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8. 白晝(백주)에 강도가 되어



	8. 白晝(백주)에 강도가 되어 남해안 거제도 해금강이라면 지금은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구조라에서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땅, 갈곶을 아는 이는 지금도 잘 없으리라. 이 갈곶이 해금강의 옛 이름 그 곳 사람들 은 갈구지라고 부른다. 우리 3인이 어찌어찌 하여 그곳 갈곶까지 간 여정을 엮자면 몇 일을 써야하여 다음에 하기 로 하고 오늘은 그냥 거제도 땅에서 술 마시고 정신 잃고 미친놈 행동을 한 이야기만 하기 로 하겠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여름방학을 맞아 무전여행을 다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해금강 갈 곶 마을을 가려면 구조라 까지는 버스로 갈 수 있으나 해금강으로 가는 길은 뱃길뿐이었다. 갈곶에 도착하자 태풍이 시작되어 마을에서 해금강 섬을 바라보기만 하고 구조라로 되돌아 나왔다. 정기선은 태풍경보로 입출항이 금지되었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 린 마을 주민이 대절한 1.5톤 통발어선을 얻어 타고 구조라로 다시 나오는 길이었다. 파도가 집채보다 큰 바다에서 통통배 한 척에 몸을 맡기고 물살이 거칠고 파도가 높기로 유 명한 해금강 앞 바다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 선장 과 사람 5명이 타니 배가 벌써 기웃둥 거리는 발동선인 통통배에서 빗살은 좀 가늘어지긴 했으나 해금강 섬 사이를 지나 나오니 밀려오는 파도가 방파제보다도 높고 성곽같이 늘어서 서 밀려왔다. 선상에는 비를 피할 곳도 없고 선장을 중심으로 一葉片舟(일엽편주)에 기대선 風前燈火(풍전등화)의 목숨이었다. 선장은 키를 파도가 밀려오는 정면으로 파도와 맞서서 파도를 넘어 배를 몰아갔다. 파도를 타고 오르면 배는 파도 위에 올라선다. 그러다 파도 사 이로 내려서면 섬도 마을도 건너 산도 보이질 않고 다만 앞 뒤로 바닷물이 폭포처럼 솟아지 는 물기둥 아니 물 성곽이 넘어져 쓰러지면 그 위로 선장은 키를 붙들고 올라선다. 한순간 만 키를 놓치거나 힘이 다하면 배는 널빤지 한 장처럼 뒤집어진다. 배가 파도의 톱날에 올 라서면 다시 산도 섬도 마을도 보이고 저쪽의 큰 어선도 보이고 내려서면 폭포의 물기둥만 보일 따름이다. 모든 걸 하늘에 맞기고 어서 이 난관을 통과하기만 고대하며 항해를 했다. 이럴 줄 알았다 면 천만금을 준대도 아니 탔었고 한 달을 기다린대도 아니 탓을 것이데, 전보 받고 급히 육 지가야 한다는 두 부부의 대절선 따라 그만 목숨을 맡기었던 것이다. 친구 한 명은 목숨은 선장에게 벌써 맡겼다며 판쵸 우의 뒤집어쓰고 아니 보겠다고 눈을 감았다. 나는 그래도 살 아남겠다고 내내 눈을 가까운 육지로 바라보며, 넘어지면 내가 앉은 이 송판 한 장이라도 붙들고 헤엄쳐 보리다! 선장에게 물었다. "저기 보이는 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오?" 선장 하는 말 "이 짓하며 산지가 십 년이 넘어서요. 이 배 쓰러지면 나도 못 살 것이니 허튼 생각이랑 모 두 버리고 앉아 있으시오" 배는 목적지로 흘러가고 선두는 먼바다로 향했다. 선두가 목적지를 바라본다면 배는 벌써 파도에 썰려 넘어졌을 것이다. 아! 그렇다. 항해 기술의 기본은 파도를 피하면 한방에 넘어지고 파도와 맞서서 타고 넘어 가는 것이다. 한시간이면 되는 거리를 두 시간이 걸려 구조라 어느 갯가에 표류를 했다. 파 도 때문에 방파제 뱃머리에 닿질 못했다. 우린 가진 돈이 없어 뱃삯도 외상으로 헤어졌다. 목숨을 담보했던 사람에게 아무 사례를 할 수가 없었다. 갖은 게 비상금 몇 푼이니 도리가 없었다. 갯벌을 밟고 해안의 논둑 위를 걸어나왔다. 무섭고 거친 파도도 없고 비도 이제 거쳐주었 다. 살았구나하는 안도밖에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왔다. 乞人(걸 인) 같은 우리 3인은 비 맞은 생쥐가 되어 배낭을 맨 핼쑥한 얼굴로 구조라 어촌으로 나오 면서 턱수염이 허연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께서는 은빛 찬란한 꼬리가 봉황새 같은 생 갈치 세 마리를 꽁지에 끼어 들고 계셨 다. "할아버지 그 고기 갈치 맞지요?" "어떻게 잡으셨어요" 우리도 잡아서 먹고 싶었다. "갯가서 낚시하여 잡았다." "우리 주면 안 되요?" "너희들 배고픈 모양이구나. 여기 있다, 갖고 가거라"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인사만 하고 덥석 받았다. 염치없이 받았다. 그 나이에 우린 참 염치를 모르고 살았다. 세 상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베풀며 살았다. 그 시절에 수많은 우리 어른들에게 대접받고 보 호받고 사랑 받고 살았다. 이제는 그 받음을 사회의 어려운 사람에게 알려주고 베풀고 도와 주고 살아야한다. 그 때 진 빚을 나는 이제 갚고 살아야한다. 생 갈치 세 마리 은빛 찬란한 가슴의 피가 아직도 선명했을 바로 잡아 올린 생 갈치 세 마 리를 들고 우리는 구조라 어촌의 초라한 가계로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술이 고팠다. 별로 돈이 없으니 소주 한 병을 주문하니 여주인이 되 병 소주를 2홉 병에 부여 주었다. 그리고 갈치 세 마리를 내밀며 좀 끊여달라고 했다. "아주 싱싱하니 그냥 회를 만들어 줄 테니 자시오" 했다. 아니 내가 이십수 년을 바닷가에 서 나서 살았는데 갈치 회는 먹어보질 못했고 갈치 회 있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갈치 회 를 먹는다. "그럼요 싱싱한 갈치만 회가 되고 손질을 잘 해야하니 먹어보기 어렵지요" 갈치가 아주머니 손으로 넘어가고 얼마 안 있어 고추장에 풋고추 덤성덤성 넣은 무침 갈치 회가 큰 접시에 올라왔다. 소주에 비릿한 갈치를 먹으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마시다 병이 비면 한 되 소주에서 옮겨 붓곤 했다. 얼큰 하고 매콤한 무침 회를 먹으니 빠진 기력이 되살아 나오고 시장 끼가 솟구쳤다. "아주머니 혹시 남은 밥 없는지요?" 우리들을 힐끔 바라보더니 "아침 안 드셨소" "갈구지서 배타고 바삐 나오느라 그만." 양푼이 큰그릇 위로 마른 수건을 덮은 보리밥이 나왔다. "우리 점심이니 먹을 만큼 드시고 남기시오" 가족 모두가 점심에 먹을 밥을 한곳에 담아둔 그릇이었다. 설마하니 먹어본들 얼마나 먹겠나 싶었던 모양이었다. 우린 소주 한 되와 그 장정 5인분은 됨직한 보리밥을 거의 다 먹고 말았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고현으로 가는 거제도 군내버스를 타고 고현으로 가야 내 고향으로 가 는 버스가 있기에 시골 완행버스를 탔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부터 발생하였다. 우리 3인은 소주 한 되 마신 후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死線(사선)을 넘어서 온 안도감과 그 긴 숨막히는 곡예 항해에 지친 몸이었기에 소주 한 되에 모두 비실비실 허우적허우적 거 리며 버스에 올랐다. 친구 중 제일 키가 큰 철이가 그만 완행버스 좌석 앞에다 보리밥 생 갈치 소주를 섞은 짬뽕을 대낮의 차 속에 토하고 말았다. 차내가 소란하고 냄새가 진동하니 손님들은 우리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니 새파란 젊은 녀석들이 대낮에 술 마시고 차안에서 이 짓이냐?" 철이는 앞에 앉고 권이는 뒤에 앉았다. 나는 뒤 좌석에 따로 앉았다. 철이 옆에 앉은 사람 이 어디로 피했고, 권이가 철이 옆으로 가서 대강 치우고 등을 뚜드리고 몸을 흔들어 진정 을 시켰다. 그러던 권이가 통로로 나왔다. 씩씩거리는 얼굴로 사람을 찾고있었다. 소리를 지르더니 차고 있던 군인용 대검을 뽑아들었다. 빨간 모자를 쓴 철이 옆에 앉은 녀석을 찾 는다는 것이다. 얼굴은 모르고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을 찾고 있었다. 차내 승객들은 모두 공 포에 질려 영문도 모르고 빨간 모자를 찾았다. 차안에는 빨간 모자는 없었다. 내가 나서서 누구며 왜냐고 했더니 그녀석이 철이가 토하니 옆에서 계속 욕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로써 들을 수 없는 욕을 했기에 그 놈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너무도 단순한 이유가 전부였다. 벌 써 빨간 모자는 겁을 먹고 모자 벗고 어디로 숨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시골버스 에 순진한 어른들 앞에서 이 무슨 못난 짓이냐 마는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 할 말 이 없었다. 그도 나도 그런 후레자식 같고 개망나니 같은 청년은 아니라고 명백한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운전사가 어쩔 줄을 모르고 지그재그로 차를 몰았다. 권이와 철이가 어느새 진정이 되고 버스는 거제도 고현으로 들어섰다. 정류장까지 가기가 겁이 났다. 서둘러 내리 자고 중도에 내렸다. 정류장에 가면 혹 저 운전사가 우릴 파출소로 연행한다면 아니 차를 바로 파출소로 몰고 가면 우린 바로 철창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니 내렸다. 운전사는 영문도 모르고 내려주면서 차비도 안 받았다. 안 받았는지 안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술 취하여 미친놈으로 돌변하여 백주에 칼 들고 승객을 위협한 낮 강도는 지금 초등학교 선 생님이 되었다. 참 인생 묘하고 세상팔자 알 수 없구나. 그도 이 추억을 이 추태를 기억하 고 있겠지. 그리고 일생에 오점이라고 뉘우치며, 철부지 어린아이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 이시겠지. 내가 듣기고 권이는 천성이 곱고 순하여 불쌍한 사람 많이 도와주며 좋은 일 많 이 하고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의 생 갈치 먹은 효험이 이제서야 나타나는가보다. 2000. 0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