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불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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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악산 진불암에는
겨울이면 물이 귀해
스님도 하산을 하신다
어느 겨울
진불암 마루에 햇살이 유난하던 날
스님도 안 계신 절에
늙은 개 한 마리가 마중을 나왔다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였더니
다 먹은 후
봉지에 묻은 라면마저
핥아먹던 개
하산길 길 밝히며
눈 쌓인 밤길 안내하여
십리도 넘는 표충사 마당까지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순간도 곁을
떠나지 않던 개
절 마당에서
이제 잘 가라고
차속에 남은 비스킷 몇 조각으로
작별을 고하니
차가 먼저 떠나도록 길 비껴주며
시동소리 나고서야
손살같이 진불암으로
밤길 마다 않고
사라지던 개
내려오면서
개 이름을 몰라
지어주었는데
우리라고
우리
몇 년이 지나
눈 쌓인 겨울에
우리 생각이 나서
진불암에 가보니
우리도 스님도 나오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만
암자 문짝을 여닫는데
늙어 죽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스님 따라
겨울 나들이로
저 아래 표충사에서
동안거 할 것이라고
재악산에 눈이 녹아
물소리 들리며
우리야! 우리야!
2003. 02. 26.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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