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30. 형만한 아우들



	30. 형만한 아우들 내 명정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술 이야기로 끝을 내야할 것 같아 이 야기를 적어본다. 먼저도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우리 가계는 대단히 주당 집안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백부님에 고모님까지 아주 술이라면 대주가 이시다. 나에게는 세 아우가 있다. 내가 4형제의 맏이니 소년 시절에는 술 이력들을 서로 알 길이 없었다. 내가 20세쯤에 집을 떠나고 내 아우들이야 소학교 중학교 시절이었으니 그럴 것이 다. 장성하여 집안 대소사나 설 추석 명절이면 분가하여 가장들이 된 4형제가 아버지 댁에 모이 면 그제야 그 동안 숨겨둔 술 실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와 셋째가 같은 체형이고 둘째와 막내가 닮은 체구이다. 다시 말하면 나와 셋째는 아버지 모습이고 둘째와 막내는 어머니 몸집이다. 형제가 많으면 다른 점들이 있기 마련이데 우리 4형제 술 실력은 하나같이 만만찮으니 이럴 두고 나 혼자 고민하여 본 결론은 이러하다. 내 어머니의 술 능력이 그 해답을 주기 때문이다. 술 마시는 능력은 내 식견으로는 유전적인 요소가 있다. 내 외할아버지의 술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시어 내가 어릴 때 배운 술 담그는 방법은 다 내 외가의 산물인 것이다. 어느 해 구정이었다. 섣달 그믐날은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이 있다. 그 그믐날 초저녁부터 장만한 제사 음식에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 거사의 주동은 당 연히 아버지이셨고 객지에서 고향 찾아온 아우들 먹이려고 애 쓰시는 어머니의 부추김으로 자리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는 제사 음식과 제사 전에 가족이 모이면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하곤 한다. 가족 수가 많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면 제사 음식만으로 부족하니 그러하다. 안주로는 무어니 해도 소주 안주에는 생선회가 제일이다. 소화가 잘 되니 그렇고 단백질과 영양가도 가히 수준 급이다. 그러니 우리 입맛으로는 안주 맛이 최고인 것이 바로 생선회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이 회는 물통 수족관이나 배에서 바로 올라온 것만 회거리로 사용한다. 그리고 회거리로 양식하는 광어나 방어 우럭보다는 도다리 볼락 전어 장어 꼬시락 숭어 감 성돔 낙지 문어 해삼 이런 종류만 사서 먹는다. 이들은 하나같이 양식이 불가한 어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자연산 제철 어종으로 만든 생선회를 안주로 한다는 말이다. 육류보다도 위에 부담이 적고 다음날 거의 숙취를 없애니 소주 안주로 음식궁합은 바로 생 선회임이 틀림이 없다. 그날도 남해안 연안에서 잡은 잡어들을 어시장에서 구해 이미 준비를 해 주셨다. 아마도 어 머니께서 자식들이 생선의 시골인 저 서울 땅에서 산다고 오랜만에 왔으니 먹이고 싶어서 준비를 해 두신 것이다. 4형제에 아버지까지 그기다 술 마실 시간도 부족한 어머니는 안주 올리신다고 앉을 사이도 없었지만 우리 5부자는 두세 시간 잡담으로 술병을 비워나갔다. 2홉들이 무학소주 5병이 30분이면 동이 난다. 10시가 지나면 아버지께서 자리를 피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께서 벌써 술자리를 뜨실 분이 아니지만 내일이 정월 초하루 조상 님 제사를 지낼 제주가 바로 아버지이시니 어쩔 도리가 없으시니 그러하시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들 술 마시는 모습 보시고 그냥 흐뭇해하신다. 이 자리에 맞대응을 한대도 기분껏 못 마실 일이고 하니 적당히 반주만 넣고는 안주를 만들 어 올린다. 내 둘째 셋째 아우의 실력은 과히 천하 주당 급이다. 그들의 나이도 체구도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직 한번도 따라 잡아본 적이 없다. 물론 나보다 체중이 10키로 이상 더 나가고 키도 내가 제일 작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미 실전에서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자들이다. 12시경이면 이제 내가 물러난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이미 물러나신 뒤고 나도 이제는 내일을 기약해야하니 계속 마실 자신이 없기에 내 스스로 알고 자리를 일어서니 한 녀석도 아니 붙들어 준다. 아마도 내가 빠져야 아우들끼리 통하는 맛이 있나보다. 그들에게 이 맏이는 손이 아픈 모양 이다. 내가 빠진 후가 되어야 비로써 그들은 마음놓고 맛 담배 피우며 큰잔에 숭숭 마실 수가 있 나보다. 정말로 그들은 소고기 국그릇에 대파 썰어 넣는 형상을 보고 숭숭 쓴다고 하지! 그처럼 그들은 소주병을 숭숭 쓸어서 마시고 비웠던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다음날 아침에 그 마루에 깔려 놓여있는 소주병을 보면 알지. 이는 아마도 기념작품일 것인데 이를 보관도 사진도 없으니 아쉽구나. 우리 집 거실이 그리 너른 편은 아니지만 식당이랑 거실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런 대 로 자리가 마당 멍석자리만큼은 된다. 그 마루 위에 소주병이 그것도 병마개가 열린 소주병이 마치 소주공장에 소주 받으려고 줄 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빼곡이 쌓여있다. 그 마루 빈틈이 없이 병머리만 내 밀고 무슨 조형 작품처럼 가득하다. 아직 한번도 그 수를 헤아려 본적은 없다만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다고만 말하고 싶구 나. 우리 집에는 명절이 되면 소주 맥주를 여러 박스로 쌓아두고 보낸다. 명절이라 특별히 준비한 것도 있지만 평소라도 소주 2박스는 기본이다. 술이 모자라면 근처 연쇄점에서 몇 병씩 사 올 수도 있지만 자정이 넘으면 그도 용이치 않 고 또 어찌 이런 소비에 몇 병씩 왔다 갔다 할 일이 아닐 것이다. 다음날이 바로 정월 초하루가 아닌가? 나와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서 마루와 술병을 치우고 나면 그들 3형제는 새벽에 싸워하고 들 어온다. 그리고 하는 말에 정말로 이 酩酊記 주인공도 두 손들고 만다. 그들은 자정이 넘도록 마시고는 자리를 옮기어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전전하여 밤새워 마시 고 선창가 복집에서 해장까지 마시고 목욕까지 마치고 말짱한 얼굴로 세배하러 나타난 것이 다. 과연 그들만이 섣달 그믐날 밤새우고 까만 눈썹 휘날리며 나타난 것이다. 잠잔다고 눈썹 하얗게 센 우리들 앞에 말이다. 그들의 술 능력은 아직도 여전하다. 허기사 그들은 아직도 젊고 건장하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술을 사랑하는 어르신들 추앙을 받 고 사니 날로 의기며 사기가 충천하다. 이 못난 형만 빼면 어디 형제 술 자랑 대회의 과히 금메달 감이다. 우리 나라 여자 양궁처럼 금은동 싹쓸이 감이다. 형만한 아우들이 아니다. 형보다 나은 아우들이다. 2000. 0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