인터체인지를 들어서니 도로 좌우에 모종이 심겨져 있었다.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종이었다.
아니 지난봄에 내가 씨앗 좀 구하자고 여길 들렀더니 없다고 하드만 저희들은 구해서 심어놓았잖아!
나는 차를 도로관리사무소 입구에 세우고는 건물로 막 들어설 순간 3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나오셨다. 혹시나 나처럼 일이 있어서 온 분인가 하면서 여기 근무를 하셔요? 하니 그렇다고 했다.
"저, 목화 모종을 좀 얻을까 해서 그럼니다."
나를 아래위로 빤히 바라보드니,
"이미 파종을 다 해버려서 모종은 없고요. 씨앗을 드릴 수 있어요."
지금 씨앗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요. 혹시 파종하고 남은 모종이... 몇 포기만 있으면 되는데... 집 꽃밭에 심어 볼라고 해서요."
"그래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셔요."
그녀는 비닐 봉지 두 개를 들고 나왔다. 하나는 씨앗이 든 봉지이고 다른 하나에는 모종을 담아 줄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기만이 아는 꽃밭 꽃들 사이에서 제법 자란 목화 모종 두 포기를 모종삽으로 정성스럽게 파서는 담아 주었다. 그러면서 여기 꽃밭은 자기가 가꾼다고 했다. 꽃들을 좋아해서 이 곳 생활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들러달라고 했다.
해바라기들이 나무 화분에 심겨져 줄을 지어 서있었다.
키가 높이 자라는 해바라기를 화분에 심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싶어 한마디했더니
"여기 해바라기는 키가 낮은 해바라기예요."
아하 나는 내가 모르는 해바라기 종이었구나.
가는 길에 메모에 적힌 씨앗을 달라고 종묘상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니
"쑥갓은 이미 늦어서 안 되요."
"그럼 열무는요?"
"열무는 되겠네."
열무씨앗 한 봉지를 들고 산막 입구에 들어서려니 냇물이 불어 차바퀴까지 물이 올라왔다. 오늘 수위가 최고로 올라온 것 같았다.
냇물을 건너니 바로 해바라기 꽃 터널이 나왔다. 이제 모든 송이가 꽃을 달았다. 한 주일이 못 되었는데 내 키를 넘고 말았다. 좌우에 도열한 해바라기 꽃길이 당분간 이 산막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올 적마다 해바라기 곁에서 해바라기와 대화를 했었다. 그러면서 거름을 주고 김을 메고 지지대를 세우고 곁가지에 나오는 순을 잘라 주었다. 한 나무에 꽃을 한 개만 달아야 꽃판이 크고 씨앗이 유실하기에 작은 꽃들은 따 주어야 했다.
한 주일만 지나면 키가 자라면서 새 잎이 나오고 곁가지가 나와서 꽃눈을 달았다.
신발만 갈아 신고는 입은 옷 채로 삽과 괭이로 감자를 파 낸 자리에 잡초를 뽑고 거름을 뿌리고 이랑을 지어서 열무 씨앗을 뿌렸다. 열무 중에 제일은 콩밭에서 자란 것을 쳐준다. 왜냐면 거름발이 없어도 콩과식물과 함께 자라면 영양 공급이 되고 콩 잎 아래는 그늘이 좋아 열무 순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은 장소를 느티나무 그늘이 한나절은 지나가는 곳에다 파종을 했다.
장마기운이 감도는 습한 날씨라 금방 땀이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린다. 씨앗을 뿌린 자리를 호미 등짝으로 슬래슬래 골라서 씨앗이 약간만 흙에 묻힐 정도이면 된다.
감자 이삭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끼 요기는 되겠다.
그저 얻는 것이 없는 법이다. 이렇게 심어야 또 거두는 것이 땅이 섭리이다. 지금 한창 자라는 고추며 가지 그리고 상추도 봄에 내 손을 심었기에 거두는 것이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내가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 것도 있다. 내가 베푼 것이 있어야 얻어 올 것도 있다. 내가 마음 준 것이 있어도 마음도 돌려 받는다. 여름 해가 길어서 일을 마치고 연장을 씻는데도 날은 훤하다.
오늘 심은 목화가 발아가 된다면 아니되드라도 두 포기는 모종으로 심었으니 꽃은 볼 것이다.
목화는 꽃이 두 번 핀다. 목화꽃으로 한번 피어나고 면화꽃으로 피어서 목화솜이 된다. 처음 피는 목화꽃이 화려하고 곱다. 내 어릴 적 보았던 그 꽃잎들이 벌써 보고 싶다. 양 개울에 물이 불어 물살이 보통이 아니다. 산그늘이 지는 저곳에 연못이 되면 이런 여름날에는 연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둘지 말아야지 서둘면 일을 그럴 칠 수도 있다. 때를 기다리고 운을 기다리자.
2003.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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