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편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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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사남면은 들판이 아주 넓습니다.
바둑판같은 드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농노가 반듯하게 지평선 저쪽으로 나있습니다.
새벽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길을 혼자 달립니다.
다녀오는 동안 한 사람도 못 만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름이면 가끔씩 출근하는 사람이나 농지를 둘러보는 사람이 있긴 하나 요즈음처럼 겨울에는 거의 만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언제나 일정한데 오늘은 제법 주위가 밝았답니다.
혼자 생각에 해가 조금씩 길어지니 그런가하며 아직은 잠이 든 지내 마을 동구 밖 길을 지나왔습니다.
池內 마을 앞에는 예쁜 연못이 하나 마을을 그림처럼 만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지난해 피고 진 연꽃의 잎과 줄기가 찬 물위에 그 자리를 잡고 처절하게 말라 꺾어져 있습니다.
수면은 밤이지만 거울 면처럼 고요합니다.
수면 속에 뜬 달을 보았습니다.
물 속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이 음력 몇 일 인가요?
정월 열 이레이군요. 헌데 달은 하나도 이즈러짐 없이 동그랗게 하늘 저편에 달려 있었습니다.
새벽이 유난히 밝았던 것은 어제 그제는 흐려서 새벽에 달이 없었는데 오늘은 달빛에 환한 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름날 보다 열 엿새인가 열 이레 밤 달이 더욱 크다고 들은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열 이레 새벽이니 제일 큰 달을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군요.
달빛을 받으면 빈 들판을 홀로 뛰었습니다.
들판 끝자리에는 시골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나는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목적지를 돌아오곤 합니다.
되돌아오는 길은 들판을 가로질러, 연못가를 지나오는 길은 동일하나 마을 사잇길로 가지 않고 마을 뒤 솔밭 길을 건넙니다.
솔밭에는 안개가 아련히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사이 얼마 지나지고 않은 시간인데 안개는 어느새 솔밭까지 올라왔습니다.
소나무 나무 기둥사이로 희미한 길이 보이고 잎새 사이에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안개입니다.
안개는 금새 짙어졌습니다.
하늘의 달은 아주 저만치 멀리 멀리 보입니다.
안개 때문에 작아 보이고 사라져 가는 느낌입니다.
이별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연못에 비쳐볼 때만해도 달은 따뜻해 보였고, 가까워 보였고, 반가워 보였고, 밝아 보였답니다.
헌데 안개에 가려진 달은 이다지도 애련하여 이별의 설음을 보는 듯합니다.
지내 마을 송림은 황토밭입니다.
그래서 좋은 황토로 황토 방을 지어놓았습니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짓기 시작한 집이었답니다.
대나무 언덕 속으로 황토 굴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굴입니다.
언젠가 한번 혼자 들어가 본 적도 있습니다.
가로등불이 안개 속에서 깊은 산 속 오두막집의 호롱불빛처럼 가물가물 거립니다.
신문을 돌리는 아저씨가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뒤 따라 오더니 말을 겁니다.
부탁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뛰어가야 할 황토 방에 신문 한 부를 돌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두 부를 주면서 한 부는 날 가져 라고 합니다.
얼른 받아들고 마저 뜁니다.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신문 한 부의 아침 선물이 이렇게 좋습니다.
난 원래 신문을 아니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좋은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씀이 괜스레 날 기분 좋게 하는 아침입니다.
나누는 기분은 가끔씩 아주 작은 것이지만 서로에게 이렇게 기쁨을 주는 일인가 봅니다.
또 아무도 못 만나는 길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날 흥분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요.
2002.02.28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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