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편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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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봄비가 왔습니다.
대지를 적시고 천지를 일깨우는 봄의 전령 봄비가 내렸습니다.
땅도 하늘도 까만 새벽을 뚫고
비는 소리도 없이 천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아직 벗지 못한 겨울 파카를 입고 모자를 썼습니다.
가로등 아래로 빗줄기가 올올이 사선을 긋습니다.
어둠이 사방을 메운 새벽을 헤치며 비속을 달렸습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비 내리는 소리도 묻혔습니다.
들판의 논들은 마른 목을 적십니다.
보리를 심은 논은 이랑이 가지런히 지어져 있습니다.
물이 나는 거문갈이 논은 이제 논을 갈아엎어서
모자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땅은 이 빗물로 자던 몸을 일깨워서 한 해를 열어야합니다.
논은 벼를 담고 밭은 채소를 담아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을 보낸 농부는 한해 농사를 시작해야 함을 압니다.
이제 비까지 와 주었으니 미루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논밭을 갈고 거름을 지어내고 씨앗을 내야합니다.
우리는 어른으로부터 배우고 때를 익혀 삶을 꾸려야 합니다.
세상살이는 다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때를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판 끝자락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낮은 담을 따라 길게 화단이 있습니다.
화단 땅에는 다알리아 뿌리가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담을 따라 가을이면 다알리아 꽃이
붉게 붉게 피어나기 때문에 이곳은 다알리아들이 사는 줄 압니다.
빗물은 땅에 스며 다알리아 뿌리에도 닿아서
새순을 재촉 할 것입니다.
운동장을 돌아 집으로 옵니다.
연못에는 가로등 불빛 두 개가 물 속에 비칩니다.
수은등은 푸른빛으로,
나트륨 등은 붉은 빛으로 수면에 수를 놓습니다.
불빛 따라 가느다란 빛줄기가 수면에서 나를 향해 광선을 긋습니다.
광선 위에 빗방울이 파문을 내며 떨어집니다.
마치 장난처럼 총 총 총 떨어집니다.
아름답고 평온한 연못가의 풍경입니다.
마을 뒷산으로 여명이 어둠을 사르고 나타납니다.
조용한 하루가 이렇게 밝아옵니다.
봄비가 왔습니다.
삼라만상에 봄기운을 옮기는 봄비가 왔습니다.
봄비에 나를 적셨습니다.
그리고 봄의 기운을 가득 담아보았습니다.
봄은 저 늙은 고목의 나무 가지 끝자락에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옷이 좀 젖었으면 어떻습니까?
봄, 봄인데요.
2002. 03. 05.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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