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농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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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3
산새소리에 눈을 뜨니 여명이 창문을 두드린다
휘바람새 소리도 아니고 뻐꾸기 소리도 아니다
여름철새들은 이른 아침에 울지를 않는다
아침에 창가에 와서 우는 새는 작은 새일 것이다
화장실을 개수한다고 파헤져 놓아서 사용을 하지 못한다
볼일을 봐야 하는데..
츄리닝 바지에 런닝 차림으로 방문을 나선다
소변이야 사방지천이 다 소변기인데
큰일은 그렇지 못하다
마당에 크게 벌리고 앉아도 볼 사람이야 없는 집이지만
그럴 수는 없고
아무래도 사방이 막히고 고요한 곳은
감나무 밭자락에 자리를 잡아보는 도리밖에 없지 싶다.
화장지와 삽을 들고 화장을 하러 나선다
누가 보면 아침일찍 밭일하러 나서는 사람같지만 알고보면 하하하..
감나무 잎새에 이슬이 걷히지 않았고
당상나무에는 해도 걸리지 않았는데 산공기가 흘러내려 피부에 쓸리는 촉감이 기분좋은 아침이다
호박순이 제법 자라 제 길을 찾아가고 있다.
먼저 호박 뿌리 근처에 구덩이를 파 놓았다.
볼일 볼 자리는 밭 한가운데 하늘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곳에 삽으로 평탄지를 만들고 막 바지를 내리고 주저앉는 찰라에 바로 눈앞에서 뭔가 휘익 지나간다.
붉은 점박이가 선명한 뱀 한마리가 감나무 잎사귀 떨어져 쌓인 자리에서 기어 나오서 손살같이 달아난다.
아니 이놈이 쥔 보물을 노리다니?
이 늠아 내가 쥔이여~~
이 땅 쥔이란 말이여~~
임마 네가 웬만한 쥔 만났으면 오늘 아침에 이 삽끝에 네 목아지가 달랑 날아갔을 것이다만
내가 이 땅에 사는 만물과 어울려 살자고 왔기에 순순히 살려 보내는 줄 알어!
녹색과 적갈색의 무늬가 있는 걸로 봐서 독사는 아니다
개구리가 많이 사는 풀밭이라 뱀이 살지 싶었는데
뱀은 먹이 사슬에 중요한 중간 다리이다.
예전 같았으면 볼 일을 보고 감나무 잎을 몇개 따서 뒷처리를 했을거다 마는
나도 문화인이라 휴지 몇장을 꺼내서 처리를 하고 풀잎 썩은 자리에 삽질을 해서 무더기채로 아까 파놓은 호박 구덩이에 휘익 던져넣고는 또 풀 섞은 거름으로 위장을 해 놓았다.
흙으로 덮어버리면 부패시간이 오래 걸린다 햇살과 바람을 받으면 빨리 거름이 되어 호박 뿌리로 스며 들 것이다
개울물 소리가 앞산을 돌아흘러간다.
그 소리를 듣고 돌복숭아 열매가 둥글 둥글 영근다.
하나 둘 셋 넷..
두 그루에 달린 복숭아 숫자도 내가 못 다 헤아리겠다
내가 혼자 먹을 숫자는 넘어버리는 것이다
잡초속에서도 돌복숭아는 저렇게 익어가는데
사람이 재배를 하는 복숭아는 병충해에 살아나지를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아들 보면 병원신세 없이 키우는 아이가 없다. 요즘 세상에는.
헌데 시골이나 산골에서 키우는 아이는 아닐 것이다
자생력과 면역이 도회지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저 돌 복숭아를 보면 알잖아..
오늘 아침에 반찬도 전과 동일하다
오늘은 된장국을 끓여볼까?
얼려둔 홍합을 적당히 토막을 해서 툭발이에 넣고 마른 멸치 몇도 집어넣고, 토속된장을 숫가락으로 한가득 퍼 넣고 덩어리를 잘 어깬다음 적당히 물을 붓고는 불에 올린다.
그리고는 양파를 깐다.
풋고추를 손으로 툭 툭 분질러서 넣고는 도마에 양파를 올려놓고 칼질을 한다.
하얀 양파 하나가 칼질 한번에 이배수로 숫자가 늘어난다.
생양파 한조각을 입에 넣고는 깨문다.
양파의 향기가 입속에 가득하다
아하 사는게 뭔데...
사람 사는 게 뭔데, 바로 이 것이구나!
나는 혼자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마치 득도를 한 고승의 미소를 연상한다
그래 그래 사는게 뭔데..
입신양명을 위해서, 돈과 명예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돈을 모우고 예절을 배우고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가?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일을 하며 그 일속에 나를 기억하고 행복해 하고 작은 일이지만 사는 날 까지 뭔가를 하는 거구나!
비록 그 일이 남에게는 하잘것 없는 일 일지라도.
오늘은 감나무밭에 약을 뿌릴 수가 있겠지..
느리게 느리게 하는 법도 터득하면서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해가 뜨는 동산을 바라보고 한참을 앉아있다가
생각이 나면 그 때 천천히 펌프에 전원을 넣고 모터가 돌아가 준다면 시간이 지나면 농약은 뿌려지겠지.
산새가 처마밑 나무 섯가래위에 집을 짓는다고 부지런히 들랑거린다
이른 아침에 내 방에서 들었던 그 새인가 보다
지난 봄에 헛간 농기구 보관대속에다 부화를 해서 이사를 나간 새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집 섯가래다 집을 짓는다.
새들도 다 안다
내가 제 해칠 사람은 아니라는 걸
고맙구나.. 산새야!
내가 먹이를 잡아주진 못해도 뱀이 네 새끼 잡아먹는 일은 없도록 보호해 주마!
같이 살어
사는게 뭔데.. 그쟈.
2003. 06. 30.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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