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느낀 일상
|
| |
|
|
| |
| |
| |
아침과 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길에 걸리는 시간이 4시간 정도가 된다.
이렇게 긴 시간을 다니는 나를 보고 어떤 이는 날마다 여행하는 기분일테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지만 나는 여행은커녕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조차도 나를 짓누르고 있는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했고, 그러기에 그 시간은 내가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할 유일한 시간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래서 버스는 언제나 잠자기 좋게 적당히 흔들어주는 요람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내 머리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졌고, 잠결에 취한 내 모습은 어느 정도 풀어진 모습이기도 했으리라.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렇게 잠자고 다니던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려 출퇴근한지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그 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상념에 잡혀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버스가 갑자기 이상한 고속도로가 아닌 외진 숲길로 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왠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사방으로 두리번거려 보았는데 버스에 동승한 다른 사람들은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나만 어디론가 납치하기 위해 이 사람들이 모두 짰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황스러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멀리 가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게 되고 나 혼자 실없이 웃어버렸다. 그 이유는 6개월 동안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깨서 지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날 처음으로 그 동안 버스가 그 길을 날마다 지나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을 다녔으면서도 처음 만나는 길이었으니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자고 다녔었는지 과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벌써 일년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나를 생각할 시간, 생활을 다시 돌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이 마음만 바쁘고,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한 번 내 생활의 여유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기로 하고 아예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지 않고 출발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산에 아카시아 꽃이 밤꽃에게 바톤을 넘겨 준 것을 볼 수 있었다. 군데군데 밤꽃 무더기들을 보면서 언제 산천이 이렇게 녹음이 짙어졌나 생각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점점 산으로 내려오고 있는 해를 본 것이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나무들은 푸른 잎으로 하늘을 빽빽이 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것 하나도 어제의 그것이 없었다. 똑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나무들도 어제의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산천도 그렇다. 어젠 눈부시게 투명하여 하늘 끝에 닿아있는 산 꼭대기의 나뭇가지들도 다 보일 듯이 맑더니 오늘은 부끄러운 듯이 안개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산등성이의 빛깔이 산을 넘을 때마다 옅어지고 있었다. 나무들도 제각기 저만의 빛깔을 띠고 있으며, 어린 나무의 이파리는 여리고 순한 색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큰 나무들은 이미 성숙한 청록색으로 으젓하고 푸근한 모습이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려나갈수록 나는 자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으며 그 많은 다른 모습들은 다 담기엔 내 눈이 너무 모자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오늘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잠자는 것만이 유일한 휴식이라 여겼던 내가 새로운 마음, 새로운 눈을 뜨고 나니 내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새롭고 가슴 설레이는 만남이었다. 나는 내게 보이는 것 모두에게 한 마디씩 속삭였다. 내일 또 달라진 너희들의 모습을 만나겠노라고... 내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을 한탄하면서도 오늘 퇴근길은 콩콩 뛰는 가슴을 안고 돌아왔다.
내일 또 만나게 될 새로운 모습들이 내 생활조차 새롭게 변화시킬 것 같다. 그 동안 일상이 늘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으니 내일을 맞는 오늘밤은 어쩐지 즐겁기만 하다.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