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명정기

명정기

두칠이

24. 기쁨조 산행기



	24. 기쁨조 산행기 산행기를 쓸 것이지 왜 명정기에 이 이야기가 올라오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 겠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산행은 차라리 나에게 酩酊의 의미가 크니 명정기로 엮어 갈 수 밖에 없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야 한두 번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관광버스로 당일로 안내 산행 가는 일 말이다. 나에게 수없이 많이 간 안내 산행이지만 이번처럼 우리 회사 최고의 멤바가 같 이 모여 가긴 실로 처음이니 나로서는 단단히 작정을 하고 갔었다. 이름하여 기쁨조 3인이라 불렀다. 물론 내가 즉석에 지었다. 창원시에서 시민이 이용하는 산악회를 따라, 우리도 그들도 모두 하루를 동행하는 반짝 세 일 같은 산행이어서 초면이 반을 넘고 구면은 산행을 매주 하는 사람정도라야 알 수 있는 상황이나, 그날은 여기 소개하는 기쁨조 3인이 참가했으니 놀기 좋고 즐기기 좋은 하루가 될 것은 분명하였다. 산행지는 포항을 지나 청하면 보경사가 있는 내연산이었다. 온 산에 진달래가 붉게 물든 음 력 춘삼월 호시절이라 산행하기에 약간은 더위도 있었다. 그러나 산이 하도 좋고 절이 좋으 니 초면 구면이지만 산을 얼마 오르지 않아 쉬었다가고 앉았다가니 산행인지 야유회인지 어 중간한 상태라 준비한 소주로 길에다 주막을 차렸다. 우리 3인은 다들 산행에 단련된 몸이라 이 정도의 걸음으로는 이마에 땀도 나지 않을 정도 인지라 초장부터 쉬엄쉬엄 가면서 술이나 마시고 노래나 부를 심사였다. 플라스틱 소주 한 되가 나왔다. 등산용 컵으로 올라오는 일행에게 쭉 줄 세워 한잔 권했다. 땀이 알맞게 흐른 뒤고 그리 높지 않은 길을 걸으니 다들 잘 마셨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은 뒤 3인중 朴처사가 언제나 선창으로 처렁처렁한 목소리로 앞소리를 했다. 뒤 따라 내가 뒤 소리를 하니 작은 산이 자다 깨어나고 산신령도 놀라서 어험 하고 소리라도 지를 지경이었 다. 그러다 같이 간 鄭거사가 무당차림으로 희귀한 옷으로 변장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제 노래 소리와 춤이 산행으로 이어져 모두 같이 손뼉 쳐주고 뒷소리 해주고 걸었다. 약간 된비알을 오르자 참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놀기 좋은 재가 나왔다. 누가 이를 것 도 없이 그 넓은 참나무 낙엽이 수북수북한 평지에 주저앉았다. 한바탕 올라오면서 놀았으니 또 한차례 술판이 이어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소주 한 되가 한 잔씩 돌려지고 취기는 점점 올라 흥은 고조되고 있었다. 모두들 우리 기쁨조 3인의 장기 와 놀이에 취하여 힘듦도 잊고 웃음으로 산행을 마치고 계곡으로 내려왔다. 단체산행이란 언제나 좀 이른 사람도 있고 늦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른 사람은 내려와 산아래 동동주 주막에서 파전이나 산나물에 목을 추기고, 뒤 오는 사람도 따라 들어와 같이 어울려 한잔씩 나누어 마시며 후렴풀이를 하는 게 일상이다. 우리 3인이 중간정도로 내려오니 주차장 근처 큼직하고 인심 좋은 주막에 앉아있었다. 우리 도 합석을 하여 막걸리를 마셨다. 버스 한차 태워간 손님이 다 들어왔으니 주막은 비좁고 주인은 상 나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럴 때는 손님이 주인이 되어야 인심도 나고 술맛도 흥도 나는 법이다. 이제 우리 기쁨조 3인은 남자 종업원이 되어 술상도 나르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쳐주고 안 주도 대접하였다. 목소리가 커서 장내가 울리고 노래 소리가 지나는 행인이 들어다볼 정도 로 잔칫집이 되었다. 십시일반으로 술값 계산을 하고 나왔으나 봄날의 햇살은 떨어지지 않아 그냥 차에 오를 수 가 없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벚꽃이 만개하여 그 가지를 처렁처렁 땅으로 내리었고 봄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는데 이렇게 어울린 우리 일행이 헤어지면 그만이고 가버리면 그만인데 가는 봄 오는 봄 아쉬움이랑 묻지 말고 그냥 벚나무 그늘아래서 꽃향기 맞으며 놀기로 했다. 총무가 나서더니 막걸리가 주전자 채로 날라 오고 산나물 구수한 맛이 살아있는 안주가 바 가지에 담겨 나오니 주막보다 이곳이 더욱 정취 있고 분위기 나는 곳이었다. 또 다시 막걸리 한 순배 돌아가자 모두 취기가 한껏 올랐다. 3인중 춤의 대가 정씨의 병신 춤, 무당춤, 사랑춤, 각설이 춤이 나오니 모두들 손뼉 치고 배를 잡고 웃고 노니 해가 지고 어둠이 와도 갈 줄을 몰랐다. 긴 살풀이가 끝나고 차는 떠나니 어찌 놀이가 끝이 나는가 했더니 누가 준비를 했는지 막걸 리 소주가 차례로 나오고, 차 속에서 신풀이는 차가 가도, 차가 서도 계속되었다. 과연 창원의 명물 기쁨조 3인은 그날 산행한 모든 이의 마음에 살아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명물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산을 오르면서 정정한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심호흡 흔들림 없이 노 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박처사 뿐이다. 그 다음으로 내가 따라간다. 그리고 신풀이 살풀이 곰배팔이 배비장전 갖은 춤 다 출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얼굴 철판 깔고 놀 수 있 는 각설이는 정거사 뿐이니 그는 빠질 수 없는 산행 기쁨조이라고 자찬할 수 있다. "그럼 이 이야기 써는 당신은 무엇이 장기요?" 나는 내 세울 장기가 사실 없다. 다만 이런 놀이를 좋아해서 어울리게 판 만들어 놀기 좋아 하고, 놀게 하기 좋아하는 게 장기이고 노래고 춤이고 남 따라는 잘도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누가 무얼 잘하고, 누가 어떻게 잘하고 해도, 이런 판 만들어 놀 수 있게 하고, 판 만들어 자랑케 하는 이가 제일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아니 그런가? 천하의 술꾼들아! 2000. 02. 10.