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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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봄나들이
온천동 방향과 동래산성 방향으로 갈라지는 이정표를 보고는 산 쪽으로 차를 좌회전하여 꼬불꼬불 비탈길을 타고 금정산을 넘었다.
올라가는 길 좌우에는 콩나물같이 자란 소나무들이 빼곡이 자란다, 저 소나무들은 수십년 전에도 저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어찌 키도 자라지 않고 몸통을 예나 지금이나 같을까?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 이다. 동래산성이 있는 곳이며 산세가 넓고 남북으로 강과 협곡을 따라 양산에서 부산시가를 가로질러 부산을 산의 고장으로 만든 산이다
산성으로 들어가는 재에서 내려 차를 세우고 남문 쪽으로 걸어서 길이 어디까지 연결되는 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봄같이 따사로운 이월 하순의 휴일이라, 나는 산행하는 인파 속에 발걸음을 태웠다
길은 간밤에 내린 비에 젖어서 좀은 질퍽거렸지만 평지같이 완만한 흙길이었고 차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이라 걷기에는 좋았다.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일행을 만들어 걸어가고 있었다. 대개가 50십대 60대로 보였다
나는 차에서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산행준비인지라 항상 싣고 다니는 등산화를 꺼내 신고 물통 하나를 챙겨 파카 호주머니에 넣고는 한 두 시간 여정으로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가급적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그래야 사람들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어울려 가는 사람의 화제와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걸어가는 사람들의 화제가 다른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종이었다.
남문안 성내에는 지금은 거의 인가는 없고 몇 안 되는 산중 음식점만이 허름하게 옛 모습으로 숲 속에 동그마니 앉아있었다. 산중 분지에는 아침 햇살이 겨울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포근하고 아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낯선 곳이고, 나는 이방인이고 그들은 토착민 같아 이질감을 가지고 걷고 있었다.
수박 샘이란 이름을 가진 샘이 길 가운데 앉아있었다.
나무 가지에 아직 아침이슬이 걷히지도 않았는데, 저 숲 건너에는 푸른 하늘이 문을 열고 나오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에는 어느새 봄이 성큼 나와서 이처럼 수박향내를 솟아내고 있었다.
물맛이 좋고 이름이 수박 샘인데 어찌 나는 벌써 여름철의 향기 그윽한 수박 향을 떠올릴까?
봄도 오지 않았는데 마음은 어느새 초여름으로 달리고 있을까?
눈 녹은 물이 졸졸졸 흘러서 물웅덩이를 만들고 그 아래 마른 덤불에는 한 컷 부풀어오는 흙무덤이 누워있었다.
하하 호호 사람들의 웃음이 길에 묻어나는 등성 몰이를 도는 구비에 숲 마당과 바위가 나왔다.
너럭바위에는 걷다 쉬는 노인들의 환한 웃음이 바위에 쌓이고, 햇살은 벗은 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쉼터 마당 가운데 앉는다.
마치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실례합니다. 이곳을 따라 어디까지 가시는 걸음인가요? 제가 이곳은 초행이라서......"
"저기 바라보이는 산봉우리가 상계 봉인데 모두들 그곳까지 가는 사람들이지요."
"상계란 말이 무슨 뜻인가요?"
"상계.. 위 상자에 닭 계자입니다."
"으음, 닭 머리 모양이란 말씀인가요."
"닭 벼슬 같은 바위들이 있고요. 성내 망루가 있습니다. 한 시간쯤 걸리는 곳이지요."
나무 그늘이 아침 햇살에 비치어 길을 덮고 있었다. 출발한지 30여분이 걸려서 나는 남문 입구에 닿았다. 남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아마도 만덕터널이 나올 것이다. 그 길로는 수년 전에 가본 곳일 것이다. 양산 다방리에서 출발하여 하루 산행을 하여 성지곡 어린이 대공원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으니 남문으로 갔을 것이다 만 성터를 따라 상계 봉으로 가는 길은 초행이었다.
햇살은 산자락 어디에도 아니 머문 곳이 없었다.
나는 허물어진 성의 돌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한 동안하며 여기 저기에서 올라와서 상계 봉으로 오르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동안 봄 하늘에 몸을 맡기었다.
상계 봉에서는 저 산아래 낙동강 줄기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구름바다가 산을 덮고 있었다. 모두들 구름바다에 넋을 잃고 한동안 바라보는 것이었다.
산이 높아 산을 올랐더니
산너머에 또 산이 있을 줄이야..
산너머에 산만 있는 줄 알았더니
구름이 먼저 올라와 있더라.
수박 향이 아니 나는 수박샘물이지만 아침 속을 씻어내는 해장국이라 생각하고 한 병을 반이나 마시고는 인적이 드문 바위하나를 찾아서 나앉았다.
바위에는 지난 밤비에 한가득 물이 고여 하늘우물이 되어있었다.
평 바위는 비에 깨끗이 청소가 되어서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웃옷도 벗고 바위에 등을 붙여 누었다.
하늘이 눈앞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산아래 분지에는 봄이 전령이 나처럼 와서 군사를 부리고 봄 단장을 하고 있었다.
아,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구나. 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몰래 와서 청소도 하고, 기운도 불어넣고, 군기도 잡고, 질서도 세우고, 늦잠 자는 나무나 풀도 깨우고 하여 일제히 일어나는 자연의 대 향연이구나.
내가 앉은 곳은 등산로와는 동떨어져서 혼자 한동안 지내어도 아무도 오질 않았다. 사과 한 알이 오늘 나의 점심이다. 생수 한잔과 사과 한 알이면 한나절 보낼 일인데 사람 사는 일에 왜 그렇게 고비용 고소비가 일어나야 하는지 모를 일이로다.
오늘 금정산에는 구정을 지난 첫 주일이라 시산 제를 지내는 산악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혼자서 비무장으로 올라온 나에게 점심을 준다고도 하고 술과 떡을 준다고도 하였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별로 시장하지 않아서 겨우 사양을 하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나는 오늘은 모처럼 사람을 떠나 자연과 지내고 싶은 날이다.
봄이 오는 남녘에서 봄의 전령이 나에게 할 일과 명령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이 봄에 자연에게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거늘 내가 어찌 자연이 시켜는 일을 미리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자연은 때가 되면 스스로 내가 가야할 곳으로 안내할 뿐이다.
나는 다만 자연의 아주 작은 깨알보다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거늘.
내려가는 길은 한층 발걸음이 가벼웠다. 약간 땀이 베일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신작로같이 큰길을 걸어 내려왔다. 그 길에는 여전히 나처럼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야 올라오는 사람도 있었다. 금정산의 북에 고담 봉이 있다면 남에는 상계 봉이 있다.
나는 그 봄날 아주 우연히 상계 봉에 올라서 그 상계 봉 아래 있었던 이야기 한편을 들었다.
금정산 동래산성에는
소나무 잣나무가
무섭도록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5. 16 군사 쿠데타 시절
부산시내 유흥가 깡패, 양아치와
완월동 몸파는 아가씨들
이 산중에 강제로 거주시켰다
山城 南門 盆地에
가가호호 천막집을 지어주어
밤이면 청춘사업을 벌였고
낮이면 삼림녹화사업을 벌렸다고
舊正 지난 첫 주일날
비 개인 산,
버들강아지 꽃 비늘이
젊은이 가슴처럼 부풀어오르는 아침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한 가득한 할아버지가
비무장으로 초행인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이다
한 세상 절반인
40년이 흘러
녹화사업 했던 그들은
저 할아버지만큼이나 늙었을 터인데
이제 그들 다 떠나고
무너진 성 돌만 남은 자리에
아련하고 애잔하게
청춘의 기운이 안개처럼
번져 올랐다
몽롱하도록 황홀한 봄볕에서
나무들은
푸르고 청정한
그들의 젊은 혼이 되어
금정산 동래산성에서 자라고 있었다
2003. 02. 10.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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