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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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문을 열면 생전에 아버지가 아껴 쓰시던 수동 카메라와 무비 카메라가 들어있다. 아버지께서 아끼시고 쓰실 때는 최고의 물건이었는데 카메라는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 할 정도로 오래 된 문화재에 속하고, 무비카메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신형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골동품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퇴물이 되었다.
친정 아버지는 참 취미도 다양하셨다. 분재, 수석 수집, 화초 가꾸기, 난 기르기, 사진 찍기, 기계분해하기, 양궁, 사냥, 그리고 65세에 정년퇴임을 하시고는 컴퓨터를 만지시는 것이 취미셨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즐겨 하시던 일은 화초가꾸기와 사진 찍기셨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꽃집으로 불릴 정도로 꽃이 많았다. 집에 온실을 지어 놓으시곤 100여 종류의 선인장을 기르셨고, 마당에는 흙을 퍼와 작은 동산을 만들고 그리고 담 옆으로는 꽃밭을 만들어 온갖 꽃들이 계절을 따라 다투어 피어났다.
어릴 때 아침이 되면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햇살이 먼저 내려와 감은 눈을 부시게 할 때면 가장 먼저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버지와 엄마가 아침 일찍 꽃밭을 둘러보시며 부르시던 휘파람 소리였다. 뜸북뜸북 뜸북새를 화음을 넣어가며 부시는 휘파람 소리가 내 귀를 간지르곤 하였다. 꽃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 보내신 후에 두 분만이 지내실 때는 꽃들 때문에 자식들 집에 놀러 오시는 것도 마다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즐겨하시던 또 하나의 일은 사진찍기셨다. 회사에 필요한 모든 사진 자료는 아버지 손에서 찍히고 만들어졌다. 천연색 사진이 나오기 전, 흑백 사진 밖에 없을 때는 집에 암실을 만들어 놓으시고 아버지께서 찍으신 사진을 직접 집에서 현상을 하셨다. 두꺼운 검은 커텐으로 둘러쳐진 암실에 들어가면 작은 불빛 아래에 반짝이는 인화지를 올려 놓고 필름을 비추면 그 인화지에 내 얼굴이 그려지는 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그리고 천연색 사진이 나오면서부터 아버지께서 암실에서 작업하시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리고 어느 새 암실도 사라져버렸지만 아버지께서는 또 형형색색 나타나는 칼라 사진에 취미를 붙이셨고, 나중엔 카메라가 저절로 거리조절과 조도를 알아서 맞춰주는 자동카메라가 나오면서 그것도 좋아하셨다. 그리고 정지된 사진이 움직임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무비 카메라가 나오면서 아버지의 휴대 필수품에 카메라에다 무비카메라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어디를 가시든지 자동카메라와 무비카메라는 아버지 안 주머니와 어깨 한 쪽을 차지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또 하나 아버지의 곁을 끝까지 떠나지 않았던 것은 오토바이이다. 아버지께서는 회사에서 승용차를 가지고 운전기사를 둘 수 있는 위치에 계셨지만 한사코 사양하시고 오토바이 타기를 즐겨하셨다. 자동차는 덩치가 커서 본인이 가시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갈 수가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기사를 두면 아버지 볼 일 보실 때에 기사를 우두커니 기다리게 하는 것이 싫으시다는 것이 승용차를 사양한 이유였다. 한 겨울에 다른 지방보다 유난히 추운 태백산 자락에서 아버지는 가죽바지를 두 개씩이나 껴입으시고 오토바이를 타셨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이라 눈길에 미끄러져 오토바이와 함께 벼랑으로 떨어지는 일도 몇 번씩 겪으셨으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토바이 타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어느 해 추석에는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72살이 되시던 해였다.
아버지와 엄마께서 경남 창원에서 남원까지 춘향이가 그네 타던 광한루를 보시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국도를 달리신 일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명절이라 모든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하시고, 겨우 찾은 휴게소에서도 이미 식사재료는 다 떨어진 뒤라 팔다 남은 햄버거 하나로 허기를 채우시면서도 칠순을 넘긴 두 노부부는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겨 하셨었다..
결국 오토바이 사고로 다치신 휴유증으로 돌아가시게 되긴 하였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친정에 다니러 갔더니 갖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다 가져가라고 하셨다. 예전엔 엄마가 뭐 하나 싸서 주면 딸자식 키워 놓으면 다 도둑이라더니 그 말이 참말이네 하시던 분이 아마도 이제 다시는 일어나시지 못하시리란 것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시던 무비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수동카메라와 자동카메라는 이미 그 이전에 도둑질(?)을 해 왔고.
그리고 이 년 전 중환자실에서 20일이 넘도록 단 1퍼센트의 회생 가능성도 없다는 뇌사상태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의 줄을 놓지 않으시더니 막내인 내 생일날 스스르 숨을 놓으셨다. 생전에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막내 딸이 행여 아버지 기일을 잊어버릴까 그러셨나 생각도 하였지만 뒤집어 생각하니 이젠 그 누구도 내 생일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아버지 기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불효막심한 사람은 우리 집에 없으니 말이다.
이제 일주일 뒤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두 번째 기일을 맞는다. 나는 아버지를 산소에 묻고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한 말이 있다. 앞으로 내 생일 선물은 아버지 산소에 데려와 주는 것으로 해 달라고.
그리고 올 해 남편은 다음 주에 아버지 산소가 있는 풍기 호텔에 방 하나를 예약해 놓았다. 이 생일 선물이 내 평생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해 준 남편에게 작은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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