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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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오빠는 아이스를 빠져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오빠를 나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를 못했다. 오빠가 앉았던 자리에는 먹지 않고 남긴 아이스-크림만이 녹아 있었다. 하얀 서리가 맺어 있는체로 녹아 있었다.
나는 , 래인오빠가 렇게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한가지는 알고 있었다. 오빠에게는 이제 글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 마쳐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마지막 한 자루 남은 연필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나도,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한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이스를 빠져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오빠의 원룸에 도착을 했다. 오빠는 역시 돌아 와 있지를 않았다. 그의 방에 들어가고서야 그가 확실히 정신적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안에서는 썩어 가는 맥주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깔끔한 방안에 썩어 가는 맥주라니... 영 어울리지를 않았다.
오빠가 제주도에 가면 정말로 그 '혼란을 벗어 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김은미'라는 여자를 찾는다고 해서 그 여자가 래인 오빠에게 혼란을 제거 시켜 준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거니와 그 여자가 제주도에 얌전히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또한 그 여인이 정숙한 여인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다만 그 여인이 나쁜 여자가 아니기를 바랬다. 그 연인과의 만남이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 나오는 '세 번째 만남'이 아니기만을 바랬다.
방안을 다 치우고 나서 지쳐 버린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막막하기만 했다. 바다를 바라 볼 때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구름도 한 점 없는 바다는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나마 노을이 있을 때면 괜찮았지만... 길게 뻗어 있는 바다의 수평선은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벽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수평선에 나가 살수록 멀어지는 수평선. 한발 다가서면 한 발 멀어지고, 한 발 멀어지면 한 말 다가서는 수평선...
도시의 차가운 노을이 지나가고 황량하고 화려한 도시의 밤만이 방안에 드리웠다. 길 건너의 ○○생명 광고탑은 어둠의 구세주 인양 파란 빛을 발하고 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빛을 훔쳐가고 구름을 제치고 핀 달빛을 역시 그 광고탑은 훔쳐가고 있었다. 광고 탑의 불빛을 가로막고서 구원의 상징이라는 십자가. 빨간 십자가는 마치... 이질적으로 지옥문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빨란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십자가는 무한한 고통을 주었다. 네온으로 빛나는 빨간 십자가는 무섭기까지 했다.
"여기가 지옥의 입구요. 당신을 환영하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우면.., 이제, 더 이상은 어둠을 견딜 수 없었다. 래인 오빠가 말한 그 소녀가 나올 까봐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문 옆에 있을 스위치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스위치를 찾다가 지쳐버린 나는 오빠의 책상에 앉았다. 스탠드의 목 부위를 만지자 스탠드의 불이 커졌다. 이 불 빛만으로도 방안에 빛이 가득 찾다.
한 권의 노트... 빽빽한 그의 글씨. 모퉁이에 놓인 그의 펜. 파란 펜... 잉크가 반쯤 차여 있는 펜...
컴퓨터 본체는 연두색의 다이오드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 마우스만 건드려도... 불완전한 탑이 무너지듯이 모니터에 파란 화면이 가득 차리라...
오빠가 써 가는 소설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마우스를 건드릴 수는 없었다. 오빠가 쓰는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지만 보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보여 줄 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 앞에 놓여 있는 노트에는 파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잃어버린 꿈이 웃을 때. 그대의 곁에 있어 줄게요!"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에게는 꿈이 없었다.
나 자신에게는 꿈이 필요 없었다. 꿈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그렇다고 꿈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필연성도 없었다.
나 자신이, 내 가족이 모두 그랬다.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릴 적에 미술가가 되고 싶다고 하자, 나에게는 미술 선생이 붙여졌고 그리는 그림은 미술상을 받고는 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바이올린 선생이 붙여졌고 나를 위한 음악회까지 열렸다. 그러면서 꿈이라는 것은 단지... 단지... 일상이라고 여겼다, 손 만 가져다 대면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물건에 불과하다고... 마이다스의 손이 황금을 만들 듯이 그렇게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되고자 했던 것은 단지 돈으로 산것이지... 바라고 바래서 꿈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집을 뛰쳐나와, 어렵게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지금 이것 마저 아버지가 어머니가 돈으로 사주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삶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조금은 알기에. 내 앞에 놓여 있는 밥그릇이 얼마나 쉽게 부서 질 수 있는지 알기에..
그래서 그런지, 집을 뛰쳐나오기 전에 만난 그가 동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꿈을 성취하고 만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가 동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꿈이라는 단어조차 망각해 가고 있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집을 나와야 한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나는, 이제는 내가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어릴 적에 소망하던 것을 어머니가 돈으로 바꾸어 주는 순간, 자신이 단지 꿈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나 자신이 무엇을 꿈꾸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리고는 지금은 단지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꿈을 잃어버린 보통 사람들처럼...
넥타이를 메고 자신의 꿈을 파는 사람들...
남편의 꿈을 아이들의 꿈을 팔아 자신의 옷으로 바꾸는 여인들처럼...
나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직장에 출근하고 직장 상사의 눈치를 적당히 보고, 적당하게 아부하고,
동료들에게 접대성 대화에 웃음에,
적당하게 점심을 때우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저녁에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쓰러지고,
다시 아침에 자명종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고...
다들 보통 사람처럼 적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보통 사람들이란 표현은 아버지, 어머니 같은 로얄층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는 단지, 단지... 로봇일 뿐이다. 창의력이 없는 마이크로칩이 달린 기계가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돼듯이 로봇에 불과하다. Y2K라는 문제가 제시되어 폐기되는 컴퓨터처럼 대량으로 정리 해고가 되기도 하고. 나하나 없어져도 세상은 무슨 일이 일어났나 관심도 없고...
그나마, 광고라는 직업은 어느 정도의 창의력은 주어지는 것 같다. 인공 퍼지 기능이 있다는 세탁기처럼 자동감지센서가 달린 에어컨처럼...
기계의 부속처럼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도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래인이 꿈꾸는 래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하지 못하고. 기계의 부속 같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래인을 만나면서 자신도 단백질로 이루어진 유기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그렇게 혼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는... 도무지 대책이 서지를 않았다.
"잃어버린 꿈이 웃을 때... 그대의 곁에 있어 줄게요!"
'잃어버린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지...
'잃어버린 꿈이 웃는 날'이 오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옆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은 배우라'더니... 나에게 주어진 배역은 무엇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그런 배우이면 되는 것인가?
바다를 건너가 자신의 꿈을 찾으려간 래인이 참 부러웠다. 나는 찾을 꿈조차 없었다.
몇 일간을... 꿈이 무엇인지... 나 자신이 꿈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생각을 했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를 않았다. 주위 선배들이나 동료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꿈이 있다면 이루었는지 물어 보았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꿈, 그게 먼데? 잠잘 때 꾸는 꿈, 아니면 理想? 아직도 그런 꿈을 꾸니?
이제는 어른이야! 현실에 순응을 해야하는 어른.
이 현실은 손에 쥐어진 풍선을 놓아야 살 수 있는 세상이지!
그것을 이루면 잘 살 수 있니? 모가지 걱정하지 않고서...
이렇게 메일같이 넥타이를 차거나 이렇게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거니?
맞다. 그래. 모가지 걱정은 없겠다. 꿈을 이루는 일에 주체가 될 것이니까.
하지만 주체가 주책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야!
돈이라는 것이 가속도를 붙여 주겠지만, 깨몽이다! 깨몽"
꿈을 잃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꿈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
꿈을 이뤄 물질적으로 부족하게 사는 사람들...
난, 언제가 했던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빠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던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특집 기사. 그림에 대한 편집 일을 맡지만 않았던들... 그렇게 철없는 말을 하지만 않았던들... 후회가 된다.
그가 이렇게 방황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신도 이렇게 고민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던들... 예전처럼 황금 안에서 편안하게 향유를 할 것인데….
"오빠는 '반 고흐' 같아!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귀가 하나라는 것은…."
그 말을 들은 그는 미술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보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사도 읽어보았을 것이다. 도서관에 찾아가든지 인터넷에서 자료를 구하든지 간에 고흐에 대하여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내가 만나고자 하는 오늘에서야 이렇게 충격적인 말을 한 것이다.
스탠드의 불빛에 보이던 "잃어버린 꿈이 웃을 때... 그대의 곁에 있어 줄게요!"라는 글을 응시했다. '어둡고 찬란한' 아침이 밝을 때까지...
아침의 햇살이 스탠드의 불빛을 삼켰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주도에 못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목포항에서 그가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부두에 앉아서 그에게 압박감을 주는 바다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자 즉시 목포에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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