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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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학교 건물 전관과 후관을 연결시켜주는 공간
에 만들어 놓은 중정이 보인다. 몇 해 전, 겨울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던 때에 보았던 그림같던 중정이 생각난다.
2층 교실에서 바라본 뜰의 모습은 한 폭의 유화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건물 2층까지 자란 키 큰 목련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모과나무의 커다
란 잎이 다른 나무에 비해 늦게까지 단풍을 뽐내고 있었고, 오른 쪽으로는
산수유나무가 잎들은 다 떨군채 빨간 열매를 자랑하였으며, 목련나무를 건
너서 보이는 감나무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감이 선홍색으로 당당하게 매
달려 있었다.
단풍은 이미 지쳐서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은 다 말라버려서 손만 대면 버석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데 선홍색의
감만은 여전히 짙은 색을 드러내며 도도하게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누가 그것을 까치밥이라 했을까. 선홍의 감은 까치들이 감히 제 밥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할만큼 고고하게 나무 꼭데기에 매달려 있는데...
제 몸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저 커다란 열
매를 매달고도 의연히 버티는 힘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움직여 아름드리 나무를 우뚝 서게 하는 뿌리. 쉬지 않고 어둠 속에서 땅속으로 깊이 깊이 뿌리를 뻗어 양분을 모아서 그 커다란 나무를 의연히 서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을 떠올렸다. 내 속에서도 저런 보이지 않는 내가 보이는 나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커스단이 가는 바늘 위에다 접시를 놓고 돌릴 때, 돌아가는 접시가 아무
런 흔들림 없도록 하기 위하여 밑에서 조정하는 서커스단의 움직임은 얼마
나 분주한가. 그렇듯이 내 안에서 쉬임없이 움직여 나를 지탱하게 해 주는 보이지 않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난 또 다른 하나를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봄이 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목련나무에 꽃눈이 나뭇가지가지마다 뽀얗게 솟아올라 있었다.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는데 꽃눈들은 금새라도 꽃송이를 터뜨릴 것처럼 토
실토실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그 해는 다른 해보다 유난히 따뜻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한 해에
두 번씩이나 꽃이 피면 어쩌나 하면서 마음을 졸이다가, 또 기온이 떨어지
면 연약한 꽃눈이 시기도 모르고 피어났다가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서 정
작 피어나야 할 봄에는 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또 조바심을 쳤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여리디 여린 꽃눈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도 않고, 추
운 겨울에 얼지도 않고 이듬해 봄에 당당하게 우아한 자태로 학교를 환하
게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목련은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꽃눈을 먼저 틔웠다.
난 그제서야 목련이 어째서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피어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기 위해서 다른 식물들보다 훨씬 일찍 준비를 하는 나무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리도록 추운 엄동에 꽃눈이 이기고 견뎌 낸 의지가 순백색의 순결한 이미지로 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목련을 대하는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 졌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목련나무는 꽃눈을 틔우고 겨울을 맞았고, 흰눈과 시린 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나고 있다.
이제는 목련의 꽃눈을 보아도 미리 필 것을 염려하지도 않고, 한파에 얼
어 버릴까봐 노심초사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고있노라면 내 마음은 벌써 아지랑이 솔솔 피어나는 봄을 향해 목련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봄을 기다리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앞질러 내 가슴엔 이미 만개한 순백의
목련꽃을 가슴에 안고 겨우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활짝 핀 목련꽃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벌써 내 안에서 진동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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