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25. 酩酊이 되어버린 山行



	25. 酩酊이 되어버린 山行 이건 산행기가 명정이 된 일이다. 나로서는 가끔은 산행이 명정이 된 적이 있다마는 모처럼 산으로 불러들인 친구들 데리고 산행 가다 명정이 되어버렸으니, 참 싫은 기억이 될지 좋은 추억이 될지 사람마다 다를 것 이나 지나고 보니 새삼 산행보다 나은 명정이 되어 적어 볼까한다. 이삼년 전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봄이라지만 早春인지라 朝夕으로 쌀쌀함은 겨울과 별로 다르지 않았었다. 직장에서 만나 이십 년을 같이 지낸 친구 3명이 내 권유에 못 이겨 마지 못하여 산행을 나섰다. 버스로 산행지인 창원군 칠원면 작대산으로 갔었다. 하루 산행으로는 좀 멀긴 해도 일찍 출 발했으니 창원 천주사까지 종주하여 온다면 8시간은 걸리는 산행거리였다. 기실 그들은 오 늘 산행거리가 길어 마음의 걱정은 했을 것이다만 우리 고장의 산줄기이니 어떻게 누웠는지 도 궁금하여 따라 나섰다. 시외버스 타고 칠원면 무기리에 내려 시골 돼지고기를 한 근 사고 소주 한 되를 넣었다. 그 리고 마을 뒤 농노를 타고 작대산 진입로에 들어섰다. 뒷동산 낮은 산허리를 감아 도는 산행로는 그 옛날 고향길 가는 산모롱이처럼 한적하고 평 이한 산길이었다. 소나무 마른 잎이 발이 시리도록 밟히는 융단 길을 한시간이나 지나니 이 제부터 산판 도로가 나오고 지름길 능선길은 가파름이 계속되었다. 이러다가 산행기가 될 것이니 여기서 접고 명정기로 옮아가도록 하자. 작대산에 오르니 어느덧 11시쯤 되었다. 이런 봄기운에 기력 빠지는 산행이다. 왜냐면 나올 때 추웠던 지라 입은 옷은 겨울차림이고 낮은 따스한 봄이니 짜장 걷기만 하여도 더위에 기 운이 다 빠질 지경이 이런 날이다. 날씨가 너무 따스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하늘은 온통 푸름이 그 짙음을 머금은 채 내려다보고 햇살은 산머리와 우리 얼굴에 따갑게 내리 쪼였다. 작대산을 지나니 높이가 비 슷한 또 다른 산 위로 올랐다. 두 박씨중 한 박씨가 술이라도 한잔하여 목도 축이고 숨도 돌리고 가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날 나는 길이 멀기에 앞서서 시종 몰아붙였던 것이다. 햇살이 너무도 온화한 날이었다. 소주 한잔을 마셔도 맛있게 마시자는 뜻으로 간단히 휴대 용 불 판과 바나를 차려 돼지고기를 구우니 즉석 안주가 되었다. 이른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했을 것이니 다들 시장 끼가 온 모양이었다. 소주 한잔에 고기 한 점하고 또 한잔 돌리고 고기 한 점 간단히 익혀먹고, 이제 모두들 고 기 한 점 먹으려고 술 한잔씩 마셨던 술이었는데 술병의 술은 쑥쑥 줄어들었다. 술이 이리 도 빨리 줄어준 이유는 술잔에 있었다. 산행중이다 보니 소주잔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등산 용 스텐 컵으로 한번에 반잔씩 마셨다. 소주컵으로 셈하면 두세 잔을 한잔으로 마셨으니 세 명은 그만 한자리에서 소주 한 되를 다 비웠던 것이다. 이제 갖고 간 고기도 가득 올려 구 워서 취한 느낌에 도시락까지 그 자리에서 다 먹어 버렸다. 쉬고 가자고 앉았다가 목 좀 축이고 간다는 것이 지고 간 음식 다 먹고 마셔버렸다. 이 따 스한 봄기운에 양지의 따스함에 3인은 먹은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마치 독약을 마시다 쓰 려진 모습으로 앉은 채 뒤로 소리 없이 넘어졌다. 누가 자자고 했나? 누가 잠이 온다고 했나? 수저, 밥그릇, 술병, 바나, 어느 하나 움직임 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산이 하도 시골 산이고 이름 없는 산인지라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 다행이지 누가 지나갔 었다면 틀림없이 셋이 독약 든 음식 먹다 그 자리에서 쓸어져 죽었다고 신고라도 하였을 것 이다. 얼마나 잤을까? 길고도 오래 오래 잤다. 우린 아무 의식이 없었다. 어찌하여 여길 왔고, 어 디로 갈 것인가? 세 사람이 동시에 깨어났다.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우린 같이 눈이 떠졌다. 그리고 짐을 챙겨 나머지 길을 나섰다. 아뿔싸, 시간은 어느덧 짧은 봄날의 오후는 다 지나갔고 이제는 중간에서 내려서야지 천주 산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급히 먹고 마신 음식이고 술이건만 소화는 되어도 술은 깨지 않 았었다. 머리가 우지끈하고 하늘은 빙글빙글 저 솔개처럼 맴돌고 있었다. 오후의 봄바람이 일고있었다. 다행이 동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와주었다. 이 길로 가면 북면으로 갈 것이나 그 곳이 어느 마을이고 어떻게 길이 이어졌는지는 가보아야 안다. 예비군 훈련장의 기지거리 사격장이 나왔다. 표적판이 서 있고 탄환자국이 무수히 많은 사 격장 들판으로 내려오면서 우리 셋은 전쟁 영화 속에 주인공들이 되었다. 지팡이 총을 들고 입파람으로 총소리를 내며 서로가 적이 되어 각개전투를 하였다. 참호 속에서 뛰어나와 따 발총으로 공격하다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또 살아나고, 도망가다 총 쏘고, 쫓아가다 넘어져 엎디려 쏘아, 쪼그려 쏘아, 서서 쏘아, 돌격 앞으로, 마치 다섯 살 꼬마가 노는 전쟁놀이 같이 나이도 잊고 童心이 되었다. 다만 노래 소리는 軍歌를 부르니 누가 보기라도 했다면 정말 어이하려고 그 짓이었던가? 그 때였다. 군복입고 철모 쓴 일등병 한 명이 하도 신기하고 우스운지 그 짓이 끝나자 나타 났다. 그도 우리도 마냥 웃다가 하는 말이 "아저씨들 다 놀았어요? 어디로 올라왔어요?" "저 산 뒤에서 올라왔다." "아저씨 여긴 통제구역입니다. 보시다시피 사격이라도 한다면 아저씨 중 한둘은 전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뭐 허수아비가? 우리도 총 쏘며 공격했지" "그럼 너도 부상병 되어 후송가야 할지 모른다." "나도 옛날에는 특등 사수였거든" "예비군 아저씨들 어느 누구 특등 사수 아닌 사람 있는 줄 아셔요." "저도 예비군 되면 저절로 특등 사수될 거라오." 참, 그렇다, 술이 아직도 덜 깨었으니 산그늘이 내려 추위가 가득한 교육장에서 소년들 마 냥 놀았지 어찌 맨 정신에 그렇게 놀 수야 있었겠나? 북면에서 나오는 시내버스 속에서 우린 술 냄새 풀풀 날리며 바람찬 창문 열고 앉아서 신나 는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자꾸만 그 옛날 부대 트럭 타고 출동할 때 부르는 착각이 일어 그 시절 군가를 나도 모르게 불렀다. 아! 과거는 지나갔고 추억은 아름답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그 봄날의 酩酊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구나! 2000. 0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